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가렵다. 야심한 시간에 십여 군데는 물린 것 같다. 본격적으로 춥다면 이불을 뒤집어썼겠지만 아직은 선선하다. 술 한 잔 걸친 뒤라 이불을 걷어찼고, 다리와 팔, 등까지 골고루 가렵다. 가렵지 않다면 용서하고 지나가련만, 참기 어렵다. 배고팠을 모기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처단해야겠는데, 불을 켜면 이불 돌돌 말고 곤한 잠에 떨어진 식구를 깨울 게 틀림없다. 한두 시간 지나면 가려움이 사라질 테니 참을까? 다시 물면 새로운 곳이 가려울 텐데. 어차피 한두 마리에 불과할 모기, 실컷 빨았으니 배부를 터. 잠잠해지겠지.

귓전을 성가시게 하는 이맘때 모기는 고즈넉한 도시의 주거 공간을 아파트가 울뚝불뚝 바꾸기 전에는 없었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 3층 이상의 주택에 사는 이는 모기가 없다고 자랑했지만 이제 초고층까지 점령당했다. 매미가 귀뚜라미에게 바통을 물려줄 즈음 자취를 감추더니 요즘은 겨울에도 극성이다. 물린 자리 한동안 부어오르게 하는 장마철 전후의 모기와 한두 시간 가렵게 한 뒤 잊게 만드는 이맘때 모기는 종류가 같을까? 모기 유충 없앤다고 맨홀 뚜껑 열어젖히고 맹렬하게 뿜어댄 살충제로 돌연변이가 일어난 종류는 아닐까?

사람이 사는 공간에 사자나 호랑이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끔 곰이 나타나 쓰레기통을 뒤적이는 동네가 지구촌에 더러 있지만 그 녀석들에게 사람은 경계 대상 1호다. 여간해서 사람 곁에 다가가지 않는다. 겨울철 아스팔트로 찢긴 산하에서 멧돼지가 인가로 가끔 내려오지만 사람 보면 기겁해 이리저리 날뛰다 총 맞아 죽는다. 오죽하면 내려왔을까? 사람 냄새 혐오하는 녀석들이 음식 쓰레기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 텐데, 그 말로는 비참하다.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오던 길 되돌아가면 좋으련만, 가도 먹을 게 없겠지.

▲ 수풀에 있는 모기.(사진 출처= www.flickr.com)

질긴 모기

위협적인 동물을 철두철미하게 솎아 낸 사람은 모기마저 퇴치하려 혈안인데 쉽지 않다. 바닷가나 근린공원의 모기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겨울도 마다하지 않는 집안의 모기는 어떡한담. 밖으로 난 창틀마다 모기의 진입을 막는 망이 빈틈을 허용치 않는데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 하수구로? 하수구를 마다하지 않는 모기의 성의를 뿌리치기 어려운 우리는 이 가을에 모기향과 분무기로 맞대응해야 하나? 초대받지 않고 들어온 모기는 사실 몇 마리 안 될 텐데, 우리는 용서치 않는다.

요즘 모기 살충제는 방향제를 포함하므로 불쾌감을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향기에 취하는 사람에게 안전한 물질은 아니다. 모기는 해마다 한 차례 이상 번식하므로 살충제의 독성에 금세 내성을 갖는다. 독성을 여러 차례 올린 살충제는 식품첨가물 이상으로 사람에게 부작용을 안기는데, 방방마다 모기장을 펼칠 수 없으니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 고민이 자극했을까? 과학기술이 나섰다. 생명공학은 집안은 물론 집밖 모기까지 발본색원할 태세다.

모기 유전자 조작의 이유

잠깐 긁고 마는 모기라면 무섭지 않겠지만 말라리아를 옮긴다면 차원이 다르다. 미국이 주도하는 생명공학은 말라리아 병원충에 면역을 가진 모기를 유전자 조작 기술로 개발하는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는 해마다 6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희생된다고 보고한다.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는 유전자 조작 모기로 퇴치할 수 있을까? 말라리아뿐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전 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지 모른다고 경고한 댕기열병도 차단할 수 있다고 생명공학자들은 점친다.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을 뿐 아니라 통증이 심해 “뼈를 부러뜨리는 질병”이라 일컫는다는 댕기열병과 아프리카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말라리아는 대체로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된 채 영양이 부실한 지역의 어린이에게 집중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말라리아와 뎅기열병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명공학자는 기대하지만 이제까지 경험은 고개를 끄떡이게 하지 못한다. 신경계를 마비해 해충을 제거한다며 널리 보급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숱한 부작용을 생각해 보라. 유전자 조작 면화와 옥수수가 퍼뜨린 부작용이 유전자 조작 모기에 나타나지 않을 리 없는데, 영양 불균형인 어린이에게 말라리아나 뎅기열보다 덜 무서울 거라 확신할 수 있을까?

모기 박멸이 인류의 오랜 꿈일까? 영국과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씨 없는 수모기’를 유전자 조작으로 개발했다고 우리의 언론이 환호했다. 정자가 없는 수컷 모기와 교배를 한 암모기는 알을 낳지 못하니 점차 모기가 박멸되리라 점치는 게 아닌가. 그런 순진한 기대는 말라리아와 뎅기열과 같이 모기가 전파하는 질병을 사라지게 할 거라는 희망으로 이어지지만 가능성 여부를 떠나 생각해 보자. 모기는 생태계에서 사라져야 마땅한 악령이라도 되는 걸까? 모기를 먹고 사는 동물도 많다. 모기 먹고 살아가는 동물이 있어야 생태계는 안정될 텐데. 사람의 과학은 생태계의 변수를 파악하지 못한다.

미국 인디애나 주 퍼듀 대학의 리처드 하워드 교수는 경악스런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 있다. 유전자 조작 송사리 60마리를 일반 송사리 6만 마리와 같은 수조에서 키우자 40세대 만에 모든 송사리가 멸종되었다는 연구였는데, 씨 없는 모기가 생태계에 퍼질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 조작 콩을 밭에 뿌리자 그 제초제를 이기는 잡초가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씨 없는 모기에 포함된 조작 유전자가 모기에서 모기를 잡아먹은 동물로 옮겨져 그 동물을 변형시키면 생태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예기치 못하게 변화된 생태계는 안정적일 수 없다. 생태계가 불안정하게 되면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지, 생명공학은 진작 파악할 수 없다.

모기와 공존, 가능하다

겨울이 다가와도 사라지지 않는 모기는 한여름처럼 지독하지 않다. 몇 시간 살살 긁으면 그만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잠시 방 구석구석을 살피고 조치를 취하면 귓전의 성가신 소리로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겨울에도 모기가 사라지지 않는 건, 모기가 반길 환경을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겨울철 지하실의 습기가 얼어붙지 않고 반바지 반팔로 견딜 만큼 따뜻한 실내는 모기가 원한 게 아니다. 모기 유충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사람이 안겨 줬다.

모기가 전파하는 병보다 질서를 지키지 않는 자동차와 전쟁을 일으키는 갈등이 훨씬 위험하다. 도시에 모기를 늘린 에너지 과소비와 그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모기보다 내일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박멸보다 공존이 대안이다. 모기에게 가장 위협적인 천적은 다름 아닌 사람이 아닌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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