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주말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1994년의 악몽…20년 후 마주하는 죄와 벌[주말영화] 정윤석 감독, 2013년작, 7월 17일 개봉

   
▲ <논픽션 다이어리>, 정윤석 감독, 2013년작
1994년 9월 지존파 연쇄살인사건,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건,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논픽션 다이어리>는 1994년 지존파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그해에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그리고 20년 후 당시 사건에 개입했던 이들의 증언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서태지가 등장해 가요시장을 평정하며 문화대통령의 권좌에 앉았고, 농구의 열기 속에서 대학가 농구선수가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부상했으며, 신인 장동건 주연의 TV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본방 사수해야 했고, 만화책 <슬램덩크>의 대사를 줄줄이 외우던 때였다. 압구정동에는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설치고 다니며 20대들의 물을 흐린다고 개탄하던 그때다.

한때 민주화투사 김영삼의 대통령 취임을 받아들여야 했고, 야당의 거두 김대중은 쓸쓸히 정계은퇴한 뒤였다. ‘문민정부’라는 낯선 정부 이름 아래, 1980년대 민주화투쟁은 이제 시효를 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정치논쟁의 자리를 문화담론이 차지했고, 정부는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밖으로 나가서 길을 찾으라고 했다. 우리는 경제성장의 거품이 주는 황홀함을 누리고 있었다. 곧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그리고 미국처럼 한때 민주를 논했던 사람들이 ‘여피족’으로 안락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달콤한 꿈에 취해 해롱거릴 즈음이었다.

우리는 20여 년 전 이 시대를 <응답하라 1994>나 <건축학개론> 등의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낭만적으로 되돌아보고 있었다. 이와 달리 <논픽션 다이어리>는 같은 시절의 추악한 민낯을 파헤친다. 그 시절을 달달한 로맨틱코미디와 세련된 가요의 유행, 스포츠 열기, 스포츠카에 대한 동경, 해외여행의 자연스러움, 연애의 대담함으로 모두 채울 수는 없다. 그림자 저쪽에는 온 국민을 경악하게 한 연쇄살인사건이 있었고, 대형붕괴사고가 잇따랐으며, 곧 다가올 IMF 체제의 징후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지존파’라는 자극적인 연쇄살인사건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영화는 지존파 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압구정동 오렌지족에 대한 적개심에서 출발하여 10억을 모을 때까지 부자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5명의 조직원들은, 계획과는 달리 평범한 서민들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불태우다 경찰에 체포된다. 인권이란 개념이 척박하던 시절, 그들은 공중파에 나와 취재 경쟁으로 아수라장인 기자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낸다.

영화는 당시 사건을 맡았던 강력계 형사 두 명과 교도관 한 명, 그리고 목사와 수녀, 변호사, 부총리를 인터뷰하며 숨겨졌던 면면들을 드러낸다. 희대의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으며 그들은 사형수가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며 500여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지존파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연이어 대형참사들이 벌어지고, TV 토론장에서는 수구인사들이 모여 어처구니없는 원인분석과 해결책을 내놓고 자화자찬한다.

   
▲ “죄를 지은 자가 공평하게 벌 받지 않는 세상은 여전하다. 5명을 살해한 지존파는 사형 당한 반면 500명 사망의 책임자는 7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선교사로 변신했다. 전직 대통령의 지위를 상실했다가 국민통합 차원에서 회복시켜 주었더니 되레 젊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뻔뻔하게 웃는 학살자가 존재한다.” (사진 출처 / 영화 스틸컷)

미술가 및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정윤석 감독의 이 데뷔작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받았고, 올 초에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아시아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제 관객과 만날 차례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세월호 참사와 GOP 총기사고가 겹쳐지며 20년 전을 되돌아보게 한다. 압축적인 산업화의 폐해는 수십 년째 계속해서 귀환한다.

영화는 갤러리 설치와 극장 상영이라는 두 가지 다른 버전의 영상물 공개를 염두에 두고, 두 영역을 크로스오버한다. 강렬한 오프닝 후 이어지는 전직 형사들의 증언은 미스터리 범죄물의 형식을 빌려 다큐멘터리 서사를 진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어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호기심과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느리게 이어지는 풍경들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의 결합은 비밀스러운 내면의 심연을 응시하게 한다. 우리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동시에 현재 이것을 바로 보고 있는 자아의 감각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탐사 다큐멘터리나 인물 다큐멘터리를 기대했다가 새로운 다큐멘터리 표현 방식을 접하면서 관객의 반응은 양쪽으로 나뉠 것이다. 신기하거나 난해하거나.

영화는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서는 많다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를 펼쳐놓는다. 전남 영광 출신의 지존파가 왜 그래야 했는지를 오랜 지역차별주의 정책으로부터 추적하고, 김영삼 정권 말기에 대대적인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하도록 하며, 각 종교계가 이들을 선교하려던 이유를 상상한다. 그리고 범죄자는 정말로 사악한 존재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비논리와 전근대적인 것으로 팽배했던 가까운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고, 이후 세대라면 역사는 반복되며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죄를 지은 자가 공평하게 벌 받지 않는 세상은 여전하다. 5명을 살해한 지존파는 사형 당한 반면 500명 사망의 책임자는 7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선교사로 변신했다. 전직 대통령의 지위를 상실했다가 국민통합 차원에서 회복시켜 주었더니 되레 젊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뻔뻔하게 웃는 학살자가 존재한다. 나아진 게 없는 세상에서 영화는 과거를 낭만적으로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관찰하는 길을 선택한다.

다큐멘터리로서의 정보가 풍부할 뿐 아니라 재미 또한 뛰어나다. 서사적 구성과 편집 리듬, 사운드 접합이 긴장감을 드높인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서 쓸쓸해진다. 우리 사회는 이 모든 비극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민아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