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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되는 소녀상이수태

2015년 연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에 졸속으로 이루어진 외교적 타협안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국민들은 어이가 없다. 도대체 뭐가 급하고 아쉬워서 이런 해괴한 합의를 하였을까? 떳떳한 배상도 못 되는 돈 몇 푼을 받으려고 이런 합의를 하였는가?

"책임을 통감한다. 됐지? 이제 다시는 이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떠들면 안 돼. 불가역적이야. 알았지?"

이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나? 그 배경을 누구보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 절차와 내용에서 함량 미달의 이번 합의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외교가 불러온 참사입니다. 철저히 국익을 쫓아야 하는 냉엄한 국제정치와 좋든 싫은 일본을 대면해야 하는 한국의 외교현실에서 대일관계는 실용적 관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툴 것은 다투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민감한 역사문제와 정상외교를 연계하는 자충수를 두었습니다. 이런 미숙한 전략이 한일 외교의 장기간 공전을 낳았고, 이는 미중이 각축하는 격랑의 동북아 질서에서 두고두고 한국 외교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참담한 협상결과는 역사를 정치화한 외교적 미숙함이 불러온 외교적 참사입니다. 때문에 이번 협상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 반대자들의 발목잡기로 호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2015. 12. 28. 기자회견)

   
▲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지금여기 자료사진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유독 한일 정상회담을 기피해 왔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 대해 일본이 행한 죄과에 관해서는 조금도 반성하지 않으면서 군사대국화나 꿈꾸고 있는 일본 극우의 선봉 아베와 누군들 마주 앉아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겠는가? 그 감정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애초부터 국가 간 대화 자체를 거부할 빌미가 될 수는 없다. 미국이 아무리 한미일 3국 군사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싶어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끼어들 명분도 실익도 의향도 없다는 입장만 분명히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공연히 위안부 할머니들 핑계를 대었다니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 관련된 우리의 이익을 포기해도 되는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만들어낸 논리적 약점을 일본과 미국은 집요하게 파고 들었고 결국은 자신의 약점에 얽혀 사태가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굴러갔던 것이다.

이제 다른 방안은 없다. 이 타협안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 수밖에 없다. 재협상을 요구할 것도 없다. 애초부터 협상의 대상이 될 일이 아니었다. 타협안은 그냥 파기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체면이 손상되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정권이 알아서 할 일이다. 돌이켜 보면 법적 배상은 이미 반세기 전에 박정희 정권이 돈 몇 푼에 팔아 넘기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국가가 그분들의 청구권을 팔아 먹었으니 국가가 대신 배상을 하는 것도 방안이고 국가가 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모금을 하여 그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안도 있다. 사죄와 반성? 그것은 말로 할 일이 아니고 시효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아베가 무릎 꿇고 엎드린다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솔직히 현재로서는 몇몇 양심적 일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씨알이 먹히지 않는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도 요원하게 가는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과거 정권이 못했던 일을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과거 정권이 못 했던 것이 뭔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은 일본도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 했으니 따질 것이 없다. 고노 정권 시절에는 위안부 문제가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감언과 강압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담화를 끌어내기도 했던 것 아닌가? 돈 10억 엔을 못 받아낸 것은 맞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뭔가를 했다고 하는가? 배상금도 아닌 저 쥐꼬리 만한 선심성 자금을? 차마 그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실제적인 문제는 한 가지뿐이다. 즉 과거 정권은 국제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노력을 중단하겠다는 약속도 해 주지 않았다. 현 정권은 과거 정권이 약속해 주지 않은 것을 "못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자기들은 "했다"고 자랑하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무엇이 있는가? 변명을 하더라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청와대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의 증언록을 읽어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배를 타고 가면서 함께 가는 소녀들과 키득키득 꺄르르 웃기만 했다는 얘기도 그렇고 그렇게 간 곳에서 하루에 70명까지 받았다는 얘기도 그렇다. 그들은 대부분 열세 살, 열네 살 소녀들이었다. 지금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소녀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며 뒤꿈치가 들린 맨발은 땅에 정착하지 못한 그녀들의 일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표정을 보았는가? 그것은 울고 싶어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고 울고 싶은 감정마저 압류된 표정이다.

나는 그 소녀상이 단지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만을 상징하는 것 같지가 않다. 20세기 전반을 통해 무참하게 유린된 민족의 모습이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낯선 문명의 내습 앞에서 허둥거리던 동양을 두고 영국, 프랑스, 미국은 물론 약삭빠르게 총칼을 배운 일본까지 가세하여 마치 죽어 가는 거대한 고래를 뜯어먹기 위해 덤비는 상어들처럼 피와 살을 뜯어먹었다. 누가 그 피해보고서를 쓸 수 있겠는가? 우리의 수치, 우리의 낙백, 온갖 자원을 다 수탈 당하고 잔명이라도 보전하기 위하여 남부여대하여 사할린으로 북간도로 떠돌던 백의의 넋들, 경복궁 담벼락 아래에서 군홧발에 밟히고 일본도에 잔인하게 찔려 죽어야 했던 명성황후의 원혼, 그 모든 피해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 저 울지도 못하고 있는 소녀상의 표정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을 잊고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임을 말할 수 있겠는가? 칠푼이 정권이 어떤 사고를 쳤든 우리라도 그 위를 당당하게 딛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소녀상은 이제 소리 없이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이수태
저술가, 칼럼니스트, 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행정부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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