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왜 지금 이런 드라마가 나온 걸까? 시청하고 나서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왜 이런 주인공들일까. 왜 하필 직업이 조직폭력배일까. 어떻게 이런 대단한 스타들을 한꺼번에 섭외했을까.

이번 주 새로 시작한 <MBC> 수목극 ‘달콤살벌 패밀리’의 기획 의도를 보자. 가장 눈에 띄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40대 가장의 고군분투기를 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들로서의 역할이 힘들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윤태수(정준호 분)와 백기범(정웅인 분) 두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직업이 ‘조폭’ 그러니까 일명 깡패들이다. “깡패 마누라”로 사는 데 이골이 난 태수의 아내 김은옥(문정희 분)과 깡패 마누라로 살기 싫어 기범과 헤어진 지 오래인 이도경(유선 분)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조폭 보스인 주인공이 당당한 가장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휴먼 코미디’라는 게 뼈대다. 주연 배우들 영향인지 예전에 본 영화 ‘두사부일체’가 얼핏 연상되는데, 그때보다 강조된 건 ‘평범함’과 ‘일상성’의 강조다. 영화에서는 특이하고 엉뚱한 사람들이 주는 웃음코드였다면, MBC 드라마 ‘달콤살벌 패밀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나치게.

▲ MBC 드라마 "달콤살벌 패밀리".(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집 밖에선 조직 보스지만 집 안에선 서열 4위 그러니까 아내와 아이들 다음이라 서열 꼴찌인 가장임을 어여삐 봐 달라는 식이다. 이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사투(처절한 폭력)의 과정은 내내 ‘휴먼 코미디’로 포장돼 있다. 이건 대체 어떤 장르인가. 시체가 나오고 일탈과 범죄행위와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대사의 상당량이 ‘형님’, ‘회장님’, ‘깡패’ 등등의 호칭인 드라마를 말하는 것인가.

무엇보다 묻고 싶은 건 언제부터 깡패가 대한민국 ‘대표 가장’이 된 것인가? 제목에 들어간 ‘패밀리’는 태수와 기범에게 대체 누구누구를 가리키는 단어인지도 의문이다. 태수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는 ‘연기’를 하고, 제 ‘식구들’인 조직원들 앞에서는 왕처럼 군림한다. 태수의 이중성은 그의 잘생긴 얼굴과 태연히 ‘일’과 ‘집’을 오가는 모습에서 잘 드러나긴 하지만, 오직 이 드라마에서만 통하는 기이한 사례일 뿐이다. 정준호는 열연 중이지만, 태수가 뭘 어떻게 애써도 ‘보통 아버지’로 보일 리는 없다.

2회까지 방영된 현재 ‘가족을 되찾으려’ 고군분투 중인 기범의 민법상 ‘가족’은 돈 많은 아버지 백회장(김응수 분)뿐인 듯하다. 헤어진 전 아내와 얼굴도 못 본 딸은 현재로선 ‘가족’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그의 행동도 매우 수상쩍다. 이도경(유선)에 집착과 사생활 뒷조사가 마치 합당한 행위인 듯 혹은 ‘사랑’인 듯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실제로는 소름끼치는 일임에도 말이다. 여기까지도, 백번 양보해 ‘조폭 드라마’의 클리셰라고 치자.

▲ '달콤살벌 패밀리'의 한 장면. 윤태수(정준호 분, 왼쪽)와 김은옥(문정희 분)(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2회 말미에서는 드디어 기함을 하고 말았다. 드라마에 전투복의 군인들이 등장했다. 드라마 전개상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항변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엔딩 직전, 눈길을 끄는 ‘시체’ 장면이 나온 후반부에서 전투복을 입은 군인들이 시민의 차를 에워싸고 검문 검색을 하는 장면은 왠지 공포스러웠다. 사기꾼 영화사 대표(김원해 분)의 시체가 나와서가 아니라, 전투복 입은 부대원들의 살기 등등한 모습과 총이 공포스러웠다는 뜻이다. 탈영병이 발생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행한 검문 검색이라지만, 군인 손에 ‘5만 원짜리’를 쥐어주며 ‘교통 경찰’에게 하듯 무마하려 했던 태수의 태도가 문제였다지만, 총은 실제로 등장했다. 군은 검문을 한다면서 트렁크를 열라고 명령하고, 명령에 응하지 않자 평범한 시민에게 총을 겨눈다. 조준 사격을 할 태세다. 전체 부대원이 태수 부부가 탄 차 한 대를 에워싸고 말이다.

19일 밤 2회는 여기서 끝났다. 그런데 시청한 뒤 고민이 끝나지 않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나의 과민함일까. 이 장면의 선명함 때문에 심란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인가. 살벌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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