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데이비드 핀처 감독, 2014년

▲ '나를 찾아줘',데이비드 핀처 감독,2014년.(사진 제공=20세기 폭스 코리아)
여성작가 길리언 플린의 베스트셀러 소설, 범죄 스릴러의 새 장을 연 ‘세븐’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 영리한 감독이자 배우 벤 애플렉의 조합이라면.... 이 영화를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10번째 영화 ‘나를 찾아줘’는 온갖 기대를 품게 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결혼 5주년이 되던 날, 아내가 사라졌다. 닉의 아내는 미모와 지성은 물론 재력까지 겸비한 ‘알파걸’ 에이미다. 어린 시절에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 시리즈가 나왔고 하버드 출신이며, 성공한 저널리스트다. 완벽하게 어메이징한 에이미(‘어메이징 에이미’는 그녀를 모델로 한 동화책)는 모든 이들의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런 에이미와 친절하고 위트 있는 신문기자 닉은 완벽하게 어울리는 커플이다. 결혼 5주년 아침, 에이미가 갑자기 사라진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에이미가 남긴 흔적들은 닉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삐걱거렸던 정황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에이미를 바라보는 닉의 시점과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영화 전반부는 그녀가 실종된 뒤 남편이 겪는 하루하루를 보여 주며, 종종 에이미가 남긴 흔적을 통해 과거로 플래시 백한다. 후반부는 에이미가 집을 떠난 이후 그녀의 일상을 따라간다. 149분 동안 영화 플롯은 관객을 게임으로 끌어들이며 쥐락펴락한다. 한마디로 놀라운 영화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결정적 단서들이 펼쳐지며 게임이 엎치락뒤치락한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 사라진 아내 에이미를 찾고 있는 남자 주인공 닉.(사진 제공=20세기 폭스 코리아)
원작 자체도 뛰어나지만, 데이비드 핀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등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왔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현재 스릴러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 가장 믿고 볼만한 감독 중 한 명이다.

주인공을 옥죄어 오는 올가미와 이에 대한 반격이 쉴 틈 없이 이루어진다. 플롯 장치는 관객을 엄청난 긴장감의 연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영화를 보는 것은 주인공과 함께 두뇌 게임에 돌입하는 것이며, 관객은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보다 먼저 기지를 발휘하여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또한 동시에 그리 도덕적이지 않은 주인공의 정체에 의심을 가지게 한다. 관객을 가지고 노는 영화다. 현대 영화감독 중 최고라 칭할 정도인 데이비드 핀처의 편집 능력이 스릴러 추적 구조를 돋보이게 하고, 촬영과 사운드 효과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이 영화의 성취는 무엇보다도 미디어 비판과 위기의 가족,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정체성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 있다. “‘정교빈’이 ‘연민정’을 만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메시지를 일갈하는 ‘사랑과 전쟁’”. 영화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현대성의 추악한 얼굴을 탐구하는 능력은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화보 부부’라는 단어가 우리 현실에도 낯설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는 화목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운 부부, 그러나 실상을 파헤쳐보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갉아먹는 상태인 경우가 있다. 부와 명예를 가진 성공한 이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승자독식의 현대사회 구조에서 가족관계는 계약상 관계 정도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 부부이며, 사적 관계는 공적 관계에 완벽하게 종속되어 버리고 만다. 각자가 서로의 이상형을 연기하는 피곤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진짜 욕망이 뭔지도 잊어버렸다. 그러니 도덕관념이니 윤리니 이런 문제는 개나 줘 버려도 될 정도. 누가 누가 더 막장 상상력을 구현하여 부부 사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주체는 없고 그림자 이미지만 남은 현대사회의 슬픈 초상이다.

▲ 사라진 에이미.(사진 제공=20세기 폭스 코리아)
거기에다 선정적인 미디어 보도는 여론을 주무르는 자가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풍자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미디어를 통해 닉은 아내를 잃어버린 가련한 남자에서 순식간에 학대받던 아내를 살해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돌변한다. 그러더니 이내 사랑의 진정성을 간직한 순수한 가장이 되었다가, 구제불능의 루저가 된다. 그리고 다시 상처를 삭히는 애처로운 남편이 되어 버린다. 이 모든 변화를 이끄는 것은 얄팍하게 돌아가는 미디어 행태이고, 닉은 미디어로 인한 피해 당사자이기도 하며 동시에 미디어를 이용하는 연기의 달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모든 일상이 감시되는 시각 중심의 판옵티콘 현실에서 감시 장치를 악용하여 피해자와 가해자가 쉽게 뒤바뀔 수 있음 또한 보여 준다. 추악한 얼굴을 가린 우아한 가면을 유지하기 위해 두 사람의 일상은 언제나 전투다. 이들에 동화되어 실상을 들여다본다면 영화는 비극이지만, 멀리 떨어져 관망한다면 그들 드라마는 희극이 된다.

말끔한 여피들의 지저분한 속살을 보여 주기 위해 스릴러 장르를 상업적으로 잘 활용하면서, 동시에 폐부를 찌르듯이 철학 부재의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데이비드 핀처의 강점이 살아난다. 악당이 지배하는 위선적 사회의 초상, 우리도 예외는 아닐 터. 핀처의 이번 영화 역시 비평은 물론 흥행 전선에도 이상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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