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월급 받을 때 늦게 가던 시간이 월급 주는 위치로 바뀌자 빠르다더니 월급을 주는 형편도 아닌데 빨리 오는 시간이 있다. 8월이 되면서 아이들 등록금 걱정할 시간이 어느새 다가왔다. 6개월이 이리 빠른가? 농사를 짓지 않으니 내다 팔 소가 없다. 농사를 지어도 소용없겠지. 공장식 축산이 가족농을 몰아낸 요즘 소 한 마리 값이 대학 등록금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등록금이 싼 공립대학이면 다를까?

등록금을 위해 저축할 여유가 없었으니 은행을 다시 노크해야 한다. 지난 학기 등록금 융자 상환금이 많이 남았지만 한 차례도 연체한 적이 없으니 다시 대출해 주겠지. 어떤 이는 아이에게 경제관념도 기르게 할 겸 미국처럼 학생 스스로 은행 융자를 받도록 종용한다고 귀띔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인데 사회생활을 빚쟁이로 출발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영리병원이 대세인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어 불안에 떠는 젊은이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를 대학생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독립시키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고 어떤 교포는 분석한다. 학점을 따서 취직할 때까지 교내외 아르바이트 이외에 수입이 없는 미국의 학생은 은행을 노크해야 한다. 은행은 취직 후 갚으라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융자해 주는데, 일단 취직한 뒤 수입의 일부를 갚는 조건이지만 실직하면 모두 빚이다. 당연히 가입한 의료보험에서 제외될 테니 집에 의존하지 않는 그는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

대학 등록금 반값 공약은 아직 유효한가? 정부 관계자의 거짓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더는 신뢰하지 못하겠다. 현 정부 수장이 대통령 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면서 “꼭 믿어 달라!”고 대학생들 앞에서 다짐했건만 아직 등록금은 요지부동이다. 임기가 남았으니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공약을 들은 당시 유권자는 대부분 임기 시작과 동시에 대학 등록금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는데 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되겠나?

지난 정권도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식언이 되고 말았다. 입대 전에 미리 등록하면 복학할 때 인상되더라도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말에 휴학하면서 등록금을 냈다. 이후 등록금 반액 공약을 믿고 잠시 후회한 적 있는데 그 정권의 수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현 정권은 언제 약속을 지킬 것인가? 그러긴 할 것인가?

사실 대학 등록금이 반으로 줄면 지금도 넘치는 대학생이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했다. 대학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무방한 직업을 선택할 거라면 굳이 대학에 입학하려 애쓸 이유는 없다. 수도권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 그것도 손꼽는 대학도 취직이 어렵다는데 입시철이면 처절하다. 전공을 살려 공부해 놓고 전공과 무관한 직장에 들어가는 이가 많은 우리 사회에 대학생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사실 아닌가.

전공을 한 젊은이가 필요한 분야가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원하는 전공 분야를 택해 능력과 실력으로 공부하려는 젊은이가 있다면 격려해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등록금이 비싸서 포기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손실을 입는 것이다. 등록금 절반 인하는 의미가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는 학생 등록금을 거의 받지 않는다. 내일을 위한 분명한 투자이기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반값 등록금 이후 달라진 풍속도

사립대학보다 등록금이 낮았던 서울시립대학교가 등록금을 반으로 더 낮추자 학생 사이에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고 그 대학의 교수가 전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젊음을 허비하던 학생들이 비로소 도서관이나 현장을 찾아 자신의 공부를 찾아 하더라는 것이다. 등록금 반값 이후 우수한 학생이 늘었다는 이야기보다 훨씬 반가운 현상인데 그런 소식에 왜 잘 나가는 사립대학들은 반응이 없을까? 비축해 놓은 돈이 적지 않다던데.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전공도 살피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려 애쓰는 이유를 ‘불안’으로 해석하는 사회학자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자신의 실력이나 신념을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졸자가 아니면 취업은 물론 이성교제와 결혼,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결국은 돈이다.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돈을 극복할 수 있다면 대학은 생략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진짜 필요한 전공을 선택하려는 젊은이거나 취미가 대학생인 경우가 아니라면.

등록금이 대폭 낮아지면서 드디어 책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비참하게 한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교양을 넓히지 못한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 아닌가. 책과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에게 넘치는 창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불안에 떠는 젊은이에게 이웃과 후손과 생태계를 배려하라는 이야기는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책이든 현장이든 경험과 교양을 넓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는 낮아진 등록금만큼 대학생에게 기본권을 제공하는 셈이다.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대학생에서 그칠 게 아니다. 기본적 생활이 가능한 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지불한다면 그 사회의 불안함은 그만큼 줄어든다. 대학 등록금은 물론 병원비, 주택융자, 닥칠 관혼상제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여유가 있는 만큼 사람들은 이웃을 만나 희로애락을 공감하고 후손과 생태계의 건강을 살피게 될 것이다. 오늘과 내일의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게 된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기본권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활발해져 기쁘다. 논의가 확산되면서 재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지만 그럴수록 대안을 찾을 것이라 기대한다. 우선, 재원에 대한 대안을 확실하게 찾기 전이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예산 규모에서 가능한 분야도 있다. 시범적으로 기본소득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묻고 따지며 찔끔 지불하는 차상위 지원이나 기초 노령연금을 거론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안녕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노인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 만큼. 일손이 늙고 부족해 화학 농업과 기계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도 농토와 수확이 부족하니 식량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 보자. 즉각 달라질 것이다. 농토와 농민도 늘겠지만 농사지을 마음도 커질 것이다. 기본권인 기본소득, 논의를 서둘러보자.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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