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신부의 아이들>, 빈코 브레잔 감독, 2013년작, 현재 상영 중

▲ <신부의 아이들>, 빈코 브레잔 감독, 2013년작
사순 시기, 극장가에서는 그리스도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줄줄이 개봉되어 커다란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옹고집과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문제적 인간으로 노아를 그린 논쟁적인 할리우드 대작 <노아>, 그리고 <십계>나 <쿼바디스>처럼 정통 종교영화를 표방한 <선 오브 갓>이 개봉했다. 19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장호 감독의 선교영화 <시선>도 곧 개봉한다.

여기에 더욱 논쟁적인 영화 한 편이 기다리고 있다. 코미디 장르의 옷을 입고서 가톨릭의 현재 모습에 돌직구를 날리는, 웃기면서도 씁쓸한, 크로아티아에서 온 블랙코미디 <신부의 아이들>이다.

어느 TV 예능 쇼로 인해 ‘크로아티아’란 나라가 뜨고 있다. 관광할 게 많으면서도 호텔리어 같은 호들갑이 없는 쿨하고 무심한 아름다운 나라의 이미지가 최근 새겨졌다. 과거 유고연방에 속해 있다가 1991년에 독립한 신생국 크로아티아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가 있다. 동유럽, 내전, 인종청소, 달마티안 강아지. 이름은 익히 들어보았으나 잘 알지 못했던 나라 크로아티아, 그곳에서 <신부의 아이들>은 지난해 가장 크게 히트한 영화였다.

크로아티아의 최고 흥행 감독인 빈코 브레잔의 <신부의 아이들>은 크로아티아 사상 세 번째로 높은 흥행기록을 세웠다. 공산주의 시대에 듀상 마카바예프나 에밀 쿠스타리차로 유명한 발칸 반도 코미디의 현재가 궁금한데다, 주변국들이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데 반해 가톨릭이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크로아티아의 종교를 다루는 방식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원래 연극 대본으로 쓰인 극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라 그런지, 오프닝을 인상적인 연극적 무대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갓난아기들 사이에 누워 있는 파비안 신부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젊은 신부가 파비안의 고백을 듣고 회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파비안은 화면을 향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그의 상상은 텅 빈 무대 위에서 배우들에 의해 재연된다. 영화는 사실주의보다는 만화적 상상과 과장된 캐릭터, 부조리한 대사들로 점철된 판타지 코미디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외딴섬 달마시아로 새로 부임한 파비안 신부는 전임 주임신부인 야곱 신부의 다재다능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축구도 잘 하고 아카펠라 팀에서 활동하며, 성당 청소년 밴드도 운영하는데다 마을 사람들과 소통도 잘해서 그에게는 늘 신자들이 붐빈다.

반면 음치, 몸치이며 강론도 별로고 교과서적으로 모범적이기만 해서 재미없는 신부 파비안에게는 고해성사를 하러 오는 신자 하나 없다. 흠 잡을 데 없는 야곱 신부에 대한 질투심에 불타오르던 젊은 파비안은 괜한데서 트집을 잡는다. 출산율 0%에 사망자만 늘어가는 마을에서 신자 확대 묘책이라곤 전혀 없이 즐겁기만 한 야곱 신부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가는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성당 앞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페타르가 고해성사를 하게 된다. 그는 아내가 콘돔 판매는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대죄라며 죄를 고백하라고 강요해서 억지로 끌려나온 처지. 파비안 신부는 사람들이 모르고 짓는 죄를 원천봉쇄하고 이참에 마을 신자 수도 늘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파비안과 페타르는 콘돔에 바늘로 구멍을 뚫는다.

 

두 사람은 콘돔 판매 현황을 살펴보며, 마을 사람들의 애정 관계도를 그려 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마을에는 일순 활기가 찾아온다. 사람들은 아기를 낳고, 신부는 미혼모에게 남편을 찾아 맺어준다. 갑작스러운 베이비붐으로 인해 활력을 찾은 마을의 소식은 널리널리 퍼져 타지인들에겐 사랑과 풍요의 섬으로 소문이 나고 관광업은 번성한다. 교구 주교도 특별방문을 하여 섬의 상황을 확인하고 치사하며 야곱 신부는 승진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일엔 반드시 문제가 뒤따르는 법. 아기 때문에 발목 잡힌 남자는 자살 소동을 벌이고, 아이를 버리는 일이 생기며, 납치, 유괴, 사기 등등 매일 같이 아기와 관련된 문제들이 터지는 골치 아픈 곳이 되어버린다. 급기야 늘 있어왔던 일이지만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던 커다란 사건이 펑 하고 터지고, 영화는 처참한 현실인식의 순간으로 인해 코미디임을 잊고 잠시 분개하게 만든다.

크로아티아가 처한 현실의 각종 다기한 문제가 이 코미디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다. 낙태 문제 외에, 영화에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주장을 펼치는 캐릭터가 있고, 동성애와 정치적 입장의 갈등을 묘사하며, 특히나 가톨릭 성직자의 성 문제 이슈를 피하지 않고 돌파한다. 거기에다가 연일 터져 나오는 미성년자 성추행 문제를 아예 대놓고 언급하며, 가톨릭의 고백과 죄 사함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에서 선함은 약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적 책무이지만, 교회의 핵심부에 있는 권력자들은 악을 행하여도 자연스럽게 덮고 넘어간다. 그러나 영화의 주요 공간인 가톨릭교회는 현실사회를 은유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약자만이 룰을 지킨다는 것은 세계 도처 어느 곳에나 마찬가지이니까.

우리가 흔히 접하던 빵빵 터지는 좌충우돌의 코미디를 상상한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심심하게 여겨질 수 있다. 완만한 속도감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식 무대의 차용과 관객에게 말 걸기식 대사 처리가 주는 거리 두기 효과는 정치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며, 코미디가 품고 있는 날카로운 풍자와 유희 정신은 훌륭하다. 충격적인 결말부의 진행으로 인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영화다. 그러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돌파하는 코미디의 비판 정신만큼은 나무랄 데 없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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