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어언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세월호 특별법은 9월 30일 여야 간에 극적인 합의를 보았다고 하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권, 기소권은 안 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유가족들은 그 이전부터 수사권, 기소권이 안 된다면 대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만큼 객관적인 진상조사의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한 바 있다. 국가 권력이 개입한 진상 조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쟁점만으로 보면 이 현안은 본질에서 국정원 사태에 맞닿아 있다. 모두 무죄로 흐지부지 결론지어진 국정원 사태를 보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도 결과가 뻔하다는 것이다.

특별법을 둘러싼 팽팽한 대치를 지켜보면서 나는 유가족의 입장과 유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입장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미묘하지만 그것은 중대한 차이다. 유가족은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한 진상조사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매우 완강하다. 그러나 유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 권력이 약간 연계되어 있어도 진상조사위원회가 철저히 조사를 지휘하면 어느 정도 진상규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다. 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 원내대표인 박영선 의원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 두 생각 중에서 어느 쪽이 맞을까? 나의 생각을 굳이 밝히라고 한다면 나는 유가족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논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증자의 말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선생님께 듣기로 ‘사람이 진정(眞情)에 이르러 본 적이 없었던 자도 친상을 당해서는 반드시 진정에 이른다’고 하셨다.”
(曾子曰;吾聞諸夫子,“人未有自致者也,必也親喪乎!”)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부분 다 키운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런 입장의 부모에게는 그 사태를 둘러싼 갖가지 입장의 진정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이 주어진다. 바로 증자가 증언했던 바, 自致라고 하는 진정화(眞情化) 현상이다. 그것은 과격화와는 다른 것이다. 자식을 잃었으니 눈에 뭐가 보이겠나, 당연히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과격해지겠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들은 단지 진정에 이르렀을 뿐 결코 과격해진 것이 아니다.

지구상의 성인이라는 사람들은 바로 일상에서 그런 진정성을 지녔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남들이 무심할 때 그들은 외쳤고 남들이 그러려니 할 때 그들은 비분강개했던 것이다. 예수도 세상일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엄청나게 과격한 사람이었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유가족의 입장과 이를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은 반드시 특별법 문제에 관해서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모든 시각에서 유가족의 입장과 미유자치자(未有自致者)들의 입장은 분명히 나누어진다. 지난 9월 18일자 조선일보에는 그 곳 논설실장 양상훈 씨의 다음과 같은 칼럼이 실려 있었다.

"검찰 수사 결과는 세월호가 불법 증축, 과적, 허술한 화물 결박, 평형수 부족, 운항 미숙으로 침몰했다는 것이다. 구조 과정에선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은 놔 두고 자기들만 도망갔고, 해경은 선체 내부 진입 훈련이나 장비가 없었다는 수사 결과도 나왔다. 사고의 성격이나 드러난 사실을 보면 그 이상 무엇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도 또 특검을 하고 수사권, 기소권까지 달라고 한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양상훈 씨 말고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다 유가족이 아니고 세월호 참사가 결국은 남의 일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양상훈 논설실장의 글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탓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의 글에는 진정성이 부족했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참사는 그 동안 우리나라가 걸어온 경제성장 일변도의 병폐를 집약하고 있다고 말했던가? 그리고 역시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가? 또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세월호 참사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이 같아서는 안 된다고 소리 높이 외쳤던가?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후 국가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던가? 당연히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나라를 바꾸는 일에 착수했어야 했다. 양상훈 씨의 말처럼 진상은 이미 대부분 다 드러났는데 뭘 또 규명할 것이 있냐고 한다면 나는 감히 말할 것이다. 그런 자세로 임하는 한 진정한 진상규명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진상규명은 진상을 규명해 가면서 온 나라가 반성하고 통탄하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전체 과정의 일환으로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상? 대부분 다 밝혀졌어. 어쩌란 거야? 유병언의 재산 대충 환수해서 손해배상해 주면 될 거 아니야. 마치 귀찮은 일이라고 되는 양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저 뻔한 진상은 결코 진상이 아니다. 그런 진정성 없는 논리야말로 졸부 국가로 성장해 온 이 나라가 봉착한 오늘의 비극이고 바로 그런 안이한 생각이야말로 저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원흉이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생리로 안다. 그렇게 남의 일처럼 중얼거리는 진상이 결코 진상이 아님을 알고 그것이 꽃다운 나이에 숨져 간 아이들에 대한 살아남은 국민의 태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 지난 7월 8일 십자가를 지고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도보 순례를 시작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김웅기 군 아버지 김학일 씨(왼쪽), 고 이승현 군 아버지 이호진 씨 ⓒ정현진 기자

