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요즘 드라마는 엔딩을 가지고 심하게 트릭을 구사한다. 특히 로맨스나 ‘러브 라인’이 주요 줄거리인 경우 더욱 심해진다. 누가 누구와 커플이 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시청자는 지루한 공방의 볼모가 될 것마저 각오해야 한다. 해피엔딩이 예정돼 있다는 핑계로, 온갖 무리수와 극단적 엇갈림을 수시로 사용해도 ‘끝’이 궁금해 봐 줘야 하니 말이다. 아무리 식상하고 아무리 엉성해도, 사랑스런 커플이 사랑을 확인하는 ‘예쁜 결말’만 보여 주면 시청자가 채널을 고정할 거라 여기는 듯하다.

이 또한 마지막 회 마지막 부분까지 시청자와 ‘밀당’을 하며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기기묘묘한 고무줄 늘이기 전략을 쓴다. 줄거리는 첫 회나 후반부나 별다른 진전이 없고, 그저 중간의 예쁜 장면들이 눈요기처럼 등장한다. 거의 TV화면 보다는 연예 뉴스에서 캡처해 올린 사진 이미지로 남는다. 배우들은 캐릭터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진 속 포즈나 패션 등으로 검색어를 장식한다.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집중하지 않아도, 극중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돌리려고 성심 성의껏 대사와 태도를 연구하지 않아도, 둘의 사랑은 어차피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다. 애초부터 그렇게 ‘저절로’ 될 이야기였다.

▲ 드라마 '맨도롱 또똣'에 나오는 이정주(강소라 분, 왼쪽)과 백건우(유연석 분).(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마지막 회에서 모두가 한꺼번에 눈 녹듯이 일이 잘 풀리고 돌연 기적처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고전적 결말은 너무 당연해진 지 오래다. 문제는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관계와 줄거리를 꼬고 또 꼬는 데 시간을 다 허비하기 때문에, 마무리가 해피엔딩이든 그저 그런 엔딩이든 간에 날림공사가 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최대한 맥락이라도 있는 해피엔딩을 만들어 보려고 제작진이 노력하는 게 보였다. 뜬금없는 장면이 예고에 뜨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요즘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반전’인지도 모른다. 어떤 짜임새 있는 이야기 뒤집기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시청자가 예상한 흐름을 깨고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래서 ‘순간 시청률’로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목표인 듯하다.

요즘은 매회의 마무리 직전에 그야말로 자막이 올라가고 협찬사까지 뜨는 그 몇 초를 쪼개고 나눠 ‘뭔가’를 보여 주려 한다. 아주 강렬한 한방을 그럴 때 터뜨린다. 다음 방송 시청률로 이어질 흥미 요소 혹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법한 어떤 ‘밑밥’ 같은 것들이다. 1분 1초까지도 아껴가며 전개해야 할 만큼 보여 줄 것이 많아서라고 하기엔 이상한 점이 많다. 1회부터의 그 수많은 시간을 다 놓치고 지루한 반복과 어이없는 엇갈림과 오해를 거듭하다가, 연애 혹은 결혼은 대단히 급히 마무리된다. 실은 마지막까지 기다려봤자 ‘연애를 시작하는구나’ 정도에서 끝나는 식이다. 고작 그걸 보겠다고 여태 기다린 게 허탈할 따름이다.

배우 유연석과 강소라의 드라마 첫 주연작이면서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한 MBC 수목극 ‘맨도롱 또똣’은 이런 문제점의 결정판이었다. 굳이 그런 설정과 스토리가 아니었어도 될 진전 없는 로맨스를 제주도까지 내려가 고생하며 촬영한 보람이 없는 채로 이번 주 종영했다. 주인공들은 좀처럼 속내를 표현하지 못하며 드라마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는데, 16부까지 질질 끌기 위한 안배였다는 느낌뿐이다. 주인공의 답답함을 주변인들의 튀는 행동과 연기력으로 때웠거나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했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예정된 해피엔딩을 향해 제주도 방언이라는 제목처럼 ‘기분 좋게 따뜻한’ 정도의 달달함으로 속도와 긴장을 유지해야 했으나, 이는 쉽지 않았다. 엇갈림에만 집중하다 보니, 주인공들에게 이렇다 할 관계성이 생기지 않았다. 백건우(유연석 분)와 이정주(강소라 분)는 시청자가 기대한 만큼도 친밀해지지 못했다.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어찌 속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을까.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 끌리느냐의 다소 유치한 갈등만 이어지다 보니, 대화내용 자체가 냉소와 불안 그리고 불신으로 치달았다. 이 겉도는 관계의 서먹함을 몇 번의 과감한 스킨십으로 메우곤 했다. 그러나 느닷없는 진한 애정행각은 느닷없는 이별로, 기약 없이 ‘1년 후’ 식으로 건너뛰는 미숙한 전개의 연속이었다. 이런 속에서 출생의 비밀이나, 어머니는 같고 각각 아버지가 다른 삼남매의 형제애 등은 순전히 구색만 갖춘 겉핥기로 마무리 됐다. 결말에서 둘은 결혼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시청자는 그저 길고 지루한 숙제를 끝낸 기분일 수도 있다.

이렇게 특정 장면 하나로 ‘순간 주목’만을 노리는 것은 요즘 드라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다. 속았다는 허탈감마저 주지만, 아마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다. 그걸로 나름의 시청률 등급이 매겨지는 광고 시장의 논리가 통하는 한은 그럴 것이다. 가히 뜬금없는 노골적인 스킨십 경쟁이 돼버린 ‘엔딩 신’ 혹은 예고편의 이면에는 숨 막히는 시청률 전쟁이 있을 것이고, 아마도 시청자는 시청률이라는 지표 뒤로 안중에도 없이 파묻힌 것은 아닐까.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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