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11]

▲ 욜라와 메리 ⓒ김혜율
요즘 애를 키우고 있는 젊은 엄마들을 보고 꼭 예전 엄마였던 사람들(지나가는 아줌마, 지나가는 할머니, 지나가는 여자 상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요즘엔 애 키우기 정말 좋은 세상이다.”

그러면서 옛날에 동네 빨래터에서 천기저귀 빨면서 애 키운 것부터 시작해서 산후조리가 뭐냐, 애 낳고 바로 밭에 가서 김을 맸니, 애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뱃속에 또 하나는 아장아장 걷게 하고 가마솥에 밥을 하며 증조 할애비까지 건사하는 대식구를 거느렸니, 요새 같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이 어디 있냐, 우리 땐 출산휴가 2개월 만에 직장에 불려 나와 고생하며 애 키웠다며, 애 하나둘이야 거저 키우는 거 아니냐며 부러움 반, 어디서 엄살이냐는 질책이 반이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에 맞먹는 눈물어린 고생담, 그리고 본인 영웅화로 살짝 마무리되는 스토리에 감동받고 생각했다. ‘아아, 난 정말 시대를 잘 타고 나서 애 키우는 복 터진 여자구나.’

그리고 반성했다. ‘옛날 육남매, 칠남매 기른 할머니도 건재한데, 왜 나는 애 둘에 벌써 좀비*가 되고 말았나.’ (* 좀비 : 공포영화에 나오는 살아서 돌아다니는 시체. 애 낳고 육아에 매진하다 보면 어느새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파리한 혈색의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와 옷이 항상 구질구질한 채 돌아다니다 아이가 발광하면 같이 각성되어 우우우 하는 좀비가 되는 것만 같다.)

그래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힘들어 하잖아? 그럼 다들 호강에 받쳐서 요강에 똥 싸는* 작자들이란 말인가?’ 오오, 아니다. 그건 진정 아니로소이다. (* 호강에 받쳐서 요강에 똥 싸다. : 친정엄마가 가끔 쓰는 관용어로, 자신 앞에 닥친 상황이 복에 겨운 줄 모르고 조그만 어려움도 참지 못하고 불평과 엄살을 늘어놓음을 두고 기가 차서 하는 말.)

초보 엄마 때는 참말 경황이 없어서 이전 세대 엄마들의 그런 말에 입도 뻥긋 못하고, “아, 그런가요” “정말 대단하세용” “근데 나는 왜 이럴까요” 하며 자신을 탓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보통 덤터기가 아니다.

요즘 엄마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애를 키우며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지 조금 이야기해봐도 좋을까? 애 하나둘 키우기도 벅찬데 뭐 셋, 넷을 낳으면 국가적 다둥이 혜택을 선사하겠다고? 차라리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격한 심호흡과 함께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나가떨어지는 엄마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엄살이 아니다.

여자 상사들의 과거 눈물로 점철된 일과 육아 병행기를 들으며 어린이집에 간 아이가 열이 펄펄 난다는 연락을 듣고도 눈물 질질 짜며 자리에 앉아 버티는 죄인 엄마가 되든가, 아니면 뒤꽁무니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조기 퇴근하는 눈치구댕이 직원이 되어서는 좀 더 독하게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과 약함을 한없이 탓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곤 하는 이 시대의 워킹맘들의 속은 또 어떻고.

