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12월28일(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축일), 루카 2,22-40

“이 아이를 한국에서 입양했는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런 우리 아이예요.” 오래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한인을 위한 미사를 드리고 난 후, 어느 호주 부부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그 부부는 호주 성당에서 한국어 미사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2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왔다고 했습니다.

2년 전, 한국에서 입양한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그 부부는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다고 합니다. 호주에서 자라지만 이미 이 아이는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는 한국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답니다. 한국음식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고 지금은 파전도 부치고 김치를 담글 줄도 안다고 했습니다. 입양한 여자 아이보다 서너 살 더 들어 보이는 호주 남자 아이는 입양한 여동생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눈빛과 표정으로 한국에서 입양된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오늘, 오래전에 만난 그 호주 가족이 생각이 난 것은 그 가족 안에서 성가정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생활을 하는 가톨릭신자들의 바람이 있다면 성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외짝 교우 가정이거나 자녀들이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권하거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가족 모두가 가톨릭신자로 세례 받는 것을 첫째 조건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족 모두가 가톨릭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필요조건이 될지는 모르지만 충분조건, 나아가 절대적인 조건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례를 넘어 성가정이라 부를 수 있기 위한 그 무엇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순탄하지 않은 성가정

우리가 성가정의 모델로 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은 결코 순탄한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이 가정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서 안락한 요람이 아니라 말구유에 담겨야 했고, 그 연약한 아기는 헤로데의 정치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한밤중에 일어나 그 어린 핏덩이를 안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로 인해 "영혼이 칼에 찔리는"고통을 겪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자 했지만 예수님의 양부로 부름을 받고서 자신의 계획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르고,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이루어야할 가정의 모델로 보는 것인가?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아기 예수님이 계셨듯이 그 가정에 예수님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성가정의 가장 큰 특성은 그 가정의 구성원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고, 그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내 맡겼습니다.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리기 위해서는 마리아와 요셉이 그러했듯이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그 무엇보다도 잘 듣는 분이셨습니다. 잘 들을 수 있었기에 자신의 뜻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신안나
행복한 가정의 특징

미국의 어느 연구에 의하면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특징들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가족들이 서로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내어 주는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긍정적인 대화’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종교적인 믿음과 신앙’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영적인 풍요로움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위기대처능력’이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해서 위기나 어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가정일수록 어떤 위기나 어려움이 오면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일치하고 한마음이 되어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기나 시련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들을 보면 모두가 복음적인 가치들입니다. 즉, 서로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고, 서로에게 감사하고 이해하고, 서로를 보듬어 주고 격려해 주고, 함께 기도하고, 힘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바로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복음적인 가치들을 살아가는 거라 생각됩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복음적인 가치에 따라 기르고,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전해지는 하느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나아가서 가족 모두가 복음의 가치들을 내면화하고 삶 속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가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호주에서 만난 그 가정은 분명 이러한 복음적인 가치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입양한 한 아이를 위해 양부모와 그 아들은 그 아이에게 사랑을 쏟으며 보살폈을 것입니다. 성탄을 맞은 우리에게도 한 아기가 주어졌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성탄은 우리에게 태어난 한 아기를 보살피는 일일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보살피고 키워 갔듯이, 우리에게 태어난 아기,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보살피고 잘 키워 가는 것이 성탄의 의미일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생명력을 보살피고 키워 가는 일,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생명을 죽이는 이 무자비한 현실 속에서, 이 땅의 모든 생명(아기)을 보살피고 생명(아기)을 지키고 그 생명(아기)이 온전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이유일 것입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저는 호주에서 만났던 그 가족을 떠올리며 하느님께서 그 가정을 축복해 주시길 청합니다. 또한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생명을 보살피고 생명을 키워가는 모든 이들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최성영 신부 (요셉)
예수회 성소 담당, 청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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