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11월 23일(그리스도 왕 대축일), 마태 25,31-46
죽음을 체험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의사로부터 자신이 얼마 후에 죽는다는 진단을 받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먼저, 남아 있는 가족에게 유서를 씁니다. 이 글이 어린 아들, 딸과 아내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라는 것이기에 마음이 울렁거리기도 합니다.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갑니다. 깜깜한 관 속으로 여러 감정과 느낌이 들어옵니다.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과 아픔이 밀려오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고스란히 체험합니다. “나는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는가?”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체험하게 하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비록 가상이지만 그러한 죽음 체험이 끝났을 때 많은 것이 변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둘러싼 것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평소 소홀히 했던 아이들과 아내가 그렇게 소중하고, 이전까지 하찮게 보이던 것들이 소중하게 생각되고, 자신이 그렇게 매달렸던 어떤 것들을 놓아 버릴 수 있고, 무료하게 살아왔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중요한 날들로 생각되고, 더 사랑하고 더 나누어야 하고.... 아무튼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올라온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 사람이 죽음 앞에 서면, 그 사람의 인간성이 어떠하든지 간에 마음이 순수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새를 비롯한 동물도 죽음이 가까워지면 그 울음이 슬퍼지고 순해진다고 합니다. 사람도 죽음 앞에 서면,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끝을 모르고 살아왔던 그동안의 삶에서 많은 회한을 갖게 됩니다. 진정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절절하게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우리가 죽은 다음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최후의 심판”이라고 부르는 오늘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의인과 죄인을 구분해서 의인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죄인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보내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는 것은 하느님이 그리 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스스로 그런 결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죽음을 앞둔 사람은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는 분이시지 인간을 벌하거나 우리의 약함을 가혹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구원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바람인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바람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더 간절하게 원하신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느님이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냐?” (God or Nothing) 또는 천국이냐 지옥이냐? 이러한 선택 내지 갈림길은 내가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즉 “최후의 심판”은 한 사람이 한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총체적이고 최종적인 평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이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어 떠도는 이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병든 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들에게 했던 것이 바로 당신 자신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이에게 자신을 나누어 주고 연민과 사랑의 삶을 산 사람들이 바로 의인이고, 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라는 겁니다.
언젠가 우리는, 아니 우리 각자는 하느님 앞에 설 것입니다. 내 삶의 끝자리. 어느 누구도 나와 함께 갈 수 없고, 그 누구도 나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기에 나 홀로 서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는 하느님과 나만이 있고,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앞에 우리의 눈앞에, 사랑과 연민 그리고 나눔의 삶을 살았던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는 오늘, 내 삶의 끝자리에 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는 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첫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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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영 신부 (요셉)
예수회 성소 담당, 청년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