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어떤 한 사람의 냉장고가 방송국 스튜디오에 배달된다. 모든 것은 그 냉장고가 결정한다. 거기 들어 있는 것만으로 해결해야 한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얘기다. 잘생기고 입담이나 리액션, ‘허세까지도 매력적인 남성 요리사들이 오직 한 사람의 게스트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요리한다.

 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

‘셰프’들은 처음에는 여섯 명이다가 이제는 열명으로까지 늘었지만, 제아무리 솜씨를 자랑하는 요리사라도 뾰족한 수는 없다. 그 냉장고의 것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막힌 조리법들도 대개는 무용지물이겠지만, 그럼에도 독창적인 요리를 창조해야 한다. 재료는 턱없이 모자라고, 요리할 시간은 그보다 더 부족하다. 15분은 살인적인 노동을 요구한다. 가장 큰 제약은 바로 냉장고다. 냉장고 속은 매회 언제나 무 대책인데다 예측불허다.

좀 뜻밖이면서도 놀라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은밀한 곳은 개인용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와 냉장고 속이라는 말도 있다. 누구나 열어 볼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실제로 정말로 열어서 뒤지는 일은 주인의 허락을 구하는 정도를 넘어, 결례 이상의 사생활 침해가 될 수도 있다. 둘 다 '주인' 혹은 사용자의 가장 개인적 욕망이 들어 있는 일종의 보관소이기 때문이다. 욕망이거나 취향이거나, 아무튼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 이 '공간'은 한 사람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주기도 한다. 냉장고는 어느 집에나 있지만 점점 더 그런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 냉장고를 이 프로그램에서는 낱낱이 까발린다. 황홀할 정도로 속속들이.

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

활짝 열린 냉장고는 마치 수술대에 마취 상태로 누운 환자처럼, 여러 요리사들의 진단과 집도를 거치게 된다. 냉장고 속은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 뭐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뭐가 속에서 (썩는 줄도 모른 채)썩고 있을지 모른다. 냉장고 주인의 손이 전혀 미치지 않았던 곳에서, 요리사들은 이 냉장고만의 장점과 '가능성'을 포착해 내고 탐색해야 한다. 시청자들은 열어 젖힌 남의 집 냉장고를 통해 게스트의 가장 개인적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은밀한' 기쁨을 만끽한다. 이 프로그램의 1차적 재미다.

숙련된 요리사들을 떼로 앉혀 놓고 게스트는 대단히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요구 사항에 맞춘 요리를 심지어 '느낌'만으로 그것도 대단히 모호하게 제시해 놓고 15분을 기다리면, 세상에 보도 듣도 못한 신기한 자신만을 위한 요리가 나온다. 오직 자신을 위한 맞춤 요리가 눈앞에 당도할 때의 그 반짝이는 눈빛은 시청자에게도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요리 주문에 있어 게스트는 그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면 된다. 정리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장황하고 엉뚱한 설명을, 요리사들은 '알아서' 충족시켜 주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냉장고 속에서 ‘장보기’를 하고 15분 동안 그야말로 초인적 에너지를 발휘한다.
요리 과정에서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요리사들의 빛나는 재주와 게스트의 감탄사들에는,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노출시킨 사람들의 허심탄회한 감흥마저 엿보인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요리이기 때문일까. 시식 뒤 어떤 요리가 더 좋았느냐는 선택조차 오로지 '냉장고 주인'의 취향일 뿐이다. 취향이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과는 다른 승부가 발생하곤 한다. 사실 요리들을 차례로 맛보며 행복해 하는 게스트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세밀한 얼굴 근육의 변화로 인한 충족감을 따라가노라면, 시청자도 어느 정도는 '승부'를 예감하게 된다. 누가 더 게스트를 행복감에 젖게 했느냐가 점수의 기준이다. 누가 더 재주가 좋으냐가 아니다. 어쩌면 냉장고 주인의 속마음을 더 잘 파악한 요리사가 승기를 쥐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 JTBC 홈페이지

일단 이 프로그램의 당일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게스트의 냉장고 속이다. 그들은 냉장고를 스튜디오에 끌고 옴과 동시에 굉장히 솔직해진다. 자신의 과거사나 인생의 굴곡을 들려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힐링 캠프'나 '무릎팍 도사' 같은 일종의 고백 토크도 아닌데, 한 사람의 아주 많은 것들이 솔직히 까발려지는 것 같은 희한한 구성인 것이다.

시청자들은 일단 이런 형식을 매번 잘 차려진 특별식처럼 음미하고 즐기는 중이다. 매회 예측 불허인 이 버라이어티 요리쇼는 시청자를 당분간 질리게 할 것 같지도 않다. 시청률과 화제성이 압도적인 건 당연해 보인다.

유명 셰프들의 솜씨나 상상력이 대단할수록 게스트들의 솔직함도 더해진다. 서로 상승 효과를 낸다고 해야 하나. 그가 먹고 있는 것은 한 접시의 음식 그 이상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서 채워 주고 있는 수많은 손들 앞에서, 한 사람이 겸허히 "이게 나"라고 고백하는 것 같은 빛나는 순간인 것이다. 당분간 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따라올 기획은 없어 보인다. 방송쟁이라고 불러도 좋은 수많은 예인들이, 유독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초보자처럼 수수해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먹는다는 행위는 이제 대단히 복잡해졌다. 이게 좋은 것인지 그저 ‘관음증’의 한 패턴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이제 음식을 입으로만 먹지는 않는다. 직접 먹지 않아도 먹은 것처럼 대리충족마저 느낀다.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동안, 실제로는 점점 더 요리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좀 어이없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분명해지는 것은,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 자신을 아주 많이 대변하고 있기는 하다는 것이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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