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13]

아직 봄이 채 자리 잡기 전의 일이다.

아침에 메리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셔틀버스 타는 정류장까지 나갈 채비를 했다. 항상 대외용으로 선보이는 바지를 꿰어 입고 옷장 깊은 곳에서 딱 한 벌만 꺼낸 유일한 아우터를 걸치고 머리를 손빗으로 빗는데 일 분이면 충분하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후...이정도면 영락없는 아줌마네....’

기분이 좋을 것도 없지만 크게 나쁠 것도 없었다.

‘나 아줌마 맞잖아. 그것도 어언 애가 둘인 아줌마니까 아줌마스러운건 당연한거지.’

하지만 ‘봄처녀 제 오시네~’하듯 세상 만물은 젊음을 향해 노래하는데 이제와 초야에 묻혀 논두렁 길을 걷는 나를 향해 순수한 매력을 느끼고 맘 설렐 이 어디 있으리요.

‘난 이제 뭔가 중심에서 물러난 거야. 애 키우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인데 그런 중요한 일을 하는 나는 왜 점점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지? 나이가 너무 들어 버렸나. 나이가.... 내가 삼십대 중반이라니. 송혜교는 무슨(며칠 전 친구를 만나 우리 각자 전지현, 송혜교가 되자! 까짓것 될 수 있다! 흥분해서는 지하철 안에서 셀카를 찍으며 깔깔댔었는데....), 그냥 오천 원짜리 몸빼 바지나 하나 사 입고 자아정체성을 찾는 게 좋겠어’

햇살 때문인지 이런 생각 때문인지 이맛살을 찌푸린 채 멀리 걸어오시는 할머니 한 분께
꾸벅 인사를 했다. 할머니가 점점 가까이 걸어오시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난 또 누구라고. 난 이 마을에 왠 처녀가 왔나 했네”

나는 그때 할머니의 시력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으시거나 독심술로 내 생각을 엿보고 위로차 건넨 인사일 것이라는 두 가지 가설 중 보다 가능성이 높은 첫 번째 추측에 백프로를 걸었다.

“에이~ 그럴리가요....”하는 돼먹지 못한 대답과 함께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으면서 할머니가 ‘어? 다시 본께 아니구먼’ 하시기 전에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기분이 오래도록 착찹했다.

▲ ⓒ김혜율
봄이 흐드러져 나물을 캐러 갈 수밖에 없는 충동이 드는 어느 날 이었다. 옆집 할머니께 쑥이 많이 나는 데를 물었더니 할머니가 따라오라며 앞장서 마을 윗길로 올라가셨다. 올해 여든 둘이신 할머니는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가듯 오르막 산길을 힘들지 않게 올라가신다. 나는 욜라를 업었다 걸렸다 하며 따라가다 너무 힘들어 쑥이고 뭐고 그냥 내려갈까하고 주춤거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여기여! 일루 와! 어딨어?” 소리쳐 부르셨다. 나중에 몸져눕더라도 일단 가보자 하며 힘을 모아 할머니 있는 곳에 당도하니 그곳은 나무 숲이었다. 그 나무는 알고 보니 자두나무.

할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쑥과 냉이를 캐서 내 포대자루에 채워 주시며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으셨다.

‘그래 시부모님은 어디 계시우? 시어머니 올해 연세는 어찌 되시고?’, ‘예에. 지금 a시에 살고 계시고 올해 환갑되세요.’ 했더니 부러움이 섞인 감탄조로 ‘아이고 젊다! 올해 환갑이면 아직 새색시 같겠구먼?’ 하시며 나에게 동의를 구하신다.

‘새색시? 우리 시어머니가 새색시급! 아아 그 정도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솔직하게 ’아니요, 충분히 늙으셨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면 할머니가 ’그럼 나는 심하게 늙었냐‘ 하시며 상심하실테지. 할머니를 슬프게 할 순 없어!’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아....네....환갑이니....젊, 젊으시죠! 하하하!”하며 어디가 아픈 것 같은 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든이 넘는 시어머니가 마을회관에 가셨다가 무슨 일로 화가 잔뜩 나서 돌아오셨다. ‘새파랗게 젊은 년이 나이든 어른들 밥 먹는데 처 누워서 TV만 보고 있더라니까.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것이 어디 있나 글쎄.’

듣던 며느리도 ‘아니 어떤 젊은 여자가 마을회관에 와서 그런 짓을 저질렀대요. 할머니들이 노하실만하네’ 추임새를 넣는데, 시어머니가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는 “올해 일흔 겨우 넘은 새파란 게 그랬어. 젊다고 늙은것들 괄세하는 거여 뭐여 시방” 하며 씩씩 댔다지.

