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KBS 신설 금토 ‘예능드라마’ ‘프로듀사(士)’가 뚜껑을 열었고, 초반 의외로 낮은 시청률로 고전했다. 이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오직 ‘시청률’만을 노린 기획이었다. 케이블에서의 소위 대박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전직 예능국 피디와 작가들이 만들어 금토 방영’이라는 조건으로 추출해내, 편성도 그렇게 맞불로 갔다.

첫 주 방영 이후 ‘재미없다’ ‘48억짜리 사내 홍보물’이라는 비난이 빗발쳤고, 한 주만에 피디가 교체됐다. 솔직히 말하면, 시청 소감은 좀 어색하고 이상하다는 거였다. 정확한 느낌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재미가 없기가 쉽지 않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대세인 김수현을 비롯해, 차태현, 공효진, 아이유 등 주인공들의 면면이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제작진이나 카메오 출연진까지도 너무나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그리고 회당 4억 원이 들어가는 12부 48억짜리 대작이며, 앞으로 한류 드라마의 새로운 도약까지 어깨에 짊어진 기대작을 감히 ‘재미없다’고 단칼에 자를 수는 없었다.

▲ '프로듀사'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그렇지만 드라마 ‘프로듀사’는 보는 내내 피로했다. 웃을 수도 몰입할 수도 없었다. 일단 대단히 낯익은 것들을 ‘해체’시키고 드라마가 아닌 형식들을 도입하는 것으로 ‘새로움’을 주려고 했다면, 그리 성공적인 출발은 아니었던 듯하다. 방송국 풍경은 식상했고, 버젓이 자사 실제 프로그램들의 이름과 제작 환경과 툭하면 ‘나영석’, ‘까나리’ 이런 단어가 대사 속에 등장하는 것도 황당했다. 그렇다고 ‘진짜 피디들의 현실일까?’하고 보기에는, 허당 캐릭터들로 일종의 ‘페이크 다큐’를 찍고 있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더 놀라운 것은 뚜렷한 권위주의였다. 드라마 제목부터가 보통명사 ‘프로듀서’가 아닌 신조어 ‘프로듀士’다. 주인공 백승찬(김수현 분)의 아버지가 방송국 피디로 합격한 아들 앞에서 좋아하는 장면에서 언급되듯, 방송국 피디는 이제 ‘관운’이 됐다. 승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고 받는 대사다. "우리 집안에는 아주 '사'짜가 넘친다 넘쳐." "얘가 왜 '사'짜야?" "프로듀... 사(士)!"

예상을 밑도는 첫 주 시청률로 인해, 향후 남은 것은 ‘러브 라인’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2회를 남겨놓은 지금까지 로맨스에 주력했다. 남녀 피디 셋과 아이돌 여성 스타 한 명이 끼어 있는 4각 연애였다. 자기네 직장을 최대한 낭만적으로 그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공영방송 드라마는 신종 ‘사짜’들의 세계를 그려냈다. 심지어 시청자들의 시청료로 유지되는 KBS가 구성원들 스스로를 ‘사짜’로 만들어가며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신분임을 전면에 내세운 채로 말이다.

