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포천시 수원산에서 발원해 남양주시와 구리시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왕숙천은 남양주시 진접읍의 팔야리를 거친다. 왕자들의 칼부림에 환멸을 느낀 태조 이성계가 왕궁을 떠나 한동안 머물던 함흥에서 마지못해 돌아올 무렵, 그는 삼각산이 가까운 지역에서 8일 밤을 지냈다고 한다. 태조가 숙영했던 하천이라 왕숙천(王宿川), 8일 밤을 지낸 곳이라 팔야리(八夜里)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1980년대 생물학과 신입생들은 토요일마다 야외실습 과목의 일환으로 수도권 생태계를 다녔는데, 왕숙천은 관찰과 채집의 대상지에서 빠지지 않았다. 주위에 식당이 없었던 시절. 학생들은 왕숙천 물을 떠서 쌀을 씻고 찌개를 끓여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수면 아래 떨어진 동전의 제조연도를 구별하게 했던 왕숙천은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 1990년대 밀집된 인근 공단에서 폐수가 유입된 이후의 일이다. 공장의 하수처리가 강화되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한동안 시커멓고 끈적끈적했다.

퐁당퐁당. 투명한 하천에 동심원을 만들며 들어갔던 조약돌이 저음으로 ‘푸웅덩’ 빠지자마자 모습을 잃었던 왕숙천은 아무 생명도 거느리지 못하는 차라리 독극물이었다. 즐비한 가죽 · 염색공장의 폐수가 차단되면서 왕숙천이 나아졌어도 살아난 건 아니다. 모래자갈과 더불어 물이 흐르면서 정화되기 시작했지만 상처는 남았다. 남양주와 구리를 지나 한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만과 민원은 줄었지만 한동안 코를 막아야 했다.

공장과 주택에서 나오는 폐수와 하수를 분리해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면서 우리 도시의 하천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 모래가 흘렀을 때 한없이 투명했고 다양한 생물이 강의 생명력을 과시하게 했는데, 서서히 회복되는 중이다. 중랑천이 그렇다. 지금은 왜가리와 백로가 한가로이 거닐며 무언가 먹이를 찾아내지만 10여 년 전에는 아무 생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악취를 무릅쓰고 가까이 다가가면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와 붉은 실지렁이들이 오물거리기는 했다. 혐오스러워도 생명이 남아 있다는 안도의 한숨은 허용해주었다.

부여 낙화암에서 바라보던 백마강은 금강의 한 구간이다. 강가의 넓은 모래가 절경이던 백마강은 지금 없다. 금강이 생긴 이래 흐르고 흘렀던 모래를 굴삭기로 퍼 올려 강가에 쌓아놓고 대형 보로 가로막자 수많은 전설을 품고 흐르던 백마강은 썩어가고 있다. 낙동강과 한강도 마찬가지다. 영산강도 그 모양이지만 새로 출범한 지방자치단체장이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으니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는데, 지난 정권의 ‘4대강 사업’은 사람이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굽이치던 투명한 강을 썩어문드러지게 만들었다.

▲ 사진은 박창근 관동대 교수가 합천창녕보 직상류에서 바닥의 저질토를 퍼올려 살펴보는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썩어문드러진 모습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수온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부터 녹조가 덕지덕지해진 강에 흉측한 생물이 나타나 보는 이를 경악하게 한다.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그 생물은 큰빗이끼벌레. 정체되어 썩어가는 강물의 바위나 나뭇가지에 붙어 유기물을 먹으며 부정형 덩어리로 성장하는 큰빗이끼벌레는 오물을 담아놓은 비닐주머니처럼 강바닥에서 흐물흐물한다. 양동이에 담으면 이내 썩으며 악취를 진동하는 큰빗이끼벌레는 보는 이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녹조에 이은 큰빗이끼벌레의 광범위한 출현은 ‘4대강 사업’이 빚은 수질오염과 생태계 교란의 결과라는 지적이 확산되자 환경부는 지난 4일 엉뚱한 해명에 나섰다. 큰빗이끼벌레는 청정수역에서 오염된 수역에 걸쳐 발견되고 독성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기온이 상승해 녹조가 발생했다고 해명한 환경부는 ‘4대강 사업’이 아니라 가뭄 때문이라는 투였다. 높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가 흐름을 차단하기 전에도 여름 가뭄이 드물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에 스멀거렸다는 말인가?

환경부는 녹조는 정수 과정에서 걸러지고 큰빗이끼벌레는 독성이 없으므로 수돗물은 안심해도 좋다고 주장하지만, 수억의 세월동안 다채로운 생명은 물론, 문화와 역사를 품고 흐른 강은 사람을 위한 상수원의 가치만 중요한 게 아니다. 강을 뒤덮을 정도로 심각해지는 녹조가 해마다 발생 시기를 앞당기고 드물던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 여기저기에서 흉측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무엇을 웅변하고 어떤 대책을 요구하는지 환경부는 헤아려야 했다. 더 많은 에너지와 약물로 처리해야 하는 수돗물이 환경부 대책의 전부일 수 없다.

6번 교향곡 ‘비창’의 초연에서 큰 호응을 받은 차이코프스키는 상기된 상태에서 미처 끓이지 않은 냉수를 들이켰는데, 유럽에 콜레라가 창궐할 때였다. 차이코프스키는 결국 콜레라로 사망했는데, 화강암 모래가 흐르는 강물을 떠 마신 유럽인들은 콜레라 풍파를 피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하천에 화강암 모래가 흐르는 우리나라는 복 받았다. 강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국가가 아닌가. 하지만 깊은 계곡이 아니라면 옛일이 되고 말았다. 왕숙천도 백마강도 정화시켜야 마실 수 있다. 녹조에 이어 큰빗이끼벌레까지 창궐하는 마당이 아닌가.

접촉하면 두드러기가 생기고 발진까지 일으키는 큰빗이끼벌레는 정체돼 썩어가는 강물의 상징이 될지언정 환경부의 말처럼 깨끗한 물의 지표생물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방치해도 좋을 리 없다. 독성을 가진 녹조 못지않게 심각한 수질오염과 생태계 교란을 지표하는 큰빗이끼벌레의 출현은 우리에게 모래가 흐르는 강의 복원이 시급하다는 걸 웅변하지만, 큰빗이끼벌레는 죄가 없다. 썩은 물이라도 생명이 남아 있다는 한숨을 허용하지 않는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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