요즘은 그냥 엄마가 아니라 ‘수퍼맘’을 요구한다. 내가 먼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쏟아지는 상품과 정보의 홍수 속에 엄마들을 끊임없는 육아쇼핑 갈증과 방황 속에 던지는 자본주의의 상술에 대한 울분은 그냥 엄마들과의 수다로 풀더라도(그 방대한 시행착오 경험치는 세 시간 분량의 수다거리로 여기선 숨차서 말 못함), ‘그저 좋은 게 넘쳐서 아주 애 키우기 편해 죽겠지?’ 하는 오해만은 해명하고 싶다는 것이다.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나 맨 먼저 소비하는 똥기저귀를 하나 사려는 순간부터 끝을 알 수 없는 육아용품 선택의 바다에 운명처럼 빠지고 마는데, 거기서 헤엄을 잘 쳐 섬에 닿아 휴식을 취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어푸어푸 헤엄을 치다가 탈진하기도 하고 쥐가 나기도 하고 그러다 아예 모든 에너지를 헤엄치는데 다 쏟아 부음으로써 죽음을 면하고자 하나, 바다는 끝없는 블랙홀이라는 것이 함정이다. 나는 애당초 ‘기권’이라는 섬에 닿긴 했으나 여전히 그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옛날처럼 그냥 소창 천기저귀로 통일했던 시대는 찬 개울가 물에 손은 헐어 터져도, 매일 밤 애 재우고 약 백여 종에 이르는 국내 유통 기저귀의 품질과 가격을 꼼꼼히 살피며 ‘최선’을 찾느라 눈에 다크서클이 생길 일은 없었다. 블로그맘들의 세세한 후기를 읽으며 우리 아이 기저귀 레벨을 결정하는 이런 일은 아이에 관한 모든 용품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옛날 엄마들도 ‘초저가 분유 핫딜’이 뜨거나 ‘미국 할리우드 엄마들이 쓴다는 기적의 역류방지 빨대컵 공구 진행’ 소식을 접하거나 ‘홈쇼핑 오늘 뿐인 대박 구성! 그 어디에도 없던 기저귀 4박스에 카시트 추가 증정!’ 이런 방송을 보았다면 호롱불 밑에서 삯바느질을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지 않고는 못 배겼으리라. 콩밭 매던 호미 내던지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와 카드 결제를 하고 밤 이슥토록 수십 개의 물품과 사이트, 블로그 후기를 비교분석하느라 아침에 소죽 끓이러 일어나다가 몸져눕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니까. 우리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똑같은 엄마니까.

그런데! 연이어 터지는 배신! 그렇게 산 물티슈에 방부제가 들어 있고, 기저귀의 화학 흡수젤이 몸에 어마어마하게 해롭고, 로션에 몰래 넣은 발암물질이 아이의 내분비 호르몬을 교란하고, 매일 먹는 분유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는 시대에 살며 상처받고 분노하고 있다. 옛날 청정 시대에는 흙 파먹고 자란 아이들이라도 건강했다. 먹을 것이 많이 부족해서 먹고사는 게 최우선인 시대를 살았던 우리네 엄마, 할머니들은 그저 요즘에 풍부한 먹을거리에 그런 걱정 덜지 않았냐 하시며 ‘아무거나’ 아이 입에 넣어주신다. 그러나 요즘 엄마는 아이들을 지키는 전사이기도 해서 먹는 것, 입는 것, 그 모든 것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 배운 농약 중독 피라미드를 기억한다. 사람 몸에 쌓이고 쌓여서 어느 한계치가 되면 농약의 독성에 쓰러지고 마는. GMO 수입농산물에, 제초제와 살충제로 잘 키운 채소와 과일에, 엄청난 항생제를 맞으며 돼먹지 않은 사육환경에서 나온 고기들이 유통되는 때에 우리 아이에게 먹일 건강한 먹을거리 걱정은 한 무더기다. 무농약 유기농은 기본이고 이젠 윤리적으로 소비를 해야 하고 되도록 로컬푸드를 섭취해서 푸드마일리지를 낮추고 탄소 발자국을 줄여서 지구온난화도 늦춰야 하는 사명을 안고 살아가는 요즘 똑똑한 엄마들의 강박관념이 행복하지만은 않다.

ⓒ김혜율
나처럼 욱해서 농사는 못 지어도 텃밭 일구어 자급자족하고 이웃들한테 얻어먹어가며 사는 것은 또 다른 처절함이 되었다. ‘유기농’ 자 붙은 아기 과자 나부랭이 한 봉지, 치즈 한 장에 가격이 얼마인가. 아기 간식비 조달을 위해 인형 눈알 붙이기라도 나서야 할 판이라고 쓸쓸히 웃는 엄마들은 진정 먹을 게 넘쳐 애 너무 잘 키울 만한 세상이라서 어깨춤이 나올라나? 그네들의 한숨과 타협은 예전엔 없던 것이다.

예전 엄마들은 애 키울 때 자연스레 순리, 이견 없는 육아 공식(그게 현재 몇몇은 잘못된 것이라고 성토당하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에 맡길 수 있었다. 그저 몇 백 년에 걸쳐 이어 내려져 온 애 키우는 법을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할망구까지 다 꿰어 일관되게 조언하는 마당에 무슨 혼란과 외로움이 있었을까.

