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언제 한 해가 시작되었나 싶더니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넉넉히 가을을 즐기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차가운 겨울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좀 더 멀리는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부류 중 하나가 내년 예산을 책정해야 할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각 본당의 예산 중 얼마 만큼이 청소년 사목을 위해 사용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교구의 통계자료를 보면, 평균적으로는 본당별로 전체 예산의 약 5퍼센트 안팎이 (초중고등부 주일학교를 위한) 청소년 사목에 쓰이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백분율이라 해도 본당별로 전체 예산 액수가 각기 다른지라 한 교구 내 청소년들이 모두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청소년 사목은 여전히 '우선적' 고려 대상은 아닌 듯해 보입니다.

"청소년은 교회의 미래"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사목적으로 지원하면 되는 대상이라고 말하면서 청소년 사목 관계자들은 씁쓸한 미소를 날리곤 합니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중요하다고는 하면서도 실제적인 지원은 받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저희 예수회 관구의 청소년 사목 사무실은 성소 분야나 고등교육기관(대학교) 운영만이 아닌, 청소년 사목 전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발족하였습니다. 역사가 두 해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관구 차원에서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는 제법 되지만 이제야 전담 팀을 구성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저희 사무실도 사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구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나 이 사목을 지원할 재정적인 기초는 매우 허약하고 계속 마련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 성물상에서 판매하고 있는 묵주와 상본. ⓒ한상봉
지난 봄에 청소년 사목위원들의 정기 모임에서 재정 후원을 확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해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념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하면서 후원자들을 확보해 보자,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의 부모님들께 홍보물을 보내 보자, 수도회 후원자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홍보물을 만들어 보자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중에 교황님 방한을 노린 발상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묵주를 제작하여 교황님의 축성을 받고 후원금을 낸 분들에게 선물로 드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의 참가자들 대부분이 아주 멋진 생각이라고 여겼지만, 이 의견에는 난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어떻게 교황님의 축성을 받을 수 있는가? 둘째, 후원금에 보답하는 식으로 묵주를 선물한다는 행위가 판매 행위와 명확히 구분되는가?”였습니다. 이 문제제기에 대해 어떤 형제는, 바티칸 성지순례에 가서 교황님 축성 묵주를 사 왔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게 가능한가? 되물었습니다.

축성된 성물은 세속적인 행위를 위해 남용될 수 없습니다. 즉, 판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축성 행위는 준성사의 한 가지(속풀이 "축성과 축복은 같은 말인가요?" 참고) 인데, 준성사를 남용하는 행위, 즉 성물을 미신적으로 사용하거나, 축성된 성물을 판매할 때에는 교회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가톨릭 대사전, "준성사"항 참조)  이런 이유로 바티칸에서 교황이 축성한 묵주를 사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묵주를 판매한 자들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성물점이 문을 열 때 교황이 산책하다가 들러 축복을 해 줄 수는 있겠으나 판매할 물건에 축성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은, 교황께서 날마다 삼종기도 마치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을 강복하신다는 것을 잘 아는 어떤 장사치가 판매할 묵주를 들고 나와 함께 강복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 그 강복의 대상은 사람들이지 그들이 지닌 물건이 아니지요. 더군다나 그것이 판매의 대상이 될 경우에는 이미 받은 강복의 의미도 날아가 버린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일종의 '사기'가 통하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미신적인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어서라고 하겠습니다. 일반 사제보다는 주교가, 주교보다는 추기경이, 추기경보다는 교황이 축성한 것이 더 효험이 있다고 여기기에 욕심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뭐.... 남들 이야기하듯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저도 교황님 알현하고 선물 받았다는 묵주가 앞에 있으면 마음이 흔들릴 겁니다.

독자님들도 아시다시피 교황 축성 묵주가 백 개가 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괜한 욕심과 미신에 휘둘리지 말고, 겸손한 기도를 올리는 가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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