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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께서 동거 커플에게 혼인성사를 해 주시다니요?[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얼마 전 신문기사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동거 커플들에게 혼인성사를 해 주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로마에서 9월 14일에 거행된 이 예식은 다음 달에 열릴 세계 주교시노드 특별회의를 앞둔 것이라 어쩌면 현재 바티칸이 취하고 있는 결혼에 대한 이해를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왜냐면 특별회의의 주제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혼인 전 동거는 죄인데 어찌 그들에게 혼인성사를 줄 수 있는가? 하며 보수적인 신자분들, 혹은 그저 막연하게 동거를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교황이 너무 심하게 파격적인 거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듯합니다. 부디 고정하시길. 그런 분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날 결혼한 남녀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업이 없거나 패스트푸드 점에서 시간제 일을 하는 이들이라고 뉴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남들처럼 성당에 미사 참례를 위해 나왔고 그러다가 알게 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동거가 올바른 일은 아닐지 몰라도, 일단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무시할 수 없으며 오히려 매우 숭고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갈망이 교회가 바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죄인'들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차단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느님께로 향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 모두를 매우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그렇습니다. 단지 그들은 일을 저지른 것이고 동거가 죄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여전히 조건을 맞춰보려 기다리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교황님이 스무 쌍을 위해 주례하신 혼배성사는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온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느끼고 있는 이들을 다시 교회 공동체로 받아들이고자 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실제로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기쁜 소식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죄인이었으나 혼배성사를 앞두고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은 이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사를 앞두고 그런 절차가 행해지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동거는 일종의 '불장난'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혼인관계가 아닌 청춘들이 열정에 못 이겨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 같이 말입니다. 좀 차이가 있다면, '장기적인 불장난'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혼배예식에 참여한 주인공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적어도 그 순간 죄를 용서받은 상태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윤리신학자들, 교회법 학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엄청난 스캔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언론은 이런 거 그냥 안 두죠.

그러니 심하게 걱정하시는 분들은 교황께서 아무리 파격적 행보를 보이신다 해도 그런 원칙까지 무시하는 '폭군'은 아니란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결혼과 가정에 대해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때가 되었음을 교회가 인식하고 고민을 통해 지혜롭게 전망을 제시해 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고 보시길 바랍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14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혼인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사진출처=교황청 홈페이지)

고백하자면, 저도 사목 현장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실제로 동거를 하다가 혼배예식을 하게 된 부부, 사회적으로 이혼을 한 사람들(교회 내에서는 이혼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혼인 무효라는 말이 존재합니다),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갖지 않고 있는 사람들, 혼배성사로 결혼하고 이혼 후 다시 결혼하여 혼인장애에 묶여 있는 이들 등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저와 막연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 아닐 때, 그들이 겪는 일들은 저와 관계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함께 안타까워하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풀어보고자 애쓰게 됩니다.

교회가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엄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결혼과 연결되어 자신의 삶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신앙생활에 거리를 두게 되며, 이런 저런 내적 혼란을 겪고 지내는 우리의 아들, 딸, 친척,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모범적으로 살았는데 너희는 왜 이러니? 식으로 방황하는 이들을 판단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 달에 개최될 예정인 특별회의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부디 하느님의 자비가 더욱 잘 드러나는 지혜로운 전망과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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