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이 글에는 영화 '마지막 침투'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을 것 같은 ‘5시간 심야영화 보기’를 감히 하고 나서 몸살이 났다.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다가, ‘미드나잇 패션(Midnight Passion)'에까지 도전했다. 마지막 밤이 아쉬워서였을까. 영화의 전당 내 ‘하늘연 극장’은 야밤에 영화를 보겠다고 몰려온 이들로 꽉 찼다. 어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극히 당연한 일 같았다.

세 편 내리 상영을 끝내고 나니 지하철이 다닐 시간이 됐다. 영화는 세 편 다 재미있었다. 야밤에 어울리는 엽기적이고 독특한 작품들이라 사실 잠도 못 자고 흥미롭게 봤다. 여차하면 잔다는 계획은 틀어지고, 말똥말똥하게 집중해서 봐야했던 그 첫 작품이 영화 ‘마지막 침투(원제: Made in France)'였다. 유럽 내 테러조직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이다.

▲ 9.11사태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주인공 삼(sam)은 기자다. 프랑스 내의 이슬람 지하드를 취재하기 위해 이슬람교도인 척 잠입해 열성신도 드리스, 시드, 크리스토프 무리와 친해진다. 6개월여를 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함께 먹고 자다시피 붙어 생활했다. 지하드 조직을 움직이는 ‘그분’을 터키에서 직접 만나고 훈련도 받고 돌아왔다는 하산이 복귀한 뒤, 이들은 하산의 통제 아래 본격적인 테러를 기획한다. 아니 ‘그분’의 명령과 지시가 구체적으로 내려지기 시작한다. 오직 하산에게만 그분의 지시가 내려지기 때문에, 하산 자체도 절대적 존재가 된다.

얼핏 열절한 신앙심, 혹은 자기희생적 결단처럼 보이는 이들의 ‘형제애’는 처음에는 꽤 그럴듯한 ‘전사’들의 조직처럼 선언도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허술한 애송이들의 모임일 뿐이다. 총 한 번 제대로 쏘아 본 적 없는 이들은, 실전엔 백지상태다. 우왕좌왕하며 보는 이들을 불안하기 짝이 없게 만드는데, 그럼에도 테러를 모의하고 충성을 맹세한다.

무기를 사고 실제 살인까지 이뤄지자 삼은 겁에 질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후 어쩔 수 없이 이중스파이 노릇을 해야 한다. 양쪽에서 ‘배신’에 대한 위협을 받으며 목숨을 부지하려면 양쪽에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삼은 필사적으로 견딘다. 경찰은 ‘조직’ 전체를 파악하고 일망타진 하겠다는 일념으로, 더 큰 것을 계속 기대한다. ‘지도자’ 검거 욕심으로 결국 청년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도 ‘개입’하지 않는다.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시점’을 노린다. 경찰이 바라는 것은 프랑스 안에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지하조직 소탕’이다. 주인공 삼을 이용해 지하드의 실체를 밝히려는 경찰의 야욕은, 하산의 광기에 필적한다.

삼은 결국 무리 속으로 돌아가 테러 준비에 가담하던 중, 멤버 네 명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서 뜻밖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연속적인 죽음, 아니 개죽음의 행렬이다. 아무 이유도 의미도 없는 죽음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바쳐지는 기도. 뼈저린 고뇌와 후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발을 빼면 너도 테러 공범”이라는 경찰의 협박에 꼼짝도 할 수 없이 갇힌 상황. 그저 좋은 기사를 쓰고 싶었던 삼은 이제 산송장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되고 만다. 결전과도 같은 대규모 테러가 예고되어 있던 날, 이들이 마주한 진실은 그야말로 참혹하다.

원제는 극장에서 상영 시 'Made in France'로 나오는데, 영화 제목에는 'Inside the Cell'로 나온다. 제도, 경찰, 젊은이들의 불안과 방황.... 어디든 사람을 부속품이나 파편처럼 여길 뿐이다. 끔찍하다. 결국 관객이 마지막에 가서 보게 되는 것은 폐허다.

‘보스’는 없었다. 경찰이 그토록 검거에 열을 올린 지도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산은 국경을 넘어서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문제는 ‘그분’ 혹은 ‘그것’이 없는 자리에서 맹목이 꿈틀거리며 피어난다는 사실이다. 파키스탄까지 갔으나, 남들 눈에는 메카를 다녀온 것으로 보였으나, 하산은 텅 빈 맹목만을 자기 눈동자에 담아왔다. 모두 죽어야 드러나는 실체 아닌 실체.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텅 비었으면서도 뭔가에 강렬히 사로잡혀 있던 하산의 눈이다. 쿠란 덕택에 목숨을 건진 ‘기자’ 삼은 이 모든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지만, 그 또한 그저 지옥에서 우연히 살아난 듯 보일 뿐이다. 믿음과 맹목의 차이는 과연 선명한 것인가. 미드나잇의 밤은 정말이지 깜깜했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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