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

오늘부터 매달 넷째 월요일에 "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를 연재합니다. "양성불능시대 넘어서기"는 "청년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에 다음 세대를 길러낼 여력이 없는 것이 문제다. 청년들을 양성(養成)하기 버거워하는 이 시대, 곧 '양성불능시대'를 넘어설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필자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 편집자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 19세기 말 미국의 한 대학 졸업식에서 철강왕 카네기는 인문학을 비판했다.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지금, 카네기의 질문이 더욱 공격적으로 날아들고 있다.

대학을 진리의 전당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대학이 취업사관학교가 되었다는 비판은 너무 진부하다. 대학교수들은 자기 자리 지키기에 전전긍긍하느라 학생들 돌볼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대학 안팎의 여러 자리에서 대학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하는 세미나가 열린다.

▲ 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관한 고용노동부의 홍보 동영상 갈무리

영국의 문화학자 테리 이글턴은 최근 미국 대학교육전문 온라인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대학의 몰락이 세계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시장에 종속된 대학에서 인문학적 비평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 지은 최신식 건물만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를 시작으로 대학 인문학 축소 바람이 불고 있다. 대학 인문학을 축소시키고자 하는 측은 인문학부 졸업생들의 낮은 취업률을 근거로 든다. 인문학부 졸업생의 절반이 취업을 못하고 있다. 대학들은 인문학과들을 축소, 통합해 취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국제비즈니스어학부’나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같은 낯선 이름들이 이렇게 생겨났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면 취직도 잘할 수 있다며 학생들을 꼬셔 보려는 속셈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인문학을 강조했던 기업가를 모델로 내세우면서도 경영학을 이중 전공해야만 한다는 조언 역시 공공연히 하고 있다. 인문학을 전공하겠다는 학부생들이 생존할 수 있을 방도를 마련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학생들이 계속 들어와야 인문학과도 살아남을 수 있다. 대학 당국은 인문학과의 생존을 위해 카네기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애써 찾아냈다.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를 읽으면 취직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졸업생 개개인을 아무리 인문학적 소양으로 포장해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몇몇 대기업들이 과독점한 시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어려운 건 인문학과만이 아니다. 작년 말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발표한 대학 졸업자 취직률은 경영학과 58.8퍼센트, 경제학과 57.0퍼센트였다.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난리라지만 대부분 불안정한 일자리다. 월 130만 원 안팎을 주면서도 계약직인 자리들만 수두룩하다. 대통령은 이런 사정이 민망했는지 중동으로 나가라고 한다.

이처럼 자본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무능력해졌다. 그러니 융합이니 인문학적 소양이니 하는 말들은 자본주의가 재생산 능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가리는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학생들 개개인이 자신의 존재에 인문학이라는 설탕물을 입혀서 기업에 팔 수 있을 능력을 키우라고 말할 때 이러한 현실이 은폐된다. 인문학이 자본으로 회수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읽어내는 공부라는 말이 바로 이 지점에서 우스워지는 것이다. 요즘은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냐고 물으면 누구나 비웃는다.

대학 사정이 이러니 대학 내 가톨릭학생회에서도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취직'이 되어 버리고 있다. 몇 달 전 가톨릭학생회 후배가 취직을 했다며 SNS에 올린 글을 보고선 너무도 곤혹스러웠다. 자신은 공대생이지만 학점 생각 안하고 가톨릭학생회를 열심히 했더니 취직도 잘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후배가 지원한 대기업에 마침 가톨릭학생회 출신 임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후배들에게 다른 걱정하지 말고 자신처럼 열심히 가톨릭학생회를 하라고 주문하는 것을 보니 아찔해졌다. 그는 복학 후 서울교구 연합회에서 가톨릭학생회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톨릭학생회에서는 대체 뭘 열심히 해야 할까?

그의 글을 읽으며 다른 취업준비생들을 떠올렸다. 그의 성공담은 결코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아니었다. 소위 명문대 공대생인 그의 사례를 따를 수 있는 후배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가톨릭학생회를 열심히 하면 취직도 잘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나빠서가 아니라 모순적이어서 문제다. 그가 얻은 행운도 애초부터 그와 같이 학벌과 지연이 있는 소수에게만 가능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가톨릭학생회 회원들에게 그의 성공담은 그림의 떡이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이 대다수의 회원들에게 해방감을 주지 못하고 여유 있는 몇몇의 친목으로 치부되고 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각자도생을 주문하는 대학 인문학처럼 가톨릭학생회도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청년 신자의 대다수는 취직난에 버려진 채 '과잉인구'가 되어가고 있다. 국가와 자본 모두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성채만 쌓고 있을 때 교회 역시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흔히들 청년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대다수의 청년들에게는 ‘과잉인구’가 될지도 모르는 일상이 곧 사회문제다. 오히려 이에 무관심한 채로 성공담만 알리는 교회가 문제다. 누군가는 취직 걱정을 안 하고 가톨릭학생회를 열심히 해서 취직도 잘 했을지 모르지만, 예수의 복음은 취직 걱정에 전전긍긍하다가도 결국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극소수에게만 안정적인 일자리가 허락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교회가 복음이 가르치는 대로 가난과 소외된 이들과 단호히 함께 설 수 있을까? 성공담을 버리고, 재생산에 실패하고 있는 현실 체제를 직시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철강왕 카네기는 오늘날 교회에 다시 묻고 있다. ‘복음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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