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최종변론이 있었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이정희 통진당 대표가 참석하여 마지막 설전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황교안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라는 무시무시한 규정을 내렸다. 주된 논지는 역시 종북이었다. 그냥 놔두었다가는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제궤의혈(堤潰蟻穴)이라는 어려운 사자성어도 나왔다. 제방을 무너뜨리는 개미굴이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지 않고 그냥 두었을 때 조만간 그것이 커져서 북한의 수령제와 손잡고 대한민국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통진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몇 명이나 내었던가? 관악, 성남, 광주 등지에서 서너 명이 나온 것이 고작이었다. 원내 교섭단체에도 턱없이 미달하는 숫자다. 그나마 그런 숫자라도 나온 것은 통진당 같은 진보적인 정당이 나름대로 역할을 할 때 나라 정치가 보수-진보의 균형을 잡는다는 국민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당해산심판이라는 국면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이 사건의 발단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이었다. 그리고 이 곡절 많은 통합진보당 사건의 진짜 실체도 따지고 보면 역시 국정원의 대선개입일 뿐이다. 이어진 모든 사건들은 국정원 사태라는 이 실체에 모아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띄운 그림자놀이에 불과했다.

▲ 정당해산심판을 설명하는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사진 출처 =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알다시피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은 2012년 말 대선 투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그 단서가 발각되었다. 국정원 출신의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서둘러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표하여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 그러나 결국 그런 일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도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4월에 새로 임명된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 문제를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외풍을 막아 주었다. 그러자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점점 그 실체를 드러내었고 결국 원세훈 국정원장은 6월 불구속 입건되었다가 별건의 뇌물 사건으로 구속수사를 받게 되었다. 국정원은 이 문제에 쏠리는 따가운 여론의 비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8월 하순, 비장의 이석기 사건을 폭로하여 맞불을 놓았던 것이다.

이석기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맞불

이석기 사건은 우리 속에 오래 잠들어 있던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였다. 그것은 국정원 해체로까지 비화되던 논란을 일거에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사건이라고 해야 어느 실내집회에서 나온 이석기 통합진보당의원의 발언에 불과했지만 내용은 적잖이 쇼킹한 것들이었다. 일반 국민은 물론 심지어 정치 평론 전문가들에게마저 그것은 쉽게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고 해괴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 발만 물러서 바라보면 그것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1990년대 내내 그것은 대학사회를 풍미하던 이념적 소용돌이 속에서 숱하게 보아 오던 것이었다. 나는 386세대가 아니라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접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90년대 초 어떤 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30세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발제자가 발표 도중에 "김일성 장군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청중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대학가의 분위기가 이렇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 발제자는 지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물론 훗날 그의 활동은 김일성 장군님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그때는 다들 그랬다. 반공에 묶여 온 긴 세월이 80년대 군사독재와 싸워 쟁취한 자유의 공간에 급격히 풀리며 생긴 회오리 현상이었다. 철부지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 그런 철부지함이 없었다면 과연 누가 저 군사독재의 철옹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못난 역사의 상처였다. 지금 생각하더라도 나는 그 상처가 생기고 낫고 더치고 하는 모든 과정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잘 견디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석기 의원의 낯설고 해괴한 연설, 부분 부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도 못할 연설이 그런 상처의 말미를 장식하는 것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그것을 험악하게 포장하여 내어 놓은 데다 선정성에 기대어 먹고 사는 언론들이 호들갑을 보태니 국민들은 또 그런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석기 사태를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으로까지 끌고 간 것은 정권이 그 효과를 좀 더 지속시키면서 동시에 그것이 국정원의 부정선거 시비를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국충정에서 나왔다는 자기 최면을 위해서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2014년도 저물어가는 이즈음 우리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안 그래도 안쓰럽고 황량한 마음을 가눌 길 없는 가운데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저 그림자놀이를 대책 없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의 변론, 설득력은 있었으나

