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몇 달 전, 저는 물론 후배 수도자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어른 신부님께서 선종하셔서, 형제들만이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함께 모여 그분의 장례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그때 미사에 왔던 이들 중 몇 명의 청년과 저녁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기는 장례 미사에 갈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고인의 머리와 발이 위치하는 방향이 특별히 정해져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제품을 준비하던 언젠가, 이와 같은 질문을 전례학 수업 시간에 한 신학생이 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기억하기 좋게 이미지를 써서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장례 미사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인과 유족들은 성당 입구에 놓인 운구대에 관을 올리고 입당을 하게 됩니다.

입당 시에 고인의 다리가 먼저다 머리가 먼저다 하는 지침은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어떤 사람이 성당에 걸어 들어가는 평면화를 그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빈 종이에 이 장면을 그린다면 다리가 앞으로 향하고 머리(얼굴)가 뒤편에 위치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인의 다리가 진행 방향에 위치하여 입당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입당한 고인의 위치는 장례 미사 예식서에 지침으로 나와 있듯이, 고인의 신분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고인이 평신도였으면 머리가 신자석을 향하게 됩니다. 즉, 얼굴이 제단을 바라보는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이것은 평소에 제단을 바라보며 미사를 드리던 모습을 보여 줍니다.

▲ 6월 4일 봉헌된 정일우 신부의 장례 미사에서 고별식이 진행되고 있다. ⓒ한상봉

이와는 달리 고인이 성직자였다면, 성직자가 평소에 미사를 집전하던 그림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즉, 입당은 앞의 설명대로 동일하게 하지만 제단 앞에 와서는 머리가 제대 쪽으로 놓입니다. 그래서 평면화로 그려보면 얼굴이 신자석을 바라보는 그림이 됩니다.

이 그림을 기억하신다면, 장례 미사에서 입당과 퇴장 시 어떤 식으로 운구를 해야 할지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입당을 저렇게 했으니, 퇴장은 그 반대로 하면 됩니다. 미사를 마치고 걸어 나가는 것을 상상하시면 되는 것이지요.

고인이 신자라면 퇴장 시에는 신자석을 향했던 머리를 제단 쪽에 두고 발이 성당 입구 쪽을 향하게 한 후 운구하면 됩니다. 고인이 성직자인 경우에는 어차피 다리가 입구 쪽을 향하고 있으니 그대로 운구대를 밀고 나가면 됩니다.

그런대로 어렵지 않게 설명은 해 드린 것인가요? 정확히 이해 못하셨다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전통에 따른 이런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장례 미사가 잘못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어서 하느님의 면전에 선다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성직자든 신자든 얼굴이 제대를 바라보는 그림(즉, 머리가 신자석을 향한 자세)으로 관을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속풀이를 보시고, 장례 미사에 가셔서 운구하는 관의 위치가 옳다 그르다하며 평가하는 분은 안 계시리라 믿습니다. 장례 미사에 함께하시는 분들은 돌아가신 분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란 걸 알고, 그 때문에 장례 미사를 통해 슬픔을 나누고 부활을 함께 희망하는 분이실 테니까요.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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