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기적은 우리가 일상에서 체험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신적인 사건이라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쉽게 하신 일이 기적 행사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을 단순 취미생활로 이해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은 위의 정의에서 보여 주듯 ‘신적’인 것이므로, 하느님께서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께서 전해 주신 복음에 사람들이 경탄하고 주목하게 만드셨습니다.(마태 8,27) 또한, 기적에는 회개와 신앙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가톨릭대사전 참조)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기적 체험이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현존으로 우리를 감각적으로 초대하시기에 믿음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이 세상을 건드리시고 우리를 구체적으로 만나십니다.

▲ '카나의 혼인잔치', 엘 그레코.(1600)

성경을 읽어 보면, 기적은 예수님 이전에도 일어났으며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고 종종 개입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설명해 줍니다. 기적이 자연현상을 초월한 것, 따라서 과학적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할 수 없는 것인 만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방법에 우리는 경탄합니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사건을 대면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과 당신의 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따라서 기적을 기적으로 믿으면 되는 것이지, 이건 기적이고 저건 아니다 등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 기적을 기적이라 할 수 있는 기준은 특별히 없어 보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그걸 기적이라고 깨닫고 놀라워하면 기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질문을 해 주신 분은, 개인적인 평가로 그쳐도 그만인 기적이 아니라 보편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적은 어떻게 확인되는지를 질문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에서 기적을 심사해야 하는 것은 시복과 시성을 위해서 필요한 절차이기에 요구되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시복, 시성 대상자가 살아 있는 동안 기적을 행했거나, 돌아가셨다해도 사람들이 평소에 그분을 존경한 나머지 그분의 기도 전구를 청했는데 아픈 사람이 나았다거나 하는 묘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조건에 맞춰서 기적심사를 통과하게 됩니다.(참고로 시성에 필요한 기적은 세 가지였다고 하는데, 요즘은 두 개로 줄어서 통과가 좀 쉬워졌다고 하네요. 하나도 쉬운 게 아닌데... 반면에 순교가 확인되면 시복단계에서는 기적심사는 그냥 통과이고, 시성단계에서 하나만 필요합니다.)

기적 연구가들에 따르면 우리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현상의 대부분은 의학 분야에서 설명해 줘야 할 치유 체험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의학적인 데이터를 통해 확인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기적여부를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은 사적 계시로 일컬어지는 현상들로 보입니다. 따라서 시복, 시성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사적 계시에 관한 것도 심사를 하게 됩니다. 이 현상이 교회가 더욱 하느님을 믿는 데 도움을 줄지 아니면 신앙생활에 해악을 입힐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적 계시는 개인적 차원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혹은 성모님을 통해) 당신의 뜻을 어떤 개인에게 드러내 보일 때 일어납니다. 사적 계시의 사례들은 사실상 성모님 발현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체험들은, 남들은 못 보는 것을 특정인만 본다거나, 말씀을 듣는다거나 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인정할만한 것인지 아닌지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계시에 관한 판단 부류는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우선, 믿을 가치 없음. 다음이 신앙과 도덕에 배치되는 것이 없음. 마지막이 공인입니다. 즉, 믿을 가치가 있다고 판정하는 것입니다. 사적 계시에 대한 판별은, 일단 지역 교회의 주교가 보고된 계시를 조사하여 인정한 뒤, 교황청에서 검토하여 보편 교회가 공인하는 절차로 진행됩니다.

보고된 사적 계시의 내용이 신앙과 도덕적 가르침에서 볼 때 바람직하며, 계시를 통한 결과도 유익한 열매로 드러나면 기적으로 판별되며 공인할 수 있습니다. 유익한 열매란, 그 계시를 전해 들은 사람들의 신심이 더 강해지고, 회심과 봉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와는 달리 교회 공동체가 분열과 다툼이 심해져 깨지는 일들이 벌어진다거나 사람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린다거나 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 계시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사적 계시였으나 교회의 인정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루르드 성모 발현과 그 주인공인 베르나데트 성녀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적 계시로서 유명하긴 한데, 지역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예는 나주의 성모상과 윤 율리아란 분을 들 수 있습니다. 후자는 인정과는 거리가 매우 먼, 주의와 단속을 받은 예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기적으로 포장된 맹목적 신앙, 왜곡된 성모신심을 통해 오히려 우상 숭배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엄혹한 세상을 살다 보니, 요즘은 사람 마음이 바뀌는 것, 곧 회심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느님께 돌아서려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야 할까요?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언론의 물타기나 다른 연예 치정 사건들로 감춰질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사람 마음이 바뀌는 것 자체가 바로 기적처럼 보입니다. 누구보다도 정치인과 재벌들이 회심하는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갈망을 하게 되는데, 정작 하느님은 끝까지 십자가를 부여잡고 내려오지 말라고 하시는 듯합니다. 부활이라는 기적을 보여 주시려 그러시나 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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