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0년 정도 더 지나서 현 단계의 우리나라를 돌아본다면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올해는 조선왕조가 무력하게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105년이 되는 해다. 또 일본이 미국의 원폭 투하에 항복함으로써 간신히 해방은 되었으나 미국과 소련의 진주로 나라가 둘로 나뉜 지 70년이 되는 해다. 그런 해를 200년이 더 지난 2215년은 어떤 역사적 안목으로 바라볼까? 200년 전 2015년 무렵의 국가 최대의 사명은 무엇이었다고 회고할까?

우리가 현재 어떤 과제를 가장 다급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더라도 그때의 눈으로 돌아보면 현 시점의 최대 과제는 역시 분단된 국가의 통일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는 유사 이래 나라가 이렇게 분단되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과거 고구려, 신라, 백제로 나뉘어 있던 삼국시대가 있었지만 그것은 분단이 된 것이 아니라 각각 지역 기반으로 나라가 건국되어 커 가고 있던 시기였다. 통일신라로 합쳐진 이후 고려로 넘어가는 사이에 잠시 후삼국이 나뉘어 힘겨루기를 한 적은 있었지만 그 기간은 대략 50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분단 70년이다. 어정거리다 보면 금방 100년이 될 것이다.

통일이 당위적 국가 목표가 되는 것이 옳으냐 하는 쟁점이 부상했던 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그냥 이대로 나뉜 채 살아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각계각층에 만만치 않게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그 동안 남과 북이 서로 만나 서로가 가진 생각을 접근시켜 보는 과정에서 연방제 통일이니 느슨한 단계의 통일이니 하는 말이 나왔던 것도 이미 그런 생각들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였지 않나 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세계정세를 보자. 독일은 이미 통일이 완성되어 지난날의 구차한 면모를 일신하였다. 유럽은 합쳐 있다가 분열된 것이 아니면서도 유럽연합(EU)을 지향하여 거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지 오래다. 미국은 쿠바와 외교관계를 복원하여 냉전의 마지막 흔적마저 사라졌음을 선포하였다. 우리나라만 낡은 철조망에 둘러쳐져 있다.

그러나 꼭 국제 정세 때문만은 아니다. 외국에 나가면 우리가 뭐라고 하든 우리나라는 항상 South Korea다. 그 말에는 '너희들은 남북으로 나뉜 나라'라는 평가가 들어 있고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나뉘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상태로 밤낮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싸우는 2류 국가'라는 평가가 들어 있다. OECD에 가입을 했네, 무역규모가 세계 몇 위네 하는 자화자찬을 아무리 늘어놓아봐야 한계가 분명하다. 분단 조건 하에서는 마치 모두가 만점이 100점인데 우리만 만점이 80점으로 정해진 경쟁을 하는 것 같다. 일본을 비롯하여 주변 국가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비웃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눈 있는 국민이 아니다. 우리가 분단을 치욕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 한반도기.(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정부는 지난 12월 29일 느닷없이 남북 장관급 회담을 제의했다. 그리고 사흘 후 새해 첫날 북한의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한술 더 뜨고 나왔다. 매사를 말로만 한다면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러나 지난 한 해 남북 간에 오간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확실히 남북문제에서 더 적극적이었던 것은 북한이었다. 반대로 남측은 시종일관 소극적이었다. 과거 40년 세월과는 정반대가 된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우리 스스로 울타리를 쳐놓은 5.24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5.24조치는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소위 대북 제재조치였다.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 교역의 중단,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 불허, 대북사업의 원칙적 불허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남북 관계를 사실상 중단시킨 조치다. 이것이 살아 있는 한 그 어떤 남북관계도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 기조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에서 내놓은 남북 관련 청사진은 대부분 말뿐이거나 이 울타리 안에서도 뭔가를 하는 척 보여 주는 것뿐이었다. 이를테면 비무장지대 내의 평화공원 설치 따위가 그것이다. 썰렁한 비무장지대에 공원을 만들어 뭘 하겠다는 것인가. 또 통일은 대박이다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냥 말에 불과했고 막연히 그 안에 무슨 박 터질 일이라도 있는 듯한 느낌만 주었지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쥐꼬리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독일까지 가서 선언한 드레스덴 선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레스덴 선언의 골자는 첫째,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둘째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셋째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이었다. 얼핏 들으면 마치 뭔가가 있어 보이지만 그 첫째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뜻한다는 정도지 둘째, 셋째는 도무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우리 정부 안에서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결국 5.24조치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이 드레스덴 선언이 아니었나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빛을 본 금강산 관광사업의 개시, 개성공단 설치 및 운영, 활발한 남북 교류 협력, 노무현 정부 시절 극적인 현장 합의에까지 다가갔던 해주 공단의 설치 등에 비하면 한마디로 속 빈 강정이었다. 그 등차가 너무 커서 그런지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북 제안은 마치 남녀가 오래 사귀다가 부모님 뵈러 가는 문제까지 상의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여 "혹시 이 손수건 떨어뜨리지 않으셨나요?" 하고 말하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역사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자. 2010년의 5.24조치는 그해 3월에 있었던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조치였다. 천안함 사건은 최근까지의 모든 정보를 종합할 경우 북한 해군이 신형 잠수함을 끌고 와서 몰래 천안함을 들이받아 침몰시키고 도주한 사건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2년 만에 나온 것으로 북한이 남측의 관계 개선 의지가 전혀 없음을 최종 확인하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1,2차 연평 해전과 대청 해전에서 여지없이 패배하고도 남북관계 때문에 운신할 수 없었던 북한 해군이 이참에 잃어버린 자존심이나 만화하자는 차원에서 저지른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방법도 별난 것이 아니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해군에 의해서도 행해지던 방법이었다. 그 당시 두 동강난 북한 함정과 함께 수장된 북한 해군이 46명일지 그 이상일지는 북한만이 알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남북관계가 70년대로 되돌아갔고 그 때문에 북한 측에서도 구시대적 군사 보복을 자행하였다면 엄밀히 말해 자업자득이다. 그러면서도 결과에 당황하여 뭔가는 해야겠기에 엉겁결에 내놓은 것이 5.24조치였다. 5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5.24 조치는 남북 그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단지 이명박 정부의 어리석은 대북적대정책이 예상치 못했던 암초에 부딪히며 낳은 당혹감의 표출일 뿐이다. 5.24조치를 일각에서 자해(自害) 조치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은 북한에도 커다란 해를 끼쳤으니 장성택 정변도 그 여파 속에서였고 보수군부 세력이 권력 전반을 장악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남쪽에도 그 못지않은 해를 끼쳤다.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종북 소동은 역사의 국면을 고스란히 30-40년 전으로 되돌려 놓고 말았다. 최종적인 피해자는 결국 민족이었던 것이다.

