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12월14일(대림3주일), 요한 1,6-8. 19-28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그는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있도록 마음에 길을 냈던 소리였습니다. 그의 사명인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이 소리는 대림 전 주간을 관통하는 소리입니다.

요한은 주님의 길을 내기 위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그는 당시 유다 민족을 억누르고 있었던 인간의 불행과 비참함의 원인은 정치적, 종교적인 억압뿐만 아니라 바로 인간의 어두움, 즉 하느님과 인간의 뒤틀린 관계로부터 왔음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화를 표현하는 회개의 상징 행위인 세례 예식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과의 화해라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회개할 때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

회개는 인간이 하느님께 가까이가려고할 때 거쳐야 할 길입니다. ‘회개한다, 참회한다’라는 말은 단지 도덕적, 윤리적인 차원에서 어떤 행위나 죄를 뉘우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섭니다. 회개(metanoia)를 의미하는 희랍어가 우리의 사고방식, 관점, 마음과 정신의 변화를 의미하듯이, 회개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로 나아갔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

1) 회개는 자기 편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반면에 거짓 회개는 자기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죄스런 경향을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를 전가시킵니다.
2) 회개할 때 우리는 타인의 비판에 대해 너그럽지만, 거짓 회개는 이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입니다.
3) 회개는 기쁨과 내적인 자유를 주지만, 거짓 회개는 우리를 더욱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4) 회개는 이해와 희망을 낳지만, 그 반대는 편협한 시각과 타인을 비난하는 일에 치중합니다.
5) 회개는 자신이 하느님께 이끌려 간다는 느낌을 받지만, 거짓 회개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내몰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G.휴즈, ‘놀라우신 하느님’ 참조) 나아가 회개로 나아갔을 때, 우리의 삶이 복음적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내 안의 죽어 있는 것들이 파릇한 생명으로 태어나고, 내 안의 아픔이나 고통들이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우리의 내면이 하느님의 빛으로 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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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회개... 무섭지 않아요

따라서 “회개하라” 라는 이 말은 ‘너 죄 지었으니까 고백해’ 라는 협박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부족함, 어두움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움에 내맡기라는 부르심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희망의 초대입니다. 그러기에 죄를 인식하는 것은 은총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빛이 없이는, 그분의 도우심이 없이는 자신의 내면 깊이 자리하고 있는 어두움과 죄를 바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회심한다는 그 자체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분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회개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두움을 보는 것이 어렵고, 힘들고, 상당한 도전을 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스러운 경향, 내면의 어두움을 보고, 이를 받아들이고,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자신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인간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런 나를, 그런 죄스런 나를 아버지 하느님께서 ‘기꺼이’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신다는 것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웠던 마음 안으로,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 마음 자리 안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의 은총과 사랑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죄가 있는 곳에 은총이 풍성하게 내렸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이가 당신이에요

- 김용택

나의 치부를 가장 많이 알고도
나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이 당신입니다.

나의 가장 부끄럽고도 죄스러운 모습을
통째로 알고 계시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분일 테지요.

그분이 당신입니다.

나의 아흔 아홉 잘못을 전부 알고도 한 점
나의 가능성을 그 잘못 위에 놓으시는 이가
가장 나를 사랑하는 이일 테이지요.

그이가 당신입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사람이고 싶어요.
당신의 한 점 가능성이 모든 걸 능가하리라는 것을
나는 세상 끝까지 믿을래요.

나는...

나는 당신 하늘의 첫눈 같은 사랑입니다.   


 
 

최성영 신부 (요셉)
예수회 성소 담당, 청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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