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미사 중 성찬의 전례에서 감사기도(Eucharistic prayer, 성찬기도)는 미사 전문(典文)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감사기도는 동방 전례에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키는 예식인 아나포라(Anaphora)*에 비견됩니다. (* '올리다', '거양하다'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합니다. 사제가 모든 공동체 이름으로 성령에게 청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봉헌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성찬례의 중심 의미를 지닙니다. / 조학균 지음, 미사 이야기, 대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84쪽 참조)

ⓒ김용길

감사기도는 예물봉헌을 마친 뒤 바치는 예물기도에 이어서 오는 긴 기도입니다. 감사송(전례력에 따라 달라집니다)으로 시작하여 마침 영광송으로 끝이 나는데 그 사이에 빵과 포도주가 축성되어 성체와 성혈로 실체변화가 일어납니다(참고, '미사 중 마침 영광송은?').

그런데, 이 감사기도의 양식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아시는 독자께서 그 감사기도들이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 오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특징에 따라 사용 시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사 통상문에 나오는 감사기도는 모두 4가지 양식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특정한 지향을 두고 하는 기원미사를 위한 감사기도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양식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제1양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사용되어 온 것이고, 공의회에서 세 개가 더 만들어져 현재는 네 가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례 사제는 전례력에 맞추어 감사기도 가운데 한 가지 양식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자하신 아버지…"로 시작하는 제1양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로마 감사기도 전문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는데, 고유한 감사송이 없습니다(감사송은 감사기도 전체의 첫 부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봉헌 후 예물기도에 이어서 주례사제와 회중의 교송으로 시작합니다). 즉 전례시기에 맞춰 감사송을 선택하여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제1양식은 전례시기에 맞춰 다양한 고유성인 기도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경문 목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첫 번째 감사기도는 네 개 복음 중 마태오 복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마태오 복음서가 지상에서 메시아가 완성하려는 것을 실현시키려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2양식은 히폴리토(Hippolytus, 170-235)의 아나포라라 불리는 성찬기도를 오늘날에 맞춰서 수정한 감사기도 양식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로 시작합니다. 고유 감사송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전례시기에 맞춰 다른 감사송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양식이라 소공동체, 젊은이들을 위한 미사 등에 어울립니다. "미사경본 총지침"에 의거해 한국천주교회는 제2양식을 평일과 특별한 환경에서 사용토록 권장합니다. 두 번째 양식은 간결한 내용 안에서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아들을 드러내 보이는 마르코 복음서를 연상시킵니다.

제3양식은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몸소 창조하신 만물이 아버지를 찬미하나이다"로 시작합니다. 고대 라틴 전례의 전통을 종합해서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제3양식의 주요 주제는 '희생제사와 하느님 백성의 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1양식과 마찬가지로 고유 감사송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뽑으신 이들…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 주님께서 구원하신 온 백성과 함께…” 등의 표현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향한 여정 중에 있는 백성과 교회라는 자기 인식을 보여 줍니다. 이 표현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하느님 백성을 정의하는 내용이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감사기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희생제사와 지상의 삶에 참여하는 교회라는 주제는 세 번째 복음인 루카복음과 연관을 맺습니다. 제3양식은 주일과 축일에 사용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미사경본 총 지침, 365항 참조).

마지막으로 제4양식은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위대하시며 지혜와 사랑으로 모든 일을 이루셨으니 찬미받으소서"로 시작됩니다. 동방교회 교부 바실리오의 아나포라를 간결하게 정리하여 만든 감사기도입니다. 제4양식의 특성은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한 구원 역사의 전체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기도는 감사기도 제2양식처럼 고유한 감사송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문의 내용이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요한 13,1 참조) 이미지를 담고 있기에 네 번째 복음인 요한복음과 짝을 이룹니다.

정리해 보면, 모든 감사기도는 성부를 부르고 그분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과 성령의 오심을 기념합니다. 성령을 청함은 봉헌된 예물인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을 통해 성체와 성혈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공통의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감사기도 제1양식과 제3양식에는 고유한 감사송이 없고, 반면에 제2양식과 제4양식에는 고유 감사송이 있습니다. 제2양식은 고유 감사송이 있음에도 당일 미사가 대축일 미사인지 기념 미사인지에 따라 다른 감사송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4양식은 고유한 양식을 넣어 바꾸거나 교체해서 사용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조학균, 같은 책, 84-85쪽 참조).

이렇듯 각 감사기도에는 나름의 특색과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미사가 지닌 의미에 맞춰 좀 더 정교한 전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한 사제인 저 자신을 고백하자면, 저는 아주 드물게 제3양식을 하고, 대부분 제2양식으로 미사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 외의 양식은 부끄럽게도 거의 사용하질 않았더군요. 아무래도 짧은 만큼 신학적으로 장황하다 싶은 단어들이 적어서 제2양식을 선호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미사 참례자들의 특성과 전례력을 고려하여 다양한 양식들을 골고루 구사해 봐야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성찬 감사기도가 다양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 내용을 잘 새겨들으면서 미사에 참여하시길 청합니다.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감사의 표시이며, 이 감사를 통해 우리가 더욱 더 그리스도인답게 변모되며 우리 삶이 더욱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