황교안 장관의 철 지난 형식 논리에 비하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변론은 비교적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는 통합진보당은 헌법이 표방하고 있는 민주적 가치를 옹호하고 있으며 그 가치가 노동자, 농민, 도시 서민들에게까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음을 역설했다. 또 통합진보당은 결코 북한식 사회주의를 이식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과의 그 어떤 현실적 연계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변론은 대체로 공감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변론문을 다 읽고 났는데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 긴 변론문에서 이석기 사태가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헌정사상 초유라는 정당해산 심판이 이석기 사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던가? 이것은 결코 솔직한 태도가 아니다. 그녀는 무어라도 이석기 사태에 대해 당의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단 한 줄은커녕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당내 경선 부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역시 입을 다물고만 있던 그녀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석기 의원을 반드시 비난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비난이 되든 비판이 되든, 옹호가 되든 변명이 되든 당의 대표로서 입장 표명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석기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이 동지에 대한 신의 때문인지 그것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계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런다고 해서 재판관들이 그 문제를 간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침묵에 통합진보당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어야 할 당위성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황교안 장관이 과장된 언설로 늘어놓은 위험성은 어디에도 없다. 정당은 국민의 지지 위에 유지되는 결사체다. 지지가 있으면 누가 무어라 해도 살아가는 것이고 지지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당이다. 민주주의를 반세기가 넘게 유지해 왔다는 나라가 설혹 법률에 그런 절차가 있다 하더라도 헌정사상 유례가 없다는 그 절차에 의지하여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정말로 성숙되어 가고 있다면 모든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슬기로운 판단에 맡겨야 한다. 이미 법원은 이석기 의원에 대하여 내란음모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소위 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구차하게 내란선동죄를 적용하였지만 과연 누가 얼마나 선동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그 유명 인사의 20대 막바지를 장식하였던 "김일성 장군님"과 그에 준한 90년대의 거친 꿈의 잔해가 작은 녹음기에 담겨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한 발 앞서 일본 현대사의 적군파가 보여준 항공기 납치며 아사마 산장 인질사건(1972년 2월, 일본의 휴양 시설인 아사마 산장에서 일본 연합 적군의 조직원이 산장 관리인의 배우자를 10일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 비하면 사건 축에도 들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밥솥 폭탄 하나 터진 것도 아닌데 명색이 법무장관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붕괴"까지 언급한 것은 그 목적이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무리한 발언이었다.

“내가 그 비판을 들어 약으로 삼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까마득한 2600여 년 전 춘추시대, 정나라 사람들이 향교(鄕校)에 모여 나라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연명(然明)이라는 자가 재상인 자산(子産)에게 향교를 없애 버릴 것을 건의했다. 자산은 이렇게 답했다.

“저 사람들은 조석으로 향교에 모여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잘잘못을 비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중 잘 한다 하는 것은 내가 행하고 잘못 한다 하는 것은 내가 고치면 되니 비판은 나의 스승입니다. 어찌 향교를 없앨 것입니까? 나는 충성과 선을 행하여 원망을 줄이라는 말은 들었으나 위세를 이용하여 원망을 봉쇄하라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구태여 막으려 들면 어찌 막지야 못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냇물을 막아 버리는 것과 같아서 무리한 시도가 잘못 되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니 종내에는 나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조금씩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낫고 내가 그 비판을 들어 약으로 삼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鄭人游于鄕校,以論執政.然明謂子産曰,毁鄕校如何.子産曰,何爲,夫人朝夕退而游焉,以議執政之善否,其所善者,吾則行之,其所惡者,吾則改之.是吾師也,若之何毁之.我聞忠善以損怨,不聞作威以防怨.豈不遽止.然猶防川.大決所犯,傷人必多,吾不克救也.不如小決使道.不如吾聞而藥之也.(『春秋左氏傳』襄公 三十一年)

국정원 사태를 호도하기 위해 그림자놀이로 제공된 이석기 사건 그리고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는 황교안 장관의 말처럼 개미집에 불과하다. 1980년 신군부의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만행에서부터 비롯된 현대사의 비극적 연쇄를 통해 바라볼 때 더욱 그러하다. 정권은 그것이 둑을 무너뜨린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둑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은 그 옛날 춘추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민의의 물길을 막아 보려는 간교한 시도들일 뿐이다. 국민의식의 조작을 통해 일당 영구 집권을 획책했던 저 국정원 사태와 그것을 호도하기 위한 권력의 온갖 사술이야말로 나라의 장래를 위협하고 장차 대한민국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심각한 요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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