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과천 서울대공원의 동물원에 가면 가장 먼저 하마가 보이고 제일 먼 지점에 호랑이가 쳇바퀴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좁아터진 우리에 갇혀 살아도 먹이가 보장되고 위협하는 존재가 없으니 천수를 누릴 텐데,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암수가 부지런히 새끼를 낳으면 좁은 우리는 더 좁아지지만 제한된 면적을 늘릴 수 없을 텐데, 성장하는 새끼를 같은 공간에 보호할 수 없다면 어디로 분양해야 한다. 어디가 좋을까? 하마도 호랑이도 선뜻 받으려는 이 드물 텐데.

서울대공원 측은 가끔 전시된 동물이 새끼를 낳았다고 언론 앞에서 자랑을 한다. 대개 동물은 암수가 같이 있지만 새끼들이 자주 태어나지 않는 걸 보면 번식을 억제하거나 자연과 딴판인 동물원의 환경에서 짝짓기가 순탄하지 않은 모양이다. 암수가 서로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물원의 우리를 호기 있게 탈출했다 며칠 만에 기진맥진 붙잡힌 말레이곰도 먼저 들어온 암컷에 영 관심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빙 둘러 바라보는 공간에서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겠다 싶다.

동물원은 제국주의 산물이다. 제국주의자가 권위를 과시하려고 식민지에서 잡아 온 동물을 전시하려고 세운 것인데, 아프리카 일원에서 동물을 잡아 오는 과정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서너 마리의 건강한 동물을 사로잡아 가져오기 위해 한 집단을 도륙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의 자연은 황폐해지곤 했다. 꼬리를 파리채로 사용하기 위해 하마를 죽이고 밀렵한 고릴라의 발바닥을 파이프 재떨이로 사용하는 만행을 버젓이 저지르며 죄의식이 없었다. 심지어 원주민을 동물원에 가둬 아기에 젖먹이는 모습을 전시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20분에 한 차례 분열하는 미생물이 10시간 동안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분열한다면 10억 마리가 넘게 늘어난다. 그런 미생물이 36시간 아무 탈 없이 분열하면 지구 표면에 성인 무릎 높이로 쌓일 것으로 추정하는 전문가의 글을 보았다. 이후 한 시간 더 분열한다면? 무릎 높이의 8배가 되겠지. 사람 키보다 높겠지만 생태계는 먹고 먹히며 순환하기에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 미생물의 몸을 구성할 유기물 영양분을 조달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사람이 먹이를 충분히 주고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축은 사고나 질병이 내습하지 않는 한 공간이 허락하는 만큼 그 수가 늘어날 수 있다. 양계장을 빼곡히 채운 닭과 축사가 미어터질 만큼 북적거리는 돼지가 그렇다. 그런 닭과 돼지는 끔찍한 환경에서 죽지 못해 산다. 아니 어린 나이에 일괄적으로 도축된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사람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은 어떨까?

과천 동물원은 창경원 시절보다 동물에 맞는 환경을 만들었다지만 동물의 처지에서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작정 철창에 가둬 놓고 구경하는 야만에서 탈피했다지만 좁은 공간에 우왕좌왕하거나 쳇바퀴 돌아야 하는 처지를 뿌듯하게 여길 리 만무하다. 그래도 성체가 되도록 보호되므로 가끔 새끼들이 태어난다. 우리는 더욱 비좁아지고 서울대공원은 해마다 분양광고를 낸다. 잉여동물을 내보내야 나머지가 편안하기 때문이겠지. 자연에 없던 잉여가 동물원에서 생기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은 참혹할 때가 많다.

외부로 분양된 잉여동물은 어디로 갈까? 누가 어떻게 키울까? 서울대공원은 그 과정을 전혀 모니터링하지 않고 있다. 2014년 덴마크의 한 동물원은 새로 태어난 기린을 공개적으로 죽여 사자의 먹이로 나눠 주었다는데, 그뒤 그 동물원 원장은 감당하지 못할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냉동해 둔 닭을 먹는 데 만족해야 하는 서울대공원의 맹수들은 잉여로 태어난 초식동물을 맛보지 못한다. 동물권을 고려하는 관리지침 때문이 아니다. 분양된 40여 마리의 사슴과 흑염소들은 ‘녹용탕’을 끓이는 식당으로 직행했다고 하므로.

평범하지 않은 식당으로 팔려가더라도 관행적으로 침묵했던 서울대공원 측은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당황해 한다. 동물권을 옹호하는 시민단체는 서울대공원과 서울시에 “동물 전시와 체험에서 생기는 ‘잉여동물의 인도적 관리’를 위한 방안을 도출하여 근본적 해결 방안을 찾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 방법은 여럿 있을 것이다. 잉여 발생을 막는 불임수술도 있지만 우리의 면적을 늘리고 전시 방법을 동물의 눈높이에서 바꾸는 일도 모색할 수 있다. 그를 위해 동물원의 면적을 확장할 수 없다면 전시하는 동물의 수와 종류를 줄여야 한다. 잉여를 막아야 한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동물원은 동물의 생태를 최대한 고려해 전시공간을 꾸민다고 한다. 동물의 눈과 코와 귀에 사람의 모습과 흔적을 느끼지 않게 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배려한다는 것인데, 군대를 없앤 코스타리카는 동물원을 없앨 것을 고민한다고 한다. 빙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동물들은 사육사들이 아무리 잘 보살펴도 행복할 수 없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면 관음증과 학대일 뿐이다. 동물원이 동물의 자원과 유전자를 보전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면 동물의 눈높이에서 해야 옳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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