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

지난 4일 벌어진 목함지뢰 사건 뒤 남북은 모두 준전시 상태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육군 병사 50여 명이 전역연기를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백골사단으로 불리는 3사단에서는 최초 전역연기자가 나온 이래 총 7명의 병장이 복무기간조정 희망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골용사의 다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3사단에서는 행사나 훈련 중에 병사들에게 이른바 대적관구호를 외치도록 요구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정은/ 김정은은 미친개 몽둥이가 약약약/ 부관참시 김일성 김정일 능치처참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박자박자!”

이미 전역을 한 예비군 몇몇도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며 SNS에 군복 인증샷을 올렸다. 예비역 장교의 아내라는 사람들 역시 남편을 전쟁터로 보낼 준비를 했다며 인증샷 대열에 합류했다. 전역을 한 뒤에도 군복을 챙기는 사람들 역시 평화를 말한다. 다만,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예비군복과 전투화 ⓒ강한 기자
한반도 전체가 북한 정권의 지배 아래 놓인다면 끔찍할 것이다. 남한의 대다수 시민들은 북한 체제 하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북한 체제가 개인의 자율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면 별다른 변론 기회도 없이 숙청될 염려 속에 살아가야 한다면 전쟁을 감수하더라도 막고 싶은 게 자연스럽다. 자유와 정치적 권리는 그만큼 소중하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런데 전쟁에 져서 한반도의 남쪽이 북한 정권의 지배 아래 놓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북한의 침략으로 ‘적화통일’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쟁이 난다면 북한의 위협적인 재래식 무기는 남한의 최첨단 무기들과 함께 한반도를 공멸로 이끌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나리오보다 훨씬 현실성이 높은 쪽은 한국이 시나브로 북한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군대를 가진 국가? 국가를 가진 군대

남한의 젊은이들은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조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외국에 나갔다 온 사람들은 한국이 참으로 답답하고 살기 힘든 나라라고 지적한다. 세계 어디도 한국만큼 숨 막히게 경쟁을 요구하지도, 아주 잔인하게 사람을 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나 양적 성장이 정체하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국 기업은 초국적기업으로 변해서 돈을 벌어도 이 땅에선 일자리를 더 만들지 않고, 부동산은 이미 소수 부유층이 과독점해버린 상태다.

건물주뿐만 아니라 누구나 나이, 성별, 군경험 등등 가만히 앉아서도 ‘갑질’을 할 무언가를 챙긴다. 남보다 힘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남한의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며 고발하고 있는 건 모두가 지대(地代)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다.

더 이상 양적성장이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지배자들은 경제개발 5개년 같은 ‘계획’을 제시하는 대신에 밑도 끝도 없이 ‘창조’를 주문하고 있다. 이젠 민망한지, 파이를 더 키울 때까지 참고 기다리란 말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일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도록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재벌이나 대기업 임원들의 몫은 전혀 건들지 않으면서 임금피크제를 강행하겠다는 정부의 ‘노동개혁’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안정적인 일자리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배자들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핑계로 언제든 비판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동안은 ‘헬조선’이 어떻든 북한보단 낫다고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운데, 지배자들은 오직 북한만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니 사회가 꽉 막혀버렸다. 비판이 막힌 자리는 훈육이 채워버렸다. 국민들은 군사적, 경제적 전쟁을 치루기 위한 5분 대기조처럼 훈육될 뿐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쟁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동안 양측의 정권만 이익을 봤다. 촘스키가 이스라엘을 두고 ‘군대를 가진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가진 군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한반도에 더 어울려 보인다. 남과 북 모두 사회 전체가 커다란 내무반이 됐다.

북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까닭

북한 정권의 존재가 질식할 듯한 갑갑함을 준다면, 남한 내부에서 자생적인 전체주의가 싹트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 우선이다. 남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가장 우려해야 할 일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에선 안보 상황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나섰다. 노동계가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해서 집회를 여는 것과 관련해 여당의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당장 취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발언은 이 사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니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집회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에 맞서서 단호하게 지켜내려던 가치들이 이렇게 깨져나가고 있다. 북한 정권이 지배하는 것도 아닌데 북한과 꼭 닮은 모습으로 경직되고 있다. 이런 사태일수록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만 고취시킬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지키고 싶은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더더욱 떠올려야 한다.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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