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제목도 친근하다. 타이완 영화 ‘나의 소녀시대’(Our Times, 2015)는 좀 뻔한데 귀엽고 쿡쿡 웃음이 나온다. 우리나라와 타이완의 입시제도며 청소년들의 관심사, 고교 생활 등이 적어도 십 수 년 전만 해도 대단히 비슷했음에 깜짝 놀랐다. 때로는 우리나라 얘기 같아서, 객석에서는 연신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극장에서 킬킬대며 영화를 본 게 무척 오랜만이었다. 2015년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폐막식 표를 구하지 못한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였다. 꼭 개봉했으면 하는 작품 중 하나다.

타이완 이야긴데 묘한 기시감과 동질감, 심지어 ‘유덕화’에 대한 열광까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놈의 지긋지긋한 ‘행운의 편지’가 맺어 준, 운명과도 같은 사이라니! 그게 그렇게 웃길 줄이야! 디테일이나 사소한 에피소드 때문에 확 애정이 가는 영화였다. 웃고 있는데 어쩐지 코끝이 찡했다. 뻔하고 과장 됐다고 해도, 우리가 통과한 어떤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나 그리움은 늘 소중한 법이니까. 우리 사회만큼이나 타이완도 복고열풍인가 보다. 그럼에도 ‘옛날로 돌아가’면서까지 되새겨 보고 싶은 것들은 그만큼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 기억일 것이다.

▲타이완 영화 "나의 소녀시대"의 한 장면.(사진 제공 = 부산국제영화제)

회사와 일밖에 모르는 여주인공은 삭막한 중간관리자가 된 현재의 자신에 대해 반성하며, 18세 고교시절을 추억한다. “열여덟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길에서 마주치면, 저 애들처럼 비웃겠지?” 이윽고 책상 위의 낡아 빠진 ‘소니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가 신상품으로 변하는 화면을 기점으로 소녀시절이 펼쳐진다. 남녀공학 학교의 ‘남신’과 ‘짱’, ‘여신’의 소개가 이어지고 그저 ‘평범한 아이’인 주인공 나의 이야기도 나온다. 학교에서 싸움 잘하고 공부는 못해도 의리 있는 ‘짱’이, 모범생으로 변해가는 스토리가 주축이다. 정말 어느 학교나 있을 법한 별별 캐릭터가 다 감초로 등장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비민주적’인 학칙이나 ‘학생주임’ 혹은 군사정권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사회 분위기 등도 묘하게 익숙한 느낌을 준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설명은 이렇다. “모두가 고등학교 시절이라는 별난 사춘기를 통과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일이든 또는 얼마나 잊고 싶은 일이든, 그 시절 어딘가에는 아름다운 기억 역시 존재한다. 당신에게 진짜로 있었던 즐거운 순간에 대한 이야기.”

요즘 타이완에서 가장 ‘핫’한 배우들이 출연했다고 한다. 이번에 부산에 방문해 GV(관객과의 대화)도 했다는데, 대체로 영화를 본 관객들도 재밌었다는 반응이란다.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 나오는 ‘초청작 정보’를 옮겨오면 “타이완에서 온 상큼 발랄한 청춘멜로영화. 전형적이긴 하지만 잘 만들어진 멜로영화. 반항적인 학창시절과 엇갈리는 사랑, 뒤늦은 후회,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에 이르기까지 청춘 멜로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은 다 갖춘 셈. 꼼꼼하게 재현해낸 1990년대 당시의 모습 역시 공감의 효과를 더한다. (김지석)”

사진 제공 = 부산국제영화제

마지막에 흘러나오던 노래 가사까지 낭만적이다.

“그대야말로 내가 잡고 싶은 행운이었네.”

부산국제영화제에 취해 있다가 현실로 돌아와 보니 10월도 저물어간다. 유신시대도 아닌데 이게 웬일인가 어안이 벙벙하다. 국사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정말이지, 지금도 몇 년도인가를 묻게 한다. 그 강압적인 입시제도와 학칙과 온갖 규율과 금기 속을 살았지만, 그래도 다들 18세 때가 그립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리움과 추억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회 전체가 수십 년 전의 비민주로 퇴보하지는 않는다는 커다란 믿음이 있기에, 복고열풍도 문화 현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을 추억한다고 해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나 온 시절이 지금보다 민주와 인권을 생각지 않는 시대였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시대를 넘나드는 복고 스토리는 영화관에서만 즐기는 것이어야 한다. 어쨌거나, 다시 그 시절을 살 수야 없지 않은가? 

 사진 제공 = 부산국제영화제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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