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올 9호 태풍 찬홈이 열대성 저기압으로 세력을 잃고 옹진반도 부근으로 상륙할 무렵, 홑이불을 걷어낸 팔과 다리를 모기가 물었나보다. 가렵지 않다면 내쳐 자겠지만 여간이 아니다. 이맘때 도시 모기는 지분거리는 듯 여기저기 찔러대는데, 쌀알만큼 부어오른 부위마다 참기 어려운 가려움을 안긴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났겠지.

2010년 중부지방의 추석연휴 첫날을 강타했던 태풍 곤파스보다 약하더라도 찬홈은 베란다 밖 완충녹지의 일본잎갈나무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너울거리게 만들었다. 한데, 그 주변 어디에서 맹꽁이 한마리가 애처롭게 운다. 비가 내리면 5월 하순부터 나와 우는 맹꽁이는 보통 장마철에 번식에 들어간다. 1960년대 라디오 애청자의 심금을 울리던 대중가수 박재란은 '맹꽁이 타령'에서 “장마철에 맹꽁이야 너는 왜 울어, 걱정 많은 이 심정 흔들어주나” 노래했는데, 대도시 아파트단지 완충녹지대의 맹꽁이는 태풍이 오자 울었다.

온통 아파트단지로 점철된 인천 연수구는 맹꽁이가 많던 농촌이었다. 인근 갯벌을 메워 넓은 주택단지를 만들면서 논밭 위에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를 뒤덮자 대부분의 맹꽁이는 이내 사라졌지만 장마철이면 한두 마리 완충녹지대에서 울었다. 올해도 장마철 이전 한차례 비가 내리자 몇 마리 울었지만 금세 조용해졌다. 5월 말부터 닥친 무더위가 알량하게 고인 완충녹지의 빗물을 바싹 말렸기 때문이리라. 온다던 장마가 남쪽 지방에 머물다 태풍 찬홈에 밀려와 종일 비를 뿌리자 겨우 한 마리 나왔는데, 밤새껏 짝 찾아 운다. 서럽게도 운다.

저 맹꽁이 과연 제 짝을 찾을까? 작년 장마철에 여럿 수컷이 경쟁적으로 울어댔는데 올해는 한 마리에 불과하다. 짝을 찾지 못하면 내년엔 울음소리가 사라지는 걸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명맥을 유지하던 도시의 가엾은 맹꽁이는 자취를 감추려나? 농경지를 거듭 매립해 주택단지나 규모가 큰 음악회장으로 개발하려 중장비를 동원할 때마다 나타나던 ‘멸종위기종 2급’인 맹꽁이는 대체서식지로 쫓겨났는데, 환경단체의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생매장되었을 그 맹꽁이들은 가녀린 삶을 유지하고 있을까?

▲ 맹꽁이 (사진출처=commons.wikimedia.org)
농약이 본격적으로 살포되면서 급격히 자취를 감추던 맹꽁이는 최근 도시화가 농촌으로 확대되면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서식지에 농약이 줄어들자 땅 속에서 고개를 든 맹꽁이들은 무거운 중장비의 바퀴가 패어놓은 길가의 작은 물웅덩이에 나와 장마철 밤에 울었다. 하지만 아파트단지로 개발된 지금, 그 지역은 장마철의 맹꽁이 울음소리로 걱정을 달랠 수 없다. 올해 중부지방은 장마철에도 메말랐다. 장마철 이전에 잠시 나왔던 맹꽁이 수컷들은 짝 만나기 어려웠을 테고 암컷이 낳은 알도 바싹 말라버렸을지 모른다. 태풍이 뿌린 비가 만든 완충녹지대의 물웅덩이는 얼마나 오래 고여 있을까?

