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러웠다. 여느 연예 뉴스와는 달리 그 의외성 때문에 더 화제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자 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 촬영 중 상대방 여성 출연자에게 ‘욕설’을 했다는 뉴스가 ‘어디선가’ 터져 나왔다. 이전에 없던 ‘신선한 패턴’의 가십이었다. 이전에 없던 폭로 스타일의 연예 뉴스를 ‘밀착’ ‘단독’ 취재해 보도한다는 <디스패치>라는 매체가 진원지였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거의) 모든 매체가 이 뉴스를 중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뉴스가 만들어졌다. 관련 뉴스가 실시간으로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왔는지 그저 슬쩍 인터넷을 켜기만 해도 ‘이태임’과 ‘예원’으로 다 도배돼 있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 관계’는 없는 듯했다. ‘욕 하는 섹시 스타’라는 이미지는 순식간에 조립되어 널리 배포되고 소비되었다. 인터넷을 싹쓸이했다. 일절 다른 뉴스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욕을 했다는 여배우는 이태임이었고, 일방적인 ‘피해자’로 보인 것은 가수 예원이었다. 그러니까 ‘이태임-예원 논란’에서, <MBC> ‘띠 동갑내기 과외하기’라는 프로그램은 정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출연자 둘만의 문제였을까?

예능이 ‘리얼’을 강조하면 할수록, 비일상적이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미션을 출연자들에게 강요하게 된 것은 아닌지 이제 진지하게 물어야 할 듯하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출연자가 아무리 괴로워해도, 몸이 아파 쓰러져도, 누군가 그 방송을 보고 ‘웃음’을 짓고 그래서 시청률이 올라간다면, 예능은 그저 예능이라는 말로 다 용인될 수 있는 노릇인가? ‘웃음’을 주기 위해서라면, 아무도 일상적으로는 (절대)처해지지 않을 가혹한 상황에 빠뜨려도 되는 것인가?

▲ ‘띠 동갑내기 과외하기’ 에서 격투기에 도전한 작곡가 정재형.(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실상 문제의 발단은 디스패치 식의 보도처럼 ‘누가 먼저 욕을 했는가?’ 따위에 있지 않다. 왜 리얼 예능은 한겨울에 몸이 아픈 여배우를 제주도 바다에 집어넣었으며, 왜 그런 일들을 예능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는지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연예 뉴스들은 온통 연예인 둘 중 누구의 잘못인가 쪽으로만 기울었다. 초반에 이태임은 거의 매장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이번 파문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출연진의 욕설 파문이 1차였다면, 1차는 이태임이 방송에서 퇴출되다시피 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2차 폭로가 또 있었다. 녹화 당시의 동영상 유출은, 예원이 진짜 ‘가해자’였다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삽시간에 온갖 패러디까지 만들어내며 톱뉴스로 치솟았다. 누가 진짜 가해자고 피해자냐의 요란한 논란은 다시 불붙었다. 그 와중에도 <MBC> ‘띠 동갑 과외하기’ 제작진은 공식 해명 한 번 없었다. 초반에는 그 난리통에도 프로그램이 유지되는가 싶었다. 그러더니 결국 2차 파문인 동영상 유출을 겪고는 바로 종영됐다. 이유도 해명도 없이.

이번 일이 그나마 의미 있게 마무리 되려면, 두 사람 모두 ‘제자리’로 그러니까 무대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바라는 것은, 방송사들의 예능 제작 방침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사나 프로그램 제작진은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으며, 신속히(!) 폐지하는 걸로 덮으려 한다는 인상이 짙다.

어디까지나 출연자 두 사람의 문제라 여기는 것일까. 그러나 엄연히 현장은 방송을 위한 일종의 작업장이었다. 이들은 당시에 분명 ‘일’을 하고 있었다. 이태임은 자기가 먹으려고, 혹은 놀러간 김에 해녀 복장을 하고 고작 ‘뿔소라 3개’를 따러 차디찬 겨울바다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 왜 드라마 촬영도 아닌 예능에서 이런 심한 ‘미션’을 주었을까? 실상 포인트는 몸에 딱 달라붙는 ‘해녀복’ 착용과 그녀의 몸매 ‘라인’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무제한적인 고통의 미션과 출연진의 무조건적 복종에 기반한 예능 제작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돌아봐야 한다. 사람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 누구 하나 만신창이가 돼야 끝나는 가학성 웃음 코드는, 이제 시청자에게도 피로와 고통을 주고 있다. 방송사는 시청률에만 신경 쓸 뿐, 쓸데없는 파문으로 시달리고 소진되는 시청자들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정말 중요한 일들에 분통을 터뜨리기에도 벅차다. ‘아님 말고’ 식의 연예인 까발리기 폭로전은, 중요한 뉴스들을 밀어내고 만다. 웬만하면 뉴스 클릭도 한 번 생각하고 하자. 사람이 하루 동안 담을 수 있는 뉴스의 양도 정해져 있으니. 

▲ ‘띠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바닷속에 들어간 가수 이재훈.(사진 출처 = MBC 홈페이지)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