2년 간 지켜본 바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는 남북 관계에 대해 아무런 비전이 없다. 현재로서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 박근혜 정부의 입장 아닌 입장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에 핑계를 돌릴 수 있는 5.24조치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지도 모른다. 그 담장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가 더 편하다는 것이다. 휑하니 담장이 사라진다면 그 당황스러움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이런 무소신이 언제까지 탈 없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한쪽에서 일본은 재무장을 향하여 치달리고 있고 어차피 그것은 막을 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쪽에서는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속에 끊임없이 몸집을 불리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규모를 추월하는 것이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기존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신과 철학,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 국민적 단결이다. 그것도 남과 북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노태우 정부 이래 20년간 지속해 온 남북 화해 협력 정책은 어느덧 북한 쪽에서도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를 보편화시킬 정도였는데 지금 그 정책 기조는 강대국에 대한 눈치 보기와 대북 무소신 속에서 허무하게 힘을 잃고 있다. 이런 무소신 위에 형식적으로 구축된 모든 것들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지푸라기처럼 날아갈 것이다.

이것은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민족의 방향에 대해서는 깊은 철학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눈앞의 당파적 이해득실에 좌우되어 실상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은 반사적 행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 역사의 사명을 놓치게 된다. 우리는 분명한 역사관, 민족의 나아갈 길에 대한 현실성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과 소망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부터 마치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은 진보진영의 전유물이 되고 보수진영은 반공으로 되돌아가 싸느랗게 대치하는 것만이 무슨 불변의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보수진영이라고 해서 과거 진보진영이 보여 준 것 이상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 직전, 보수 중의 보수였던 정형근 의원은 "한반도 평화비전"이라는 대북정책 시안을 이명박 당시 후보와 박근혜 후보에게 제안했다. 그 방안에는 남북 상호 방송 신문 전면 개방, 서울대학교와 김일성대학교 간의 유학생 교류, 서울 평양 경제대표부 설치, 남북중미 4자 간 종전선언 수용 적극 검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해방 70년, 분단 70년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역사적 소명인 통일에의 길로 과감히 돌아가야 한다. 만약 다른 핑계로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세월이 지난 후 이 시기는 바로 그 소명에 비추어 퇴보나 답보만 하던 시기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긴 역사의 안목에서 볼 때 통일보다 더 크고 절실한 역사의 소명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 제발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2014년과는 다른 행보를 박근혜 정부가 보여 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