햇볕이 강한 여름에 번식하는 맹꽁이는 알에서 성체로 변태하는 데 3주일이면 충분하다. 장마철의 물웅덩이는 맹꽁이의 생사를 좌우하는데, 찬홈 뒤에 장마는 이어질까? 찬홈에 이어 11호 태풍 낭카가 비를 뿌릴 테니 괜찮을까? 맹꽁이 알은 끈 풀린 목걸이의 진주처럼 물에 떠다니는데, 바람을 동반하는 태풍은 맹꽁이 알을 안전한 물웅덩이로 안내하지 않을 것 같다. 장마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지 않는다면 맹꽁이는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 물 고일 곳이 드문 도시일수록 더욱.

아파트가 드물고 주변에 습지가 많았던 예전의 모기가 물면 그 주변이 밤톨만큼 부풀어 며칠 가려웠지만 홑이불 밖의 손발을 지분거리는 요즘 모기는 이삼십 분 바싹 가렵게 만들다 만다. 요즘 모기는 예전과 종류가 다른 걸까? 예전의 모기는 사라졌을까? 모기 따위가 사라지든 말든 관심이 없겠지만 맹꽁이가 사라진다면 좀 서운하겠지. 한데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자연의 이웃’은 많다. 땅강아지와 집게벌레, 버들붕어와 송사리, 참개구리와 무당개구리, 도마뱀과 실뱀은 모두 어디로 갔나? 흔하던 때까치도 보이지 않는데 서울시는 제비를 보호대상종으로 지정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참새마저 드물어졌다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많은 생태학자들은 지금을 ‘제6의 멸종’에 접어든 시대라고 경각심을 전한다. 지금부터 2억 5000만 년 전 당시 분포하던 생물의 거의 90%를 사라지게 한 대멸종을 비롯해 가장 최근인 6500만 년 전의 대멸종까지, 4억 4000만 년 전부터 5차례 지구의 생태계를 강타한 대멸종은 화산이나 운석과 같이 급격한 환경변화가 원인이었다고 연구자들은 분석한다. 한데 현재 진행 중인 ‘제6의 멸종’은 순전히 사람 때문이라는 것이 관련 연구자의 공통 주장이다. 자연의 흐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탐욕스런 개발행위로 생태계가 무너질 위기에 있다는 거다.

현재 지구 생태계에서 사라지는 ‘자연의 이웃’의 수는 사람이 진화돼 세상에 출현하기 전과 비교하면 수십만 배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대신 지구촌은 사람이 점령해, 인구 70억을 돌파한지 오래다. 지구 녹색식물의 10%를 크고 작은 초식동물이 먹어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구촌 녹색식물의 절반을 사람이 심고 재배하며 독차지한다. 초식동물의 90% 이상을 사람이 먹는다. 그만큼 사람보다 먼저 생태계에 출현했던 ‘자연의 이웃’들은 터전을 잃었다. 안정된 터전을 잃은 자구촌의 동식물들은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불안한 삶을 강요받다 사라진다. 전에 없던 현상이다.

아파트단지로 뒤바뀐 대도시에서 맹꽁이는 터전을 잃었다. 기상이변은 가녀리게 남은 맹꽁이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농약 사용이 줄어든 농촌에 맹꽁이가 늘어난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순간의 착시 현상인가. 사람의 탐욕스런 개발은 그 지칠 줄 모르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거의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곳곳의 해양생태계를 절멸시켰다. 분해되지 않은 농약 뿐 아니라 수많은 의약품이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하천에 섞여 나온다. 무기와 발전소에서 쏟아진 방사선은 빙하까지 오염시켰는데 사람은 안전할 수 있을까?

장마철 맹꽁이는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다. 카나리아가 살 수 없는 탄광에 인부가 들어갈 수 없듯, 맹꽁이가 살 수 없는 환경에 사람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맹꽁이가 장마철마다 우렁차게 울어대던 시절에 지구 생태계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꽤 오랜 세월 맹꽁이와 더불어 살았지만 이제 자신은 물론 생태계의 안정성마저 해친다. 석유 소비없이 단 하루도 맘 편히 살 수 없게 자신의 적응력을 비참하게 위축시킨 사람은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상이변에 둔감하다. 맹꽁이 한두 마리가 겨우 남았을 뿐인데.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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