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박사유, 박돈사 감독, 2014년

▲ 영화에서 '전국고등학교 럭비대회'에 출전한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의 선수들.(사진제공 = (주)인디스토리)
재일조선인학교 아이들의 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2006)’는 다큐멘터리 영화시장이 아직은 탄탄하지 않았던 당시 현실에서 입소문으로 관객으로 끌어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2014년은 ‘우리 학교’가 상영되던 2006년, 2007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8년 전 그때는 남북화해 모드와 함께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경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자신만의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 가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던 때였다. 그리고 지금, 남과 북은 다시 적대적이 되었고, ‘혐한’ 분위기를 드러내 놓고 말하는 일본 극우 세력들의 득세에 재일조선인은 위축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 용감하고 기특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더더욱 응원하고 싶어진다.

‘60만번의 트라이’. 럭비를 하는 재일조선인 학생들의 꿈과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0년대 초중반에 욘사마의 폭풍 인기와 함께 일본 열도를 강타했던 초기 한류의 움직임 속에서 ‘재일(자이니치)’ 문제를 흥미롭게 다룬 일본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다. ‘GO(2001)’, ‘피와 뼈(2004)’, ‘박치기!(2007)’가 그것이었다. 각기 시대적 배경이 다른 영화들인데, 이 영화들에서 재일동포들은 인상적일 정도로 스포츠에 전력을 다한다. ‘GO’의 복싱, ‘피와 뼈’의 레슬링, ‘박치기!’의 축구,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도 축구 때문에 울고 웃는다. 일본 내 다양한 사회 진출의 기회가 막혀 있는 차별받는 존재, 재일조선인이 스포츠에 열정을 바치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일본 전국고등학교 럭비대회 준결승 경기에 오사카조선고급학교가 사상 처음으로 진출한다. 오사카조고 럭비부 사상 대회 첫 3위. 이는 19년간 꾸준하게 전국대회에 진출하여 얻어낸 쾌거였다. 천여 개가 넘는 일본 고등학교 럭비부의 치열한 경쟁에서 오사카 조고 럭비부의 경기를 보러 온 수많은 재일동포들은 응원석에서 선수들과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린다. 오사카 조고 학생들은 60만 재일동포의 꿈을 안고 전국대회에 나선 것이었다.

▲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사진제공 = (주)인디스토리)

영화는 럭비팀 소속 학생들의 훈련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봉합의 드라마이며 경쟁 스포츠가 보여 주는 긴장감을 십분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재일이라는 문제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생생하게 비춘다.

영화에는 일본의 극우정치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기자회견 장면이 잠깐 삽입되는데 이 장면은 재일조선인들의 일본에서의 현재 처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일본의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는 예외가 되고 오사카 시는 오사카조고의 모든 학교 지원금을 중지한다. 박돈사 감독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하시모토를 공격하지만 그는 유들유들하게 잘도 빠져나간다. “너 같으면 국가를 위협하는 교육을 하는 학교에 지원금 대 주겠냐”고. 국가가 지원과 처벌, 그리고 분리 정책을 통해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고 그리하여 시민을 효과적으로 길들이고 통치해 나간다. 재일조선인들은 통치하기 힘든 (비)국민이어서 그들은 국가 안에서 더욱 고립되어 있다. 그와 더불어 그들의 자존심은 더욱 세진다. 위태로운 경계인인 재일조선인 학교와 학생은 럭비에 희망을 걸고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고자 한다. 럭비는 그들의 자존심이 되었다.

조금은 아프고 우울한 이야기여서 영화의 분위기가 무겁고 낡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근심은 버려도 된다. 이 아이들도 신세대이다. 오사카조고 아이들은 유머러스하고 밝다. 거칠어도 사랑스럽다. 넉살이 좋고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여 협동심이 좋다. 가족과 이웃을 소중히 여긴다. 바깥의 단단한 편견과 멸시가 그들을 더욱 강하고 결속력 있게 만들었다.

▲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사진제공 = (주)인디스토리)

서울 출신 박사유 감독은 일본 정부에 강제로 동원되어 형성된 재일조선인 마을 교토 우토로의 강제 철거 투쟁을 리포트 하며 오사카조고 럭비팀과 만났고, 이에 재일동포 3세인 박돈사 감독이 함께 하여 오랜 기간 촬영을 했다. 총 3만 분의 촬영 분량을 106분으로 편집하여 완성한 영상에 ‘숨바꼭질’의 배우 문정희가 내레이션을 입혔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배우의 내레이션은 이야기에 척척 붙지 않고, 거친 영상은 영화를 감상하는데 가끔씩 방해 요인이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낄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 이어진다.

영화와 오사카조고 럭비팀이 강조하는 한마디는 ‘노 사이드’이다. 노 사이드는 시합 중엔 편이 갈려 사이드가 생기지만 시합에 끝나면 사이드가 없어져 함께 교류하고 즐기는 것이다. 내 편 네 편 먹고 싸우는 것을 부추기는 세력에 의해 갈등하다 결국은 갈가리 찢겨져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노 사이드 철학으로 모두가 차별 없이 행복해지는 세상은 60만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이 세상사람 모두가 기원하는 낙원일 것이다. 어른들은 노 사이드 세상을 위해 달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하고 싶은 말 또 하나. 얼마 전 사망한 꽃 같았던 권리세양(레이디스코드 멤버), 그녀가 조총련계 학교 출신이다. 단지 그 이유로 모두가 젊은 그녀의 사망을 애도하지는 않았다.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판치는 세상일망정, 이 세상에 잘 된 죽음 없다. 노 사이드 정신은 바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일 터.
 

 사진제공 = (주)인디스토리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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