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10월26일(연중제30주일) 마태 22,34-40

연 피정 때 일입니다. 그날 기도 자료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기도 자료를 받아 들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기보다, 먼저 제 안에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할까? 하얀 종이에 하트(♡)를 그리고 그 종이를 벽에 붙여 놓은 다음,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사랑이라고 상징화하지. 저게 무엇일까? 도대체 사랑은 무엇일까? 그렇게 하트를 바라보는데 불현듯 그 하트가 사람의 심장 모양이 아니라 사람의 두 귀를 모은 이미지로 제 안으로 확 들어왔습니다. 이어서 제 안에서 올라온 소리, “아 사랑은 듣는 것이구나.”

▲ 사진 출처=위키미디어 코먼스
사랑은 듣는 것이라는 통찰은 다시 여러 생각을 불러왔습니다. 잘잘한 일상 안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지만 서로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미워지면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 성모님을 생각하니, 성모님은 잘 듣는 분이셨습니다. 먼저 들었기에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뜻을 잘 알아들으셨겠지요. 요셉 성인도 그랬고 수많은 성인들도 그랬습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도 젊었을 때 세속적인 욕망을 좇아 살다가, 병상에 누워 지내면서 마음이 하느님께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소리를, 우리 마음을 잘 들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고통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던 당신 백성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탈출 2,24 참조) 당신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렇듯 듣는 거라는 생각이 한동안 제 안에 맴돌았습니다. 피정 뒤에 우연치 않게 한 줄의 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듣는 것입니다."(폴 틸리히)

일반적으로 사랑은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내게 있는 것을 상대에게 주고 싶고, 또는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받고 싶은 바람입니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욕구가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욕구는 사랑을 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그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이를 소중하고 가치 있게 받아 주고, 나 또한 상대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체험을 말합니다. 나아가 사랑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상대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 생각됩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우리 삶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어릴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어른이 되어서는 여러 불안전한 의식과 무의식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또한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은 그저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인간 삶의 모든 단계에서 필요한 영양분입니다. 사랑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고 삶의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토록 사랑을 외치셨을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 예수님도 아버지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셨듯이 당신 제자들도 사랑 안에 머물면서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면 되지 싶은데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느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넓혀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나갈 수 있고, 궁극적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의 신비를 알아 가리라 생각됩니다. 일례로, 마더 데레사의 삶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그렇게도 깊은 사랑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가난한 이들을 사랑했고 가난한 이를 사랑했기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깊게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생명이었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 신앙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가의 웃음소리를, 우리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소리를, 비가 내리는 소리를,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이 땅에서 들려오는 아픔과 고통의 울음소리를, 말씀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소리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하여, 하느님을 알아가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연민을 깊게 해 나갈 때 우리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는 한 주간 말을 많이 하기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최성영 신부 (요셉)
예수회 성소 담당, 청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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