선배들이 신입 피디들을 교육하는 장면에서는 권위주의의 부활이 두드러졌다. 방송이 언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가와, PD 입사시험이 언제부터 스펙 전쟁이 되었는지의 연도가 거의 겹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방송 콘텐츠를 재미있게 잘 만드는 사람들이 여러 경로로 ‘작품’을 맡는 게 아닌, 명문대 졸업생의 스펙 자랑이 우선되어야 할 ‘고시’가 되면서부터 실상 TV는 대중과 유리된 너무 번드르르한 세상으로 치닫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대중이 방송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콘텐츠지 그 외형과 구성원이 아닐 것이다. 드라마 ‘프로듀사’는 어쩌면 방송국 배경 드라마의 종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이게 성공한 드라마로 여겨진다면, 이후 방송국을 배경으로 예능 PD들과 스타 연예인이 연애하는 드라마가 연속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떠나, 이게 만일 실제 들어간 제작비나 공력이나 배우들의 스타성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를 거둔 것이라면, 게다가 만들기가 너무나 까다롭고 불가능한 공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라면 비슷한 패턴의 드라마가 또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많은 카메오를 어찌 다시 쓰겠는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프로듀사’는 일종의 분수령으로서, 방송국에 근무하는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이게 그들의 ‘리얼’ 현실이라면, 그들이 동료이자 조력자이고 어떻게 보면 자신들을 있게 해주는 존재들인 연예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진짜 속내를 까발린 셈이 됐다. ‘실제’ 피디들의 생활과 비슷하다는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솔직히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섭다. 신디(아이유 분)로 대표되는 연예인을 저렇게까지 냉소하고 시기하고 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탁예진 피디(공효진 분)로 대변되는 ‘권위자’들이 얼마나 연예인을 우습게 여기는지, 이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알았다. 정말이다. 그렇게까지 미워하고 부러워하고 속으로 비웃고 있는지 몰랐다.

‘뮤직뱅크’ 현재 피디라는 이유 하나로 대한민국 가수들이 자기 발아래 있는 줄 알던 탁예진의 초반 대사를 인용해 보겠다. “가수가 방송 우습게 보고 지 마음대로 퍼포먼스 할 거면, 피디가 왜 있냐고요?” 시청자는 안다. 피디는 가수가 제 기량을 발휘해 실력껏 노래를 불러주면 그것을 충실히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있다. 가수나 배우의 상급자 혹은 관리자로서 있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을 본질적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이는 창작자인 연예인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그것을 미디어에 담아낸 프로그램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없이, ‘자기 것’이라 여기는 이 오만함에 질렸다. “이번 주 신디 쉬어야죠? 안타깝게도 뮤뱅은 이 KBS가 저한테 전권을 일임했거든요.” 이러니 방송국이 사람을 일회용 소모품 취급하는 곳이라는 소문마저 돌겠지.

▲ 백승찬으로 출연하고 있는 배우 김수현. (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연예인을 ‘가식과 ‘이중성’ 그 자체로 여기면서도 ‘시청률’ 때문에 비위를 맞추는, 공부 잘해서 피디가 된 그들은 자신들을 ‘전문직’으로 여기면서도 ‘돈 잘 버는’ 연예인을 한없이 질투한다. 일회용품 취급하는 연예인과 사랑에 빠지기는 힘들 테니, 결국 승찬과 신디는 미지수가 될 것이고, 여기서 제일 ‘권위자’인 탁예진 피디와 라준모 피디(차태현 분)가 연애하는 것으로 끝맺음이 될 것인가? 지고지순도 그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 듯한 예감이다. 결국 로맨스로 3회부터 본격 선회한 이후 연애담으로만 끝나 버린다면, 이 드라마는 굳이 방송국을 배경으로 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방송 콘텐츠에 특히 드라마에 현실이 담기기 어려운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가. 방송국이라는 특수한 유사현실, 그 안의 구성원들에게만 ‘현실’처럼 보일 뿐인 어떤 세계에 대한 탐닉은 아닐까. 무대에서 내려온 뒤의 연예인의 삶에는 일체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닮은 비정함이다. 시청자는 그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편한 마음으로 지금으로선 뭘 해도 멋진 대세 배우 김수현의 연기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채우던 금토 심야 편성까지 ‘예능 드라마’를 신설한 공영방송을 바라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이 나라 공영방송은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버젓한 탐사고발 프로그램 하나 못 만들어낸 지 수년째다. 피디가 정말 그리 자랑스럽고 뿌듯한 직업인지를, 현재 공영방송 프로듀서 직함을 단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국민의 시청료로 지불되는 밥값은 하고 있는지 말이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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