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그녀는 예뻤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옛날에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아주 뛰어나게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는 말이다. 어렸을 때 예뻤다고 해서 커서도 예쁠 거라는 추론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떡잎’이 ‘될 성 부른 나무’를 만들지만, 가끔은 ‘역변’이라는 게 존재한다. 드물게도 그런 역변을 당해, 어린 시절의 친구가 자신을 못 알아볼 지경이 된 여자가 있다. <MBC> 수목극 ‘그녀는 예뻤다’의 주인공 김혜진(황정음 분)이다.

‘그녀는 예뻤다’는 이 외모 역변과 함께 부유했던 집안의 몰락이 겹치며 콤플렉스 덩어리가 된 혜진의 이야기다. 어릴 적 친구이자 못생긴 외톨이였던 지성준(박서준 분)이 멋지게 변해 눈앞에 나타나자, 혜진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로 한다. 날라리지만 외모 하나는 끝내주게 예쁜 룸메이트 단짝 친구 민하리(고준희 분)를 약속 장소에 내보낸 것이다. 평생 다시는 성준을 만날 일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리에게는 약간의 ‘연기’ 혹은 ‘대역’을 시키고, 아주 멀고 먼 곳(이를테면 영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 둘러대게 한다. 지성준은 어렸을 때의 모습처럼 여전히 예쁜 ‘혜진’과의 만남에 흐뭇해하며 돌아간다. 이쯤에서 끝나기는커녕 여기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보통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이다.

심각한 취직난 속에서 이력서 100번 쓰고 겨우겨우 들어간 회사, 그것도 인턴. 심지어 ‘관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온갖 잡심부름을 하는 혜진. 원래 채용됐던 부서도 아닌 <모스트>라는 패션잡지의 한국판을 만드는 편집부 쪽으로 파견된 혜진은 거기서 날벼락을 맞는다. 바로 지성준이 미국 본사로부터 부편집장으로 부임해 온 것이다. 일 못하고 늘 주눅 들어 있는 혜진에게 평생 처음 들어볼 만한 모욕적인 지적을 일삼고,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며 대놓고 따돌린다. “김혜진이라는 이름은 당신에게 과분하다”는 독설까지 날리는 끔찍한 상사다. 아니 상전이다.

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헤어스타일이며 외모며 자칭 타칭 폭탄이 된 혜진이지만, 그래서 성준을 피해보려고 처음엔 사표도 고민해 보지만, 점점 오기가 발동한다.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오기가 점점 혜진을 예전의 능동적이고 유연한 사람으로 바꿔 놓는다. 자신이 ‘진짜 혜진’임을 숨기기 위해 여전히 전전긍긍하지만 혜진은 점점 성준에 대한 생각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처음엔 친구에 대한 의리로 시작된 ‘혜진 대역’이었으나 어느새 성준을 사랑하게 돼버린 민하리의 고민도 깊어진다. 이 와중에 성준은 자신의 첫사랑인 진짜 혜진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6회까지 방영된 지금은 이들의 삼각관계가 서로를 속이는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사실 처음에 여성 시청자들에게 진짜 부러운 건 민하리 같은 친구였을 것이다. 하리와 혜진이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는 방식이 참 좋았다. 그런 친구 하나만 곁에 있다면 무서울 게 없을 것 같고, 힘든 일이 생겨도 다시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길 것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였다, 혜진과 하리는. 그들이 누군가와 거짓말로 시작한 관계 때문에, 지금 그들의 우정은 완전히 금이 갔다. 비밀을 서로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속으로 각자 끙끙 앓고 있다. 동상이몽이다.

모두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으라고 시작한 일이었으나, 아무도 기쁘지 않은 기묘한 역할놀이가 돼 버린 ‘혜진 대행’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꼬인다. 성준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분열 증세에 시달린다. 성준은 미국에 있는 주치의에게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내가 15년 전 알던 사람과 겹쳐지고, 내가 알던 사람이 낯설게 느껴진다"라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성준은 어렸을 때처럼 여전히 예쁜 ‘혜진’(실제로는 하리)을 보고 있지만 혼란만 가중된다. 그녀를 겨우 찾아냈으나, 여전히 혼잣말 같은 대화를 이어 가는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관계는 갈수록 뒤죽박죽이 된다.

아무리 ‘폭탄’이랍시고 주근깨를 그려 넣고 부풀린 파마머리로 분장을 했지만, 주인공 황정음은 예쁘다. 예뻐 보이려는 자세를 포기하고 씩씩하고 의연한 혜진을 연기하는 동안, 점점 더 예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식의 드라마는, 그럼에도 주인공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서로를 알아보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다소 뻔한 스토리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등장하는 개성 넘치는 주변 인물들이 얼마나 웃음을 주느냐가 관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역변’의 드라마를 보는 일은, 웃기는 동시에 서글픔도 준다. 우리가 얼마나 예쁜 얼굴에 집착하는지를 생각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게 하는, 말하자면 외모 콤플렉스에 대한 돌직구를 맞은 기분이랄까. 재밌긴 한데 따끔하다. ‘얼굴’이 주는 착시 때문에 서로를 몰라보는 주인공들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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