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또 하나의 약속>, 김태윤 감독, 2013년작, 현재 상영 중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영화감독 김태윤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추적 60분>에서 보도된 반도체 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발병 사건을 접하고, 사건의 주인공들을 만나 발로 뛰며 조사한 것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속초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상구(박철민)의 딸 윤미(박희정)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반도체 회사에 취직한다.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지 2년이 되지 않아 윤미는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고, 평범한 가장이었던 상구는 모두가 무모하다고 여긴 재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직업병 승소판정을 받아낸다. 재판에 뛰어든 지 6년 만에 딸의 사망원인인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기적 같은 일이다. 재벌 기업이 개인적으로 합의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하는 지난한 과정이 영화에서 고스란히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보이지 않는 탄탄하게 뿌리내린 시스템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어야 하는 기계부품이 되고, 고장 나면 버려지는 쓰레기가 되어가는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이미 58명이 사망하고 151명의 피해자가 접수되어 있다고 한다. 대기업에 입사한 딸이 18개월 만에 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온 것, 수원병원에서 속초로 돌아오는 택시 뒷자리에서 딸을 보내야 했던 아버지, 산재신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대기업으로부터 제안 받은 500만 원이 10억 원으로까지 올라간 일, 반도체 공장 1개 라인에서 팀장, 부팀장, 동료들이 백혈병과 림프종에 걸려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엔지니어의 겁에 질린 증언, 국회 국정조사에서 증언을 약속한 엔지니어의 배신 등 영화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모두 실제 사실에 기초한다.

이런 영화이니, 제작진은 용기 있지만 무모해보이고, 선뜻 투자자를 잡기 힘든 것은 예상한 일인 터. 그래서 영화 제작진은 또 하나의 기적에 승부를 건다. 그것은 영화 제작비 전액을 개인투자자들을 모아 완성하는 100%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그렇게 해서 7천여 명이 넘는 개인투자자들이 15억의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마련한다. 이전에도 <26년>을 비롯하여 몇 편의 다큐멘터리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영화 제작비를 충당하였지만, 제작비 전액을 크라우드 펀딩한 것은 한국 영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간다.

삼성의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은 영화 개봉을 둘러싸고 여러 군데서 발휘되고 있는 듯하다. 약속했던 상영관이 축소되고, 공중파의 개봉작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는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원래 제목이었던 ‘또 하나의 가족’은 ‘또 하나의 약속’으로 바뀌어야 했다.

 

이제 공은 관객인 우리 손으로 넘어왔다. 어차피 대중문화는 시장에서 판가름이 난다. 아무리 선의가 위대해도 재미없으면 사장되는 것이고, 뒤가 구린 자본이나 힘이 들어가도 재밌으면 관객이 든다. 상영관 수를 둘러싸고 시작부터 불공정 게임에 돌입한 것은 물론이지만 불평만 할 수는 없다. 이제 승부를 걸 것은 영화의 콘텐츠.

하나하나의 기구한 사건들은 극적인 드라마로 엮여 한 편의 사회고발적인 가족 드라마로 완성된다. 영화는 개인과 대기업 간의 투쟁을 다루며, 동시에 가족의 가치와 부녀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협박은 물론 달콤한 자본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은 강인하고 아름다운 한 개인의 용기와 마주한다. <또 하나의 약속>은 홍보에 있어 <변호인> 사례를 따른다. <변호인>이 ‘노무현’ 언급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그 자리에 불의에 맞선 개인의 인간적 성취를 강조했듯이, 이 영화는 권력에 대한 도전보다는 가족과 부성애에 초점을 맞춘다. 대중성을 위한 당연한 선택인 듯하다.

영화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이 모두 실재임을 알고 보면 복잡한 세상이 더욱 비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숭고한 개인의 의로운 싸움이 던지는 카타르시스는 오히려 세상을 행복하게 바라보게 한다. 대부분은 하지 않을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커다란 자산이다.

<변호인>만큼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지는 않다. 의미와 메시지로 가득해서 자칫 무겁게 느껴진다. 저예산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영화적 구성과 연출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캐릭터의 매력에 초점을 맞추고 사건을 배치하였더라면 긴장감이 더욱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재연의 미디어가 사건을 다루어주지 않을 때, 그 사건은 역사의 뒤안길로 쉽게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한 편의 영화가 특정 사건을 다루어줄 때만 그 사건은 대중적으로 환기된다. <도가니>로 새로운 법이 제정되었고 <지슬>로 항쟁의 역사를 다시 보았다. <또 하나의 약속>으로 인해 우리는 대기업의 비인간적인 횡포와 제도화된 악의 실체와 마주한다. 이 영화는 해야 할 바를 충실히 해낸다.

악은 점점 평범해진다. 명령을 내린 자만 악한 게 아니라, 그 명령을 저항 없이 실행하는 개인들은 죄책감도 없이 악을 수행하는 주체가 된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듯이, 생각 없음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계속해서 악을 평범하게 만들고 체제화시킨다. 악의 평범성을 깨우는 것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랑이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 사회가 저지르는 악행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조금씩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영화는 그 길에서 하나의 역할을 약속한다.

<또 하나의 약속>은 스타배우의 출연 없이도 실제 사건을 긴장감 있게 재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화적 노하우, 골리앗을 상대로 싸우는 비천한 개인의 이야기에 대한 대중의 공감 능력, 우리 사회가 비판을 수용하는 정도 등을 실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영화다. 사실을 재연했을 때의 갖가지 골치 아픈 문제로 인해 위축되어왔던 제작 현실에서 ‘사회참여’ 영화의 개봉이 계속 계획되어 있는 2014년은 새로운 전기의 해가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그 시험대 위에 <또 하나의 약속>이 서있다. 건투를 빈다!
 

 
 

정민아 (카타리나)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출신.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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