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아들에게 ‘포경 수술’을 해 줘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어머니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유대인들의 ‘할례’가 떠올랐습니다. 남자의 성기를 덮고 있는 껍질을 제거하는 수술인 ‘포경 수술’과 종교문화적 배경을 지닌 예식인 ‘할례’는 사실상 같은 것인데, 어쩌다 우리나라 부모의 관심사가 되었을까요? 정작 이게 더 궁금해집니다.

천주교용어집을 보면, ‘할례’(割禮, circumcision, 라틴어 circumcisio는 '주변을 잘라내다'라는 뜻입니다)는 남자 성기 끝의 살가죽을 정해진 의식에 따라 잘라내는 행위입니다. 이 예식은 전 세계적으로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전통 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영락없이 ‘포경 수술’(전문용어로 환상절제술)이라고 알려진 의료행위인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 예식도 아니고 실제로 정말 필요한 의학적 치료행위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배경에서 이런 일이 밑도 끝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해 온 것인지 신기합니다. 그 답을 찾기에 앞서, 아무튼 한국의 남성들이 경험한 현실은, 적잖은 인구가 이 수술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수술을 받을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인의 ‘할례’는 종교적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수술받은 사람들의 백분율로 치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우리나라 말고 필리핀이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의 남쪽 지역에 이슬람 신자들이 일정부분 인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더욱 예외적 상황이라 할 것입니다. 참고로, 2009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남성의 약 30퍼센트가 이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슬람 신자가 많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방이 특히 높게 나타나는데, 이곳은 종교문화적 이유가 분명한 곳이지요.

할례의 기원은 기원전 3000여 년 전 즈음, 종교문화적 동기로 인해 이집트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시시대부터 생겨난 할례 관습은,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중동, 남아프리카 등에 남아 있으며, 사춘기 소년에게 행했던 포피절제 수술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는 할례가 성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한 절차로 행해졌던 것입니다. 할례의 본래 목적은 생식을 쉽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할례식이 있는 날에 보통 큰 잔치를 벌였기 때문에 이런 전통이 성년식의 의미로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 ‘예수의 할례’, 조반니 벨리니.(1500)

원시 할례 예식의 이런 의미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셈족(유대인)이나 함족(아프리카 북동지역 민족)에게 가서는 의미가 달라진 것이지요. 아브라함과 그 집안 남자들이 할례 받은 것을 계기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율법에 따라 여드레 만에 할례를 베풀게 되었습니다(레위 12,3). 그러니까 더 어린 아이들에게 할례가 베풀어짐으로써 성년식의 의미는 사라지고, 생식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닌 종교적 의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계약의 상징(창세 17,10-14 참조)이라는 의미를 붙임으로써 말입니다. 더불어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선민(選民)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할례는 마음의 껍질을 벗는 것(신명 10,16)이며 계명을 준수할 것을 의식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유대인 남자들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몸에 은밀하게 새기고 다닌 셈입니다. 그것은 또한 선민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긴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유대인 학살을 주제로 다룬 영화 중에는, 독일군이 학교를 급습하여 아이들의 아랫도리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때 확인하는 것이 할례의 흔적인 것입니다. 남자 아이들의 성기에 수술의 흔적이 있고 그 끝이 노출되어 있으면 유대인이라고 확인한 것이고요.

이런 의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와서는, 세례를 받는 것이 할례를 받는 것처럼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행위로 전환되기에 이릅니다. 구약의 할례사상이 신약에서는 세례로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받을 의무가 없습니다.(가톨릭대사전, ‘할례’항 참조)

쿠란에는 할례에 대한 규정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이슬람교도들도 할례를 받습니다. 아마도 유대교의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그들도 강하게 율법을 지키도록 교육받기 때문에, 알라의 법을 지킨다는 표지를 할례를 통해 보여 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나라가 보여 주는 ‘할례’(포경수술) 분위기는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이 유행이 미국의 영향으로 왔다고 전합니다. 우리나라는 해방될 때까지 포경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랬던 것이 해방과 한국전쟁을 통해 유입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위생이나 발육, 그래서 청소년기 아이들이 이 수술을 받음으로써 제대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부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시행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16세-29세 남성의 84퍼센트가 포경수술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는 문화적, 지정학적으로 유사 국가들인 일본이 1퍼센트 미만, 중국이 1-2퍼센트 미만인 것으로 볼 때(대한비뇨기과학회지, ‘포경수술의 역사’ 참조), 미국의 ‘선진 문화’를 거의 광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필리핀(필리핀에 이슬람 신자들이 있다고 해도 인구학적으로 많지는 않으며 오히려 미국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라라는 점을 볼 때)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도란 것을 봐도 이런 심증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정말 위생적인 문제나 고통이 따르는 다른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아니라면, 우리의 이런 유행은 이제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주제가 어찌 보면, 형이하학적인 것이라 좀 민망하긴 하지만, 할례는 육체와 종교적 예식이 맞물리고 있는 주제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런 주제가 할례라는 의식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교회의 세례식에서 사람의 몸뚱이가 경험한 서늘한 물이나 요즘처럼 이마로 흐르는 물의 느낌도 그런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대상에 기초한 예식입니다. 결국 이 거룩한 체험들을 무엇보다 먼저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육체입니다. 신앙행위는 사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에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사건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성사들이 그러하고, 더 넓게는 우리들이 맞잡은 손이 느끼는 이웃의 체온이 그러합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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