반면 현재 엄마들은 온갖 육아서적과 전문가의 의견과 옆집 아줌마의 육아 방식이 서로 충돌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 속에서 오늘도 자신만의 육아법을 외로이 찾고 있는 중이다. 아이의 독립심을 길러 주기 위해서 신생아 때부터 울어도 달려가지 않고 잠들 때까지 혼자 내버려두라는 ‘아기 수면교육’이 진리인 것 마냥 엄마들 사이에 떠올랐다가도, 다시 미국 어느 학술지에서 오히려 울 때마다 충분히 안아 주고 엄마 품에 안고 재운 아기들이 컷을 때 흉악범죄를 덜 저지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사람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 아주 자주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 엄마들은 언제나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고 자신이 없는 의기소침 증세를 보이는 것인데, 엄마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뭐? 나보고 어쩌라고?”

그리고 예전 아이들은 엄마는 그저 집안 살림만 하고 가끔 성현의 말씀으로 엄하게 다스리며, 사서삼경이라도 좀 읽혔다 하면 엄청나게 똑똑해져서는 “소자,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사온데,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러 가고자 하니 부디 허락해 주시옵소서” 하여 그 엄마를 성공한 교육자로 만들어 버리곤 하였으나, 요즘 엄마들은 집안만 잘 다스리고 성현의 말씀만으로 애를 키우는 것이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기가 앉기 시작하는 무렵이면 문화센터 아기 수업에 나가 아기 오감 발달도 시키고 사회성도 기르고 엄마들 간의 정보도 교환하면서 일단 워밍업을 한 후, 아이의 감성, 지능, 예술성, 어학 능력을 두루 고려한 또 다른 교육의 블랙홀로 걸어 들어가곤 하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엄마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상술에 휘말린 것뿐이라는 슬픈 결말에 닿는다 할지라도 자력에 끌리듯 미친 듯 빨려 들어간다). 해리포터 원서를 낄낄대며 보는 아이는 흔해빠졌기에 이젠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기본으로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추가해서 어릴 때부터 여러 외국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느라 피땀과 돈을 쏟는 열성 수퍼맘들이 전국에 수만 수십만에 이르는 걸 어쩌겠는가.

내 아이만 한국어 하나 달랑 한다면 나중에 애 잘못 키운 엄마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오늘도 엄마들은 일단 우리 아이 독서영재라도 만들자며 집안을 도서관으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저 멋모르고 지나가며, 애 먹이고 입히고 하는 걱정에서 자유롭다고, 집에서 논다고, 일 나가야 되지 않느냐고 운 띄우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정 일만 하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어요~”

마지막으로 임신한 여직원한테, 애 키우며 일하는 여직원한테 ‘나도 겪었던 일이야~ 엄살 피우지 마’라는 눈치를 주며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는 개구리가 된 직장 여자 상사들한테 한마디만 더하자(같은 편이 되어야 할 당신들이 가장 아픈 적이 되고 있는 현실).

“당신들은 애 키우면서도 일을 놓지 않아 오늘날의 그 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요? 그래도 태어나서 백일도 안 된 아이 업고 출근한 건 아니잖아요. 당신들은 그 당시 아이를 봐주고 집안 살림도 대신해 줄 지원자가 있었다는 거지요. 아이 낳고 2개월 만에 출근했다고 억울한 척하지 마세요. 애 맡길 데 없어 어쩔 수 없이 직장 그만둔 엄마들을 낮추어 이야기하지도 마세요. 그 엄마들은 당신들이 사무실 의자에 앉아 서류 챙길 때 애 업고 안고 둥개둥개 해주다 이제 와서 성한 관절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젊은 엄마들 어린이집에 애 맡기고 출근하고 휴직까지 할 수 있으니 아주 천국 같겠다고요? 지금 젊은 엄마들 대부분도 예전 당신들 상황과 별반 달라진 건 없습니다. 애 봐줄 어른들이 없어, 돈도 없어, 어린이집에 백일도 채 안된, 돌이 막 지난 아이 아침마다 맡기고 돌아섰다가 직장 마치고 달려가 제일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아이의 슬픈 눈을 매일 볼 수 있는지요?

휴직했다고 가만두나요? 바로 근무성적평가 최하위로 바꾸고 한참 후배인 남자 직원을 승진시키고도 당연하다는 듯하지만, 결코 휴직 때문은 아니라는 논리를 펴시지요? 제발 당신 딸한테나 그리하쇼. 초보 엄마들의 눈물어린 등, 그 가엾은 등허리를 쓸어주지는 못할망정 콧방귀 뀌며 비웃고 차별하지만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애 키운다고 죽을 듯 살 듯 살아갑니다. 시대가 좋아서 애 키우기 편해졌어도 엄마들이 흘리는 눈물과 한숨의 양은 결코 덜하지 않고 강물로 흐르고 있다는 걸 조금은 눈치 채셨길 바라며, 이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울컥하고 말아야겠습니다.”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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