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교실을 살리는 역사교육으로 맞서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화여대 강연에서 대학생들에게 연애를 하라고 당부했다. 본인 딸이 연애를 안 해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연애를 해보라는 조언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김 대표가 본인의 조언을 스스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복수의 관점

연애를 통해 크게 배울 땐 애인과 싸웠을 때다. 평소에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이지만 싸울 때면 한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 된다. 상대가 왜 서운해 하고 토라졌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때도 있다.

그렇게 말씨름을 길게 하다보면, 같은 사건을 두고도 기억이 참으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대가 기억하는 구체적인 정황도 내 기억과 다른 때도 있지만,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넘긴 일이 내겐 중요한 경우도 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이런 때다.

애인과 다투면서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다보면 자신의 기억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된다. 내겐 별 것 아닌 말이 상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거나 심지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던 일이 순간적으로 떠오를 때도 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보면 단 하나의 절대적인 기억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각자의 기억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둘 사이의 원칙을 하나씩 세울 수 있게 된다. 마치 두 눈으로 거리를 잡아내듯이 연애를 통해 복수의 관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연애는 서로의 중요함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느낌이나 가치에 따라 두 사람이 지나온 삶을 이야기에 담아 공유할 때 관계가 깊어질 수 있다.

한 사회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는 그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경합하는 갈등의 장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단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제성장률을 가지고 이야기해왔다. 불안정한 노동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전태일의 죽음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어느 재벌에겐 경제성장 과정 중 발생한 부차적인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 역사적 사건들이 차지하는 중요함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곤 한다.

역사는 중요도에 따라 짜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언제나 복수로 존재한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책 한 권에 담으려 한다면 역사적 사건들을 중요도에 따라 선별하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때로는 그간 의미 없다고 치부했던 일들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오늘날 중요도에 따라 한편의 이야기로 구성한 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강한 기자

역사는 정치적인 것

역사가 구성된 이야기라는 점은 공자가 "논어"에서 언급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역사학자의 정직성을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데, 글자 그대로 역사를 지어냄 없이 오로지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는 태도를 강조할 때 쓰인다.

공자는 중국의 전설 속 성왕(聖王)들의 역사를 다룬 "서경"을 편찬하면서 ‘술이부작’했다. 그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폭력이 극에 달했던 시대였는데, 공자는 폭력을 윤리로 다스리기를 바랐다. 그래서 "서경"을 통해 당대의 제후들에게 성왕들을 본보기로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서경"은 그러한 목적에 철저히 맞추어 쓰였다. 그래서 하나라를 뒤엎고 은나라를 세운 탕왕이나 은나라의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창시한 무왕의 인자함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무왕이 주왕의 목을 쳐서 피를 벌컥대며 마셨다는 식의 기록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여기엔 새로 지어내거나 왜곡한 내용이 없다. 당대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술이부작’은 이런 것이다.

따라서 역사논란에 있어서 필요한 질문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썼는가가 아니다. 그런 역사를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도리어 필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날 도처에 널린 비참함은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역사적 사건들 중 무엇을 중요하게 기억할지를 조율하는 과정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이러한 질문은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에만 생명력을 얻는다. 과거를 묻고 진단하는 일은 매우 번거로운데, 이를 통해 세계가 변한다는 기대가 없다면 그러한 수고를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정치가 생명력을 잃을 때 역사도 함께 죽는다.

“정권이 열 번 바뀌어도 안 바뀌는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는 공언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권이 열 번 바뀐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50년인데, 그때까지 역사가 바뀌지 않는다고? 이건 정치가 죽은 사회를 50년 넘게 이어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교실을 살리는 역사교육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 논란은 결국 오늘날의 정치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교육 내용을 매번 바꾸는 것도 적절하진 않다. 해법은 간단하다. 국사가 아니라 역사철학을 가르치자. 사실, 검정 교과서가 8종이나 있어도 학생 입장에선 하나의 국사만을 배울 뿐이다. 학생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나열해서 외우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사관들을 다루고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참교육’이 필요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국가기관은 국사 교과서를 만들 것이 아니라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같은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편이 낫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러한 아카이브를 이용할 수 있을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법을 발굴해야 한다. 요즘 교실에 가보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여섯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한국사를 통사로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학교나 지역에 대한 역사를 조사하고 발표해보도록 돕는 교육이 훨씬 현실적일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 자료를 찾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까지 도울 수 있다면 교실도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이들의 말에서는 역사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찾아볼 수가 없다. 괜한 논란만 일으키면서 그저 정권이 10번 바뀌어도 이렇게 살라고 겁박하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어 보인다. ‘역사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이들이 저들을 대신해서 교실을 살려야 한다.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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