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배, 보상에 대하여

며칠 전 언론들은 끔찍한 사건을 보도했다. 보험금을 타려고 가족들에게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죽이고 친딸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이 사람이 타낸 보험금은 10억 가량 되었다. 언론이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건 인간의 탈을 쓰고 벌이기 어려운 잔혹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10억 원이 아무리 큰돈이라 하더라도 가족들과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가족의 목숨에까지 값을 매기는 행태는 용납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사람이라면 가족의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는다. 그래서 언론들도 하나 같이 성토하듯이 보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관한 윤리도 정부 앞에 서면 정반대가 되어 버리는 모양이다. 지난 1일, 정부는 세월호참사 보상금 기준을 발표했고 언론들은 이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에게는 평균 4억여 원, 교사에게는 평균 7억여 원이 지급될 것이라는 보도였다.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보다 못하고 SNS에 글을 남겼다. 정부의 발표가 나간 뒤에 보상금에 관해서만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곤혹스럽다는 내용이었다. “배보상 기준이 잘못 됐다, 8000만 원, 4억2000만 원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잘 모르는 국민들은 역시나 돈 더 달라고 농성하는거구나 이럴 거잖아요.... 받아들이겠다 그러면.... 배보상 결정 다 났는데 무슨 진상규명을 더 하라는거냐 그럴 거잖아요....” 요컨대 기자들은 유가족들에게 ‘4억이면, 혹은 7억이면 가족 목숨값으로 적당하냐’라며 불가능한 계산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배상이니 보상이니 하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목숨에 값을 매기고 있던 그 시각에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정부가 특별법의 취지를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 때까지도 유가족들에게 조사권과 기소권을 절대로 줄 수 없다고 배짱을 부리더니, 이젠 시행령으로 진상조사가 아예 어렵게 못박아버린 것이다. 진상을 규명할 특별조사위원회의 기획조정실장으로 해양수산부 고위공무원을 앉히고 조사 범위도 정부 조사결과를 검토하는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등 사실상 정부 입맛대로 조사를 진행하게 됐다.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데, 정부는 이러한 요구엔 귀를 막은 채 보상금만 크게 떠들어대고 있다.

▲ 2014년 7월 14일,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대로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세월호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단식을 시작했다.ⓒ조지혜 기자

이런 행태는 세월호참사 초기부터 계속해서 반복됐다. 일례로, 새누리당은 특별법을 통과시키자며 진상규명의 핵심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빼 버린 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특례입학을 가지고 협박했다. 유가족들은 특례입학 같은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거듭 밝혔지만, 언론이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는 경우는 여당의 발표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언론의 보도가 반복될수록 유가족들이 자식의 죽음과 특례입학을 거래하려는 듯이 보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참사는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부터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니, 어쩌면 참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이 이 사태에서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정부는 돈이나 특례입학 따위 보상으로 세월호참사를 끝맺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게 참사는 이미 끝난 사고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정부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참사를 규정하여 유가족들의 상처를 계산 가능한 금액으로 산출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상을 제시하는 국가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바로 참사다. 한 인권활동가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무산된 뒤에 유가족들이 살아 내고 있는 참사 속의 삶을 이렇게 전한다.

“며칠 전 생존학생 한명이 자해했던 소식이 있었다. “그 아이들이 살아 내야 할 날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엄마들도 울었고 참석한 사람들도 울었다. 아마 그날은 쌓였던 슬픔이 쏟아진 날이었나 보다. 다영엄마가 꽤 오래전에 “너 없는 세상을 살아 내야 하는 이유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중얼거리던 말을 들었을 때, 그날 이후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느 날은 성호, 어느 날은 다영이, 어느 날은 영석이, 어느 날은 순범이가 자는 내 귀에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날은 “내가 엄마 아빠한테 잘할게. 염려말아....”라고 이야기해야 남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박진, <미디어스> 3월 31일 기고글 중)

한국 주교단을 만난 교황이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고 한다. 세월호 문제는 유가족들의 중얼거림에서 볼 수 있듯 여전한 참사로 진행 중이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모든 책임을 특정 종교집단에 몰아 버린 뒤에 더 이상 묻지 말라고 요구할 뿐이다. 이것저것 해체한다고 떠벌리고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괸 수준 말고 뭐가 바뀐 건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풍찬노숙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두고 보상금 운운이나 하고 있는 이들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흔히들 동아시아 공동체는 일본 우익 때문에 태어나기 어렵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인신매매’였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애초부터 잘라 버리려는 그들을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보면서 이들과 함께 사회를 꾸려갈 수 있을 자신이 도통 생기지 않는다. 벌써부터 조선일보는 정부를 마치 흥신소인 것처럼 그리면서 손익을 따지고 있다. 유병언 일가에게 받을 보상금을 정부가 대신 받아 전해 주며, 심지어 적자를 보면서까지 심부름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해피아’니 ‘관피아’니 하며 민간과 유착되어있었기에 관리 감독이라는 본연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여행객을 가득 실은 배가 평형수를 빼고 짐을 과적하는 것이 관행이 될 때까지 정부가 방관만 했던 까닭도 오리무중이다. 구조 과정 동안 홍보에만 열을 올리기만 해서 결국 온갖 음모론만 키운 채 참사를 더욱 끔찍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배상이니 보상이니 하는 것은 국가가 면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에 지나지 않는다. 돈만 떠들고 있는 이 정부를 믿고 사회를 꾸려 가기가 너무도 곤란하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이래선 안 된다.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되었냐며 걱정하는 말이 가 닿는 데까지를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저들에겐 그런 걱정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백승덕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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