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위로가 가장 필요한 순간은, 어쩌면 아무런 위로도 통하지 않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위로란 무엇일까. 언제 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 쓸모없음을 충분히 각오하면서 타인에게 건네는 안타까운 눈짓 같은 것일까.

지난주 <tvN>에서 방영을 시작한 ‘응답하라 1988’은 위로의 드라마다. 우리는 지금 한 편의 드라마 시리즈로부터도 ‘위로’를 구하고 있다. 애타게 말이다. 첫 주를 지켜본 소감은, 감개무량이었다. 우리가 지금 TV를 통해 뭘 보고 싶어하는지를, 비로소 드라마를 보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 사라진 존재들, 돌아갈 수 없는 삶의 양태들에 대한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실은 머리보다 먼저 가슴을 흔들었다.

▲ "응답하라1988"에 등장하는 인물들.(사진 출처 = <tvN> 홈페이지)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격인 다섯 아이들은 극중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나온다. 서울 쌍문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들 중 여학생은 성덕선(혜리 분) 혼자다. 1971년생인 그들. 1988년에 서울올림픽이라는 감격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그들의 이야기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더 희망에 차 있을 거라는 설렘과 기대 속에서 온 나라가 꿈에 부풀어 있던 그 시절. 대망의 ‘선진국’ 진입이 올림픽과 함께 드디어 우리들에게도 찾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시절의 얘기였다. 꿈과 희망만으로도 내일이 기대됐던, 87년 여름으로부터 얻어 낸 민주주의의 소망도 우리를 설레게 하던 시절이었다.

▲ "응답하라1988"의 인물 관계도.(사진 출처 = <tvN> 홈페이지)
시골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똑똑했기에 상고를 갔던 아버지 ‘성동일’이 ‘한일은행 근속 20년 기념’ 화분을 집에 들고 오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그 아버지가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행복한 가장으로 살아갈 수 있던 시절의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응팔’ 세대들에게, 이것은 꿈도 현실도 아닌 잊혀진 전설이다. 지금은 없어진 ‘한일은행’보다, 지금은 아예 꿈도 꾸기 어려운 ‘20년 근속’ 보다, 상고를 나와 보란 듯이 살았던 어떤 긍지 자체가 깨져 버린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 뒤에 우리 사회가 겪은 일들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 우리가, 모든 것이 수십 년 전으로 퇴보할 수도 있음을 어리석게도 직접 겪고 나서야 절감하게 된 우리가 ‘국정교과서’의 10월을 보낸 뒤 맞이한 1988년의 이야기는 어딘가 서글픔을 준다. 현재에 대한 통렬한 슬픔이다.

모든 아이의 부모가 등장하는, 요즘으로선 보기 드문 설정의 이 따뜻한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다. 어느새 가족드라마에서도 부모가 완전히 실종되다시피한, 중견 연기자들의 출연료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야박하기까지 한 ‘가족드라마’들이 주종이었음도 새삼 깨달았다. “내 끝사랑은 가족입니다”라는 포스터 속의 큼지막한 글자가 꽤 어울리는 드라마다.

청소년 자녀를 둔 아직은 팔팔한 부모들의 모습 속에, 우리가 그리워하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이 추운 계절에, 주말을 기다리게 하는 드라마가 한 편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는 있는 것일까. 타임머신이든 복고든 퇴행이든, 일단은 잠시 그 안에 머물러 보고 싶다.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길 때까지만이라도.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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