만약 나라가 진정으로 진상을 규명하고 있다면 결코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세월호 문제에 대하여 진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 국가적 충격과 비통함을 모아 나라가 일신하는 일에 온 국민과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임하고 있을 것이다. 온 나라가 그 동안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을 반성하고 수많은 안전 관련 제도들을 점검하고 수정하고 있을 것이다. 선박 연령 제한 20년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 30년으로 풀어진 것도 이미 되돌렸든지 재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시킬 수 있는 정책을 범국가적으로 수립하여 추진하느라 나라가 시끌벅적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어느 곳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적막강산이다. 행여 세월호와 관련한 무언가가 이슈로 떠오르게 되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봐 모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딴전을 부리고 있다. 대통령 이하 모든 정부조직은 아시안 게임이든지 북한 고위층의 방한이든지 뭔가 다른 이슈가 부각되어 세월호가 하루 바삐 국민들 뇌리에서 잊혀지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언론은 유가족들이 대리운전기사와 싸운 사건만 밤낮으로 부각시켜 국민들이 염증을 내도록 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다. 그러니 무슨 진상규명을 하겠는가? 그런 분위기에서 무슨 진상이 규명되겠는가?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적어도 이 일에 있어서만은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리적으로 안다. 그리고 권력의 거짓된 태도도 안다. 유가족 심정의 반만 접근을 해도 나라가 이런 처참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7시간도 규명되어야 할 진상 중 하나다. 혹자는 대통령의 7시간을 문제 삼는 것은 대통령을 흔들고 그 문제를 확대시켜 권력의 공백을 활용해 보겠다는 정략적 의지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 7시간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하는 것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사생활의 문제일 수도 있다.

문제는 무엇을 하였느냐가 아니라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애초부터 대통령이 서면 보고를 받고도 일체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래에서 다 알아서 할 텐데 내가 개입한다고 해서 뭘 하겠나?" 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일선 현장의 문제이지 대통령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고 판단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마치 부모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은 자식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병원에 간들 의사도 아니고 뭘 할 수 있겠나? 부모를 살리는 것은 의사들이 알아서 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지나친 비유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날의 7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 이후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대통령의 6개월에 걸친 언행을 보면 결코 지나친 비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은 무능한 모습을 보여 준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모든 책임을 해경에 돌렸다가 진작 없어져야 했던 악덕 기업이 살아남아 이런 사건을 저질렀다며 유병언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가 다시 자기만 살겠다고 승객을 방치한 선장에게 책임을 돌리는 등 갈팡질팡하기만 하였다. 대통령 차원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어떠한 본질적 조치도 한 것이 없다. 그것은 이 사건을 대통령으로서 일을 해나가는 길목에 운 없이 등장한 장애물 이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여기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고 원인 중의 하나가 제한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풀어 고물 선박이 버젓이 운항할 수 있게 한 것임에도 대통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 딱 감고 규제를 더 풀라"는 지시를 내렸다. 상식적인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지시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의 7시간을 점점 더 문제적인 시간으로 만들어간 것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었다.

숱한 사람들이 유가족들은 왜 선장도 해운사 사장도 아닌 대통령을 붙잡고 성토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하지만 그것은 유가족의 입장을 모르는 소리다. 대통령은 이 사건을 일관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7시간에 걸쳐서도 대통령은 자신의 소임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그 이후 6개월에 걸쳐서도 역시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점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있지만 대통령이기 때문에 적당히 덮고 넘어가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반세기 전의 무지하고 비민주적인 세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참사 6개월을 기점으로 이 사건은 권력이 희망하는 것처럼 잊혀져 갈지도 모른다. 세기의 비극도 인간의 일인 바에야 어찌 잊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사건은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새로운 기억의 단계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진정이라는 것을 다 진멸시킬 수 없는 한, 그것은 시와 소설로, 음악으로, 미술로, 영화로, 아이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로 진도 바다의 전설로 남아 전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20년만 지나도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조차 별로 없겠지만 이 가슴 아픈 세월호 참사만은 50년이 지나도 그 사건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되풀이하여 이야기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의 한 모퉁이로 당시의 권력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흐지부지 그 사건을 흘려보내었던 사실도 지체되어야 했던 후진성과 함께 오래 오래 이야기될 것이다.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