그런가보다. 나이는 상대적인 것. 그리고 찰나와 같은 것. 하이틴 여자주인공이 백혈병인가 하는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스무 살 까지만 살고 싶어요’ 하는 유의 청춘 영화가 아이들 사이에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로 그 당시 나도 동생과 대체 몇 살까지 사는 게 좋을까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 34살이라고도 했고 더 욕심을 내서는 52살 이라고도 했고 내친 김에 오래 살자고 80살, 90살 이라고 하며 웃고 떠들었다. 이제 와서는 그저 헛헛, 웃음이 나올 뿐이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는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가 되고 말았지만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것은 분명하다. 우리 옆집 할머니만 만나면 나는 환갑이 되어도 새색시가 될 수 있는데 뭘.

실제로 우리 마을은 젊어지는 마을이다. 내 눈에도 차차 동네 어르신들이 예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었고 청년, 소녀같이 보이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옆집 여든 살 할아버지는 머리가 하얗게 세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와중에도 허리가 꼿꼿하고 걸음걸이는 성킁성큼 시원하시다. 이 할아버지가 홀로 천 평 논고랑을 쇠스랑으로 며칠간 갈아엎으실 때나 논에 물길을 튼다고 왔다갔다하시는 걸 보면서 나는 항상 신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다고 생각한다.

올해 일흔인 이장님 또한 언제나 혈기왕성한 젊은이 같은데 그런 이장님을 보고 남편은 ‘복학생’같다고 한다. 정말이지 언제나 다소간의 시대착오적인 패션을 하신 채 항상 가슴을 펴고 의욕이 충만하신 모습이 그렇다. 노인은 고사하고 흔히 떠올리는 지친 중년의 모습이 전혀 없다. 트랙터라는 육중한 농기계를 끌고 지나가실 때는 마치 용맹스런 장수가 대전차 군단을 이끌고 적장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포스를 풍기시는데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대단해보여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드린다.

여든이 넘으신 옆집 할머니는 대문가 길섶을 따라 꽃밭을 가꾸시는데 할머니는 그 꽃이 피는 시기와 순서를 꿰고 계신다. 봄부터 지금 가을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의 꽃이 번갈아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났다.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다. 할머니가 손끝으로 톡톡 하고 건드리시면서 꽃 진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어나도록 마술을 부리시는 게 아닐까. 내가 김빠진 맥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집에 놀러 오셔서는 깔깔 웃음을 뿌리고 가시는 할머니는 진정 주름진 얼굴의 ‘소녀’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나는 그저 삼십대 중반의 애 둘 엄마로 꺾인 인생이 아니다. 말도 못하게 젊은 애송이가 되겠다! 하물며 메리와 욜라 같은 아이들은? 아직 사람도 아닌 요정쯤 되겠지. 메리와 욜라가 고개만 살짝 까딱하고 인사를 하더라도 요정의 마법가루를 받아 웃음보가 다들 터지시고 메리와 욜라가 놀다가 서로 싸우고 야단이 났어도 ‘저것 좀 보게, 누나한테 대든다’며 요정 날갯짓을 감상 하는 양 손뼉을 치며 웃기만 하시니.

ⓒ김혜율

마을에서 충전한 자신감을 가지고 남편과 요정들을 이끌고 대학가 주변을 산책하다 배가 고파 우동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조각 같은 얼굴의 한 젊은이가 나를 자꾸만 쳐다보네. 시선을 느껴 고개를 들어 응시하니 아주 오묘한 미소까지 살짝 짓고 있다. 아....난 죽지 않았어. 풋내나는 이십대의 가벼움과 다른 우아한 아름다움에 반한게 분명해. 하지만 이보게 청년양반, 보다시피 나는 품절녀이자 어린 요정이 둘이나 있다네. 그러니 미련일랑 갖지 말게나. 라는 생각을 마음으로 전하며 한결 기품 있는 에티튜드로 욜라가 흘린 우동면발을 깨끗이 주워 담았다. 그리고 그 집을 나와 한껏 발랄 상큼한 기분으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그러다 욜라가 나에게 칠갑한 아이스크림의 끈적끈적함을 씻어 내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다가 거울을 보았다. 오늘 처음으로 보는 거울이다! 대충 묶은 머리는 제멋대로 삐져나와 봉두난발이 되어 있었고 어제 저녁 마지막으로 세수한 얼굴엔 개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이게 뭐야! 누가 봐도 피곤에 찌들어 지치고 지친 삼십대 중반의 애 엄마가 바로 나였다.

‘엉엉. 행색이 하도 꼬질하고 추레해서 쳐다본 거였어. 여자가 결혼해서 애 키우면 다 저렇게 되나 가여워서 쳐다본 거였어.’

쳇 젊어지기는 개뿔이다! 그리고 요정 좋아하시네. 저 개망나니 같은 아이들이 내 젊음을 앗아가는 거 맞지 뭐.

 
김혜율 (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두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3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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