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

결혼을 한다니 참 많은 지인들께 조언을 들었다. 아내에게는 좋은 사람 많으니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조언이 제일 많다.

최근 '의미 없이 비싼' 예식에 대한 비판을 기사를 통해 접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결혼 자체는 제쳐 두고 예식만 두고 봤을 때, 결혼식의 의미란 무엇일까? 재작년에 결혼한 친구는 친환경 드레스를 입어 보려고 했더니 예산이 훌쩍 커져서 포기했다고 했다. 결혼식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면 돈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의미 있고 예산도 적게 든 예식으로 꼽아볼 수 있는 건 시민청에서 있던 결혼식이었다. 대관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한 시간에도 몇 팀씩 예식을 치루는 웨딩홀과 달라서 집중도 잘 됐다. 그날 결혼을 올린 부부는 서로에게 하고픈 이야기를 편지로 낭독하고, 하객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눴다. 하객들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예식에 쓰였던 꽃들을 화분에 담아 가져갈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올해를 넘기지 않으려다보니 시민청 결혼을 포기했다. 올해 예약은 이미 다 차 있었다. 다른 곳들은 대관료가 수백만 원이라 다른 부분에서 딴짓(?)을 하기 어려웠다. 폐백이나 예단 같은 것을 빼고 줄이고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저렴하기만 하다고 예식이 의미 있는 건 아니라서 고민을 했다. 기왕에 하는 예식이라면 축복을 부탁드리고 싶은 신부님의 주례로 혼인미사로 드리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우리 부부도 될 수 있으면 업체를 끼지 않고, 가능한 한 소소하게 예식을 올리고 싶었다. 예식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까진 그랬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청담동에서 배운 ‘현실’

요 며칠은 결혼식 준비 때문에 청담동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웨딩플래너를 만나서 드레스와 메이크업을 예약하고, 본식 사진관도 세 군데나 알아봤다. 남들처럼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맞추느라 열심히 알아보고 다니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사전 촬영을 하는 것은 힘만 들지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해서 뺐다. 하지만 예식 당일에 사진촬영을 해 줄 사진관은 성당에서 계약한 사진관 가운데서 알아봐야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다들 사진은 잘 찍는 것 같았다. 사진관을 선택할 시간에 양가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한 군데로 정했다.

그런데 처음 방문한 사진관에서 상담을 해 준 실장님은 우리 부부가 결혼식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타박했다. 그는 우리에게 한 시간 동안 ‘현실’을 가르쳐 줬다. 그가 가르쳐 준 현실에서 스드메는 들인 돈만큼 가치가 눈에 보이는 요물이었다. 웨딩드레스를 고를 땐 무엇보다 재질이 중요했는데, 그에 따라 아주 볼품이 없이 보이거나 굉장히 귀품이 나기 때문이었다. 메이크업도 비쌀수록 가볍고 투명하게 연출을 해 주기에 돈을 아끼면 안 되는 분야였다. 비록 폐백은 안 하더라도 웬만하면 좋은 한복을 입고 인사를 해야 피로연 사진도 잘 받을 수가 있었다. 실장님은 현실적으로 이 정도는 맞춰야 기본은 갖추는 거라고 거듭 말했다. 스드메 영업이었다.

그는 비용에 따라 보기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알려 주겠다며 앞서 결혼을 올린 부부들의 사진을 보여 줬다. 비싼 드레스를 입은 신부일수록 사진이 잘 받긴 했다. 그는 메이크업에 쓴 돈이 적으면 적을수록 얼마나 촌스러워지는지 보라며 사진들을 연신 찾아냈다. 확실히 무거워보였다. 마지막으로 셀프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사진을 보여 줬을 때, 적어도 사진 상에서는 드레스 재질에 따른 차이가 확연하다는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사진관을 나오면서 다른 사진관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사진관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틀렸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웨딩드레스가 값지게 보이려면 재질이 중요하고, 비싼 재질일수록 보기에도 좋은 것이 현실이었다. 메이크업이나 한복도 마찬가지다. 예식이 끝나고 타고 나갈 웨딩카를 경차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요컨대 실장님이 알려주고자 했던 현실은 상품에 따라 소유자의 급이 달라지는 자본주의였다. 그가 제시한 금액 역시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하진 않았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결혼식

다만,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느껴졌다. 우리 부부는 사진관에서 나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느낀 불편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사진관의 실장님은 단 한번도 우리가 예식을 어떻게 치르고 싶어 하는지 묻지 않았다. 셀프 웨딩드레스는 어떻게 찾게 됐는지, 폐백은 어째서 안 하려고 하는지 등등. 실장님은 그저 우리가 준비한 수준에서는 불행하게 느껴야 한다고 다그쳤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현실을 몰랐던 건 사실이다. 셀프 웨딩드레스가 저렴할 수 있는 건 중국산 합성수지처럼 값싼 재질로 만들거나 여러 사람에게 빌려주기 때문이다. 결혼 예식에 필요한 모든 상품들이 어쩌면 싼 게 비지떡일지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쓰는 만큼 근사해지기는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역시 결혼식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컸다. 우리가 올릴 예식인데 당연했다. 우리를 아끼는 지인들 앞에서 서로를 책임지며 살아가겠다는 서약을 하고 축하를 받는 자리니만큼 준비에 소홀함이 없기를 바랐다. 다만, 허례허식은 피해서 작고 소소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 부부에게 잘 어울리는 예식이라고 생각했다.

설사 현실을 모르는 생각이었다고 해도 우리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줬다면 좋았을 텐데. 실장님은 우리가 빨리 회개해서 적당한 ‘급’을 갖추기를 다그칠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웨딩플래너였던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믿을 수 있을만한 플래너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왕에 스드메 계약을 한다면 우리가 신뢰할 수 있을 친구가 소개하는 분과 하고 싶었다. 후배가 소개해 준 플래너와 정식으로 계약을 하던 날, 사무실을 나서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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