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 2013년작, 현재 상영 중

홀로 쓸쓸히 죽어 갈까봐 두렵다. 잊힐까봐 두렵다. 현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두려움을 안고 산다. 경쟁으로 내몰린 현실에서 아등바등 살아도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인생. 뉴스 면에서 어느 동네의 어느 노인이 독거사했지만 몇 달째 방치되었노라는 소식을 듣는다 치면, 모르는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미래 역시 몹시도 불안하다.

이 불안을 달래기 위해 먼 옛날을 칭송하며 “옛날에 우린 그러지 않았는데.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최선을 다했건만. 아, 옛날이여!”라고 중얼거리며 젊은 세대를 호래자식 취급해봐야 헛발질일 뿐이다. 인권과 복지가 정비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고독사를 두려워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 <스틸 라이프>,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 2013년작
그런데 이런 공포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영국 영화 <스틸 라이프>는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지인을 찾아 초대하는 직업을 가진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한다. 존 메이는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차 공무원이다. 그의 일상은 자로 잰 듯 정확해서, 독거사 신고를 받으면 출동하여 꼼꼼하게 그의 유품을 찾아서 확인되는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장례식을 준비한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고인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듣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공무원에게 맡기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무에 충실한 존은 고인의 생전 취향, 종교, 취미 등을 파악하여 그에 걸맞은 추도사를 쓰고, 홀로 참석한 장례식을 경건하게 맞이한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하고, 집과 사무실을 기계처럼 오가는 그는 정말로 좋은 공무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상부에서 보기에 그는 일 처리가 느리고, 예산을 많이 쓰는 꽉 막힌 사람이다. 다른 일은 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존에게 해고 결정이 내려진다. 그는 마지막 의뢰인의 뒤처리를 완벽하게 해내고 떠날 생각이다.

존의 마지막 의뢰인 빌리 스토크는 알코올중독자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존은 난생 처음으로 런던을 벗어나 빌리의 지인들을 찾아 나서고 그의 인생을 추적한다. 그저 그런 낙오자로서 생을 마감한 줄 알았던 빌리는, 비록 다혈질이 그의 인생을 망쳐버렸지만, 불꽃같은 에너지로 매 순간을 당당하게 살아왔다. 불평꾼이었지만 분명한 철학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혜택을 주고 떠났고, 사랑에 책임지지 못하는 난봉꾼이었지만 온 정성을 다해 마음을 주는 법을 알았다.

존의 끈질긴 직업적 사명감은 여러 사람들을 구한다. 빵 공장 노동자였고, 참전 용사였으며, 여러 여자들을 떠돌았고, 딸들의 아버지이자 노숙자였던 빌리, 그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존은 자신의 심연 깊숙이 숨겨져 있던 삶의 열정을 끌어낸다. 삶의 벼랑 끝에서 존은 우연히 미지의 모험을 하게 되었고, 이 모험의 끝은 썩 괜찮은 결말로 끝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전이 펼쳐진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허를 찌르는 장면 앞에서, 케세라세라(qué será será), 최선을 다한 뒤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할 것이다. 정지된 고요한 삶, 그리고 한 장의 사진으로 유추하는 그들의 젊은 나날들은, 기억해주는 이 없어도, 반짝반짝 빛나는 삶이었다. 그렇듯 우리의 삶 역시도 반짝이는 귀한 삶일 터.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는 영국 사실주의 전통의 노동자 코미디 <풀 몬티>(2007)의 제작자로 시작하여, 2008년 <마찬>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 <스틸 라이프>는 제작, 각본, 감독을 겸한 작품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부문 감독상, 파시네티 작품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뜨거운 마음을 가진 공무원 존 메이 역을 맡은 에디 마산은 <브이 포 벤데타>,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해피 고 럭키> 등 블록버스터와 예술영화를 오가며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이는 중년 연기자로, 이 영화에서 맞춤옷처럼 꼭 맞는 일생일대의 생활연기를 펼친다.

제목처럼 카메라는 정지된 위치에서 고요하게 존 메이의 일상을 담아내며, 그가 머무는 잿빛 공간은 꿈꿀 여지를 주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터져 나오는 에너지와 보통 사람이 꿈꾸는 로맨스의 무드로 인해 관객은 행복해진다. 살고, 사랑하고, 먹고, 마시고, 꿈꾸는 인생, 그것이면 족할 듯. 힘겨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영화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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