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또 미인 얘기다.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조차 하기 모호할 정도로, 그냥 판타스틱한 여자와 남자의 얘기다. 아니 그들의 꿀 같은 로맨스다.

<KBS 2TV> ‘오 마이 비너스’는 ‘고대 비너스’ 몸매로 역변한 왕년의 미인 얘기다. 주인공 강주은(신민아 분)은 원래 ‘대구 비너스’였다. 보통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미모였다는 뜻이다. 노력해서 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타고났다. 그러다 공부에 매진해 변호사가 되고 보니, 살들은 여기저기 있는 대로 붙어 몸무게는 77킬로그램에 이르렀고 예전의 모습은 살 속에 파묻혔다고 한다. 15년 남자친구마저 ‘지금의 니가 싫다’며 떠나가자 실의에 빠진다. 그때 마침 남의 살빼기에 명수라는 ‘존킴’ 트레이너를 알게 된다. 하도 유명해 할리우드 대스타들이 비밀 트레이너로 기용하는 고수다.

▲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의 주요 등장인물.(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영호(소지섭 분), 강주은(신민아 분), 오수진(유인영 분), 임우식(정겨운 분).(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강주은 스스로가 회상하듯 “경상도 내 모든 남자애들의 첫사랑”이었다는 말이 허언이거나 과장만은 아니다. 15년 동안 충직했으며 지금은 헤어져 (하필) 주은의 친구 오수진(유인영 분)과 연애 중인 임우식(정겨운 분)이 이를 누구보다 잘 증명할 수 있다. 드라마 시작 당시 주은은 성질만 고약할 뿐 예쁘지도 자신을 돌보지도 못하는 ‘망가진’ 상태였으나, 우식은 주은 곁을 자기도 모르게 맴돌고 있다. 관성 때문일까, 드라마가 유난히 강조하는 시청 포인트인 강주은의 매력 탓일까.

존킴은 사실 재벌가의 유일한 상속자다. 미국에서 명성을 얻은 비밀 트레이너인 동시에, 재벌 외할머니를 둔 김영호(소지섭 분)는 강주은과 “자꾸 쓰러지고 자꾸 구해 주는 사이”다. 두 번이나 응급상황에서 소생시켜 주고, 그만의 탁월한 훈련 방법으로 불과 몇 주만에 77킬로그램에서 15킬로그램이나 감량시켰다. 방송 5회 만에 강주은은 다시 왕년의 분위기를 찾았다. 소지섭은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옷발로 등장할 때마다 시선을 고정하게 한다. 그런 그가 트레이너 존킴으로 맹훈을 시키는 장면들이 일견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미로 보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여신과 왕자님의 조합이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만 돌아도 될 사람들이다.

▲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의 한 장면.(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여신은 ‘잠시’ 미모가 망가졌다 다시 회복세로 돌아섰고, 재벌가 왕자님은 엄마도 일찍 여의고 어려서부터 난치병으로 끔찍한 수술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최근 완치 판정이 내려졌다. 그 둘이 지금 한 집에서 기거하며 날마다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으로 “니 몸은 내 마음” 식의 주문을 외워 가며 몸매 만들기를 하고 있다는 게 줄거리다. 몸매 만들기가 잘 진행되면 보상으로 ‘인생의 단맛’도 서로에게 선물하고, 입맞춤도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구사하면서 로맨스의 수위를 높인다. 19금 발언도 간단없이 툭툭 터져 나오곤 한다. 특히 엔딩 직전에 이런 장면을 넣음으로써 시청률마저 잡으려 한다.

존킴 트레이너는 계약과 동시에 거의 ‘신체 포기각서’를 들이미는 식의 자세로 임한다. 주은 앞에게 “당신 몸은 이제 내꺼. 내꺼! 내꺼! 내 맘이요.”라는 말부터 선언한다. 뭐 어떻게 생각하면, 천하의 존킴에게 아니 소지섭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복이 터졌다 싶다. 하지만 실상 소름끼칠 말들이다. 몸에 대한 철학이 없음을 넘어, 인격모독일 수도 있다. 지난 6회에서 말미에 김영호는 기습적으로 키스하며 말한다. 스토커에게 침입을 당해, 무서워서 집에도 못 들어가는 주은에게 말이다. “진짜 모르나보네. 남자는 장난치고 싶은 여자랑 다른 것도 하고 싶다는 걸. 강주은 씨 몸은 내 마음이니까.... NO 못 해요.” 존킴 코치님이 하니 명대사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스토커 짓이고.

▲ 강주은 역의 배우 신민아.(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주은은 이제 완전히 우리가 아는 배우 신민아의 얼굴로 돌아왔다. 77킬로그램을 62킬로그램으로 감량하는 데 5회밖에 안 걸렸다. 말이 쉽지 15킬로그램라니. 그저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살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하는, 그렇지만 빼고 싶은 수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지켜봤을 ‘고된 훈련’ 기간이 의외로 빨리 끝나 버렸다. 과체중일 때도 실상 ‘특수 분장’이었고 이제 그 무거운 분장을 벗어 버렸다는 것의 차이 정도다.

원래 예뻤던 사람이 다시 예뻐지고, 원래 상속자로 태어난 사람이 유일한 상속권을 가지게 된다. ‘대구’라는 지역이 세계 최고의 의료 서비스와 맞춤형 건강센터라도 갖춘 듯이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 방식에도, 스멀스멀 ‘영리병원’이 하겠다는 서비스의 냄새가 난다. 누가 이 드라마를 가장 열심히 볼까? 청소년들이다. 외모에 가장 관심이 많을 나이의 시청자들이기 때문이다. 여신과 왕자가 타고난 대로 모든 ‘인생의 단맛’을 누리는 로맨스가 되겠지만, 다만 앞으로의 전개에서만이라도 몸에 대한 철학이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수단과 조건으로서의 몸이 아닌, 온전한 몸과 마음에 대한 진지한 태도 말이다. 외모가 생의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드라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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