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막심 고바레, 노에미 사글리오 감독, 2015년

누구나 어떤 일의 첫 번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게 커밍아웃이든, 커밍인이든! 살면서 절대로 그런 일만은 있을 리 없다고 여겼을 뜻밖의 상황에서, 어쩌면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삶을 바로 그날부터 살게 될 수도 있다.
잘 나가는 통계 회사의 공동대표인 매력적인 프랑스 남자가 있다.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의 주인공은 서른네 살의 행복한 게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은 다 갖추고 누리며 살아왔다. 제레미(피오 마르마이 분)는 10년째 사귀고 있는 멋진 의사 애인 앙트완(래닉 가우트리 분)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결혼을 준비 중이다. 앙트완은 남자도 여자도 탐내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제레미의 가족들은 앙트완을 만난 게 그의 인생 최고의 행운인 것처럼 말한다. 동성 결혼이 자유로운 프랑스라서인지, 제레미의 부모들은 앙트완을 친아들보다 더 사랑하며 “아들이 둘이라 좋다”는 식으로 이 결혼을 반긴다. “부르주아 속물들처럼 따분하게” 늙어가지 않을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면서 대놓고 좋아한다.

처음엔 스스로를 미쳤다고 여기며 자책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설마 아닐 거야’ 라는 기존의 관성을 어떻게든 확인받기 위해 다시 한 번 온 길을 되밟아보기도 한다. 주변의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남몰래 ‘구글’에게 질문하고 검색어를 치는 것으로 답을 얻으려고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자기가 진짜 ‘미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그 사건 이전으로는 돌아가지지도 않는다. 다시는 그렇게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대안도 계획도 없다. 그냥 가 본다. 유일한 대책은, 그 이전처럼은 못 산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됐다. 그 순간에는 자연스러웠다. 뒤돌아보니 완전 미친 짓이다! 해괴할 뿐이다. 그런데 자꾸 그녀 얼굴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게 어떻게 나란 말인가. 그러나 분명 꿈은 아니다. 꿈은커녕 길에서 그녀를 마주치게 되는가 하면, 생활공간 속에서 자꾸 부딪치게 된다. 그녀가 점차 다른 중요했던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우선순위가 되어 간다. ‘나’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붕괴된 상황에서 그녀 아드나만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찌질하고 ‘꾸지게’ 구는 남자가 돼 버린 제레미.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돼 버린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결혼을 앞둔 오래된 연인이 서먹하거나 헤어질 위기에 처하면 주변인들이 오히려 더 걱정하고 염려하는 모양이다. 그중 한쪽이 새로운 사랑에 빠졌을 경우, 이는 충격 그 자체가 된다. 죄책감과 의무감, 희열과 고뇌 등 다양한 감정이 뒤죽박죽으로 요동친다. 옛사랑에게도 새로운 사랑에게도 죽일 놈이 된다. 앙트완에게도 아드나에게도 제레미는 죄인이다. 그가 열다섯 살 때 게이임을 커밍아웃 했을 때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던 가족들이, 이 커밍인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미워하며 너무 힘들어 한다.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는 게이 주인공이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발상이 눈길을 끈다. 굳건히 믿어왔던 익숙한 것들의 붕괴와 재건에 대해, 참으로 재치 있고 유쾌하게 다룬 영화다. 어떤 사랑은 세상이 무너질 심각한 균열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그녀와 함께라서 행복하다. 제레미는 그녀를 처음 만난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친구에게 던지는데, 이는 자신에게 하는 얘기 같다. “다른 삶을 꿈꿔본 적 있어?”
평생 파리에서만 산 소심한 남자를 눈 덮인 스웨덴의 설산들과 얼어붙은 강을 가로질러 목숨까지 걸게 만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말한 바 있다. “미래는 늘 열려 있고, 생각은 계속 바뀌는 거니까요.” 그리고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과 있을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게 된 제레미는 대답한다. “당신이 바꿔 놨어요. 당신은 날 도전하게 해요. 아드나, 당신 말이 맞아요. 미래는 열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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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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