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가난한 국민의 피와 눈물로 전기를 만든다는 것

밀양은 이제 서러운 곳, 처절한 곳, 아픈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그 슬픔 때문에 거기서는 꽃이 피었다. 사람이라는 꽃, 이웃이라는 꽃. 그래서 눈물겨운 꽃.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은은한 볕(密陽)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그 땅에, 지금은 이 나라에서 가장 높고 많고 무시무시한 송전탑들이 줄지어 세워지고 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든 기운, 모든 진액을 빨아먹으며 뻗어나가는 765kV 고압 송전탑 공사. 마을의 평화가 깨진 것은 2005년, 한국전력공사가 신고리 3,4호기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 수도권까지 송전하기 위해 밀양에 69기의 765kV 송전탑 공사 계획을 확정하고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주민들의 토지를 강제 수용하면서부터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말기인 1978년에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도 ‘국가’의 이름으로 밀어붙일 근거를 제공한다. ‘밀양’을 대하는 ‘국가’와 현 정권의 (거의) 유일한 자세다. 마치 사람이라고는 아니 생명체라고는 전혀 살지 않는 허허벌판 사막을 다루는 식의 태도로 경찰력을 움직인다. 사람이 있어도, 그냥 ‘계획’대로 한다. 다쳐도 피를 흘려도, 심지어 죽음으로 항변해도.

도시로, 오로지 ‘서울’을 향해서만 질주하는 고압 전류 철탑이 맹렬하게 울어대는 소리. 그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것인지는 박배일 감독의 다큐 영화 '밀양 아리랑'(2015)을 보면 안다. “귀신 우는 소리”라는 주민들의 말이 딱 들어맞는 참으로 끔찍한 소리다. 세상에 저런 기분 나쁜 소리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 더 기괴하게 일러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쥐어짜 흐르는 현재 그 자신의 정체에 너무나 어울리는 소리다.

사진 제공 = 시네마 달
영화 '밀양 아리랑'을 보는 일은 여러 가지로 힘이 든다. 개봉 당시 상영관도 너무나 드물었고, ‘공동체 상영’이 아니고는 접하기도 힘들다. 또 보는 내내 눈물이 흐른다. 거대한 송전탑을 놓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싸우는 할매들의 능청과 여유조차도, 웃으면서 눈물이 나게 한다. 어쩌면 저렇게까지 인간이 인간에게 모질게 굴 수 있는지, 비명이 나올 것 같은 장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밀양의 할매들은 노래를 부르며 웃으며 또 내일을 준비한다. 경찰이 군대처럼 쳐들어오면 “차 온다! 우린 미쳤대이. 이리로 오너라”하며 너울너울 춤을 춘다. 맨 손으로 훨훨.

그 할매들도 때로는 목을 놓아 통곡하신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천년만년 이고 지고 일궜는데, 하늘님도 무심하고 지하님도 무심하지.... 우예 살았는지 아나....” 2013년 12월 16일 고 유한숙 어른이 “송전탑만은 막아야 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음독 끝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 밀양시는 분향소 설치를 불허했고, 강제 철거했다. 유족들도 강제철거 되는 집기들처럼 찬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짓이겨지는 사람과 국화꽃 사이로, 할매들의 단호하고도 비장한 목소리가 입혀진다.
“패륜이죠.”
“제복을 입었으니, 국가죠.”

겉으로는 한전이 주체인 것 같고, ‘국가’는 뒤로 숨어 있다. 그러나 이 송전탑에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엄청난 이권이 개입돼 있고, 지난 정권에서 아랍에미리트 공화국(UAE)과 체결한 47조 원 규모의 계약과 위약금 때문에 밀양을 희생물로 삼는 것임이 이미 보도로 밝혀졌다. 핵발전소 1기당 비용이 30조 정도 들어가며 ‘핵마피아’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만히 앉아 돈 버는” 사업임도 밝혀졌다. “한 줌의 밀양 노인들”을 탄압하고 희생물로 삼은 이유다. 아무리 주민들이 나서서 합리성을 따지고 민의를 표해 봤자, 행정대집행을 막을 수 없었던 이유다. 다 밝혀졌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발버둥치며 열심히 산속 움막을 지키고자 했건만, 그 산의 산신령과 산 너머의 사람들에게까지 간절한 기도가 들리기를 염원했건만, 2014년 6월 11일 새벽 6시 행정대집행은 이루어졌다. 그날의 ‘참사’보다 더했던 장면들은 사실 당시 뉴스를 통해 관심 있는 분들은 이미 보았을 것이다. 그 현장이 전쟁터가 아니라면 그 어디가 전쟁터일까를 반문하게 했던, 자국 경찰에 의한 자국민에 대한 탄압. 그리고 숙박비를 포함한 경찰 경비로 그날까지 경찰이 썼다는, 세금으로 충당될 공식비용 99억.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산길에 경찰 2500명과 공무원 250명이 들어와 움막 4개를 하루만에 철거한 그 새벽. 

사진 제공 = 시네마 달
영화는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소리’로만 느끼게 한다. 영상은 너무나 평화롭고 정겹다. 이전에 찍은, 어쩌면 망중한 같은 행복했던 순간이다. 모두가 둘러앉아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게 맛난” 밥을 먹으며 웃는 장면. 그 장면에 들어가는 음향은 그 새벽에 오갔던 수많은 소리들이다. 고문당하는 인간의 비명, 심장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슬픈 악다구니.... 그리고 힘센 쪽은 소리도 없다. 밀양을 지키려던 사람들은 동요 ‘고향의 봄’을 부르며 경찰과 대치했던 듯하다. 비명 소리 악쓰는 소리에도 노래는 끊이지 않는다. 울면서도 노래는 이어진다. 그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꽃피는 동산, 울긋불긋 꽃대궐이 있던 동네는, 그 속에서 놀던 그리운 때는 이렇게 또 짓밟혀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동요 ‘고향의 봄’은 이렇게 슬픈 노래였다.

사람이 전자레인지 속에 들어가 사는 것과 같은 효과라는 송전탑 아래에서의 매일매일의 일상. 잠이 오지 않고 우울증과 각종 암까지 유발하는 그 철탑 아래의 삶. 내내 이어지는 헬기의 굉음들까지도 이겨냈건만, 이 “귀신 울음소리”와 눈만 뜨면 보이는 높은 송전탑 때문에 억장이 무너진다는 할매들. 그래도 할매들은 다시 일어섰다. “철탑 뽑으러 가자~”면서 다시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간다. 울며 웃으며 다시 걸어간다. 사랑하는 것들과 끝내 함께 하기로 한 할매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기가 너무나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밀양에서는 오늘도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실은 한 달도 더 전에, 한가위 이전에 본 영화의 리뷰를 이제야 쓴다. 마음에 내내 맺혀 있었지만, 어떻게 풀어 써야 할지 고민스러웠나 보다. 광명 탈핵모임 밀양댁과 광명 YMCA가 주최한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보았다. 공동체 상영이든 다운로드를 통해서든 보다 많은 분들이 '밀양 아리랑'을 봤으면 한다. 정겹고 따뜻하다. 사람이 철탑을 녹일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따뜻함으로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제공 = 시네마 달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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