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변호인>, 양우석 감독, 2013년작, 현재 상영 중

<변호인>의 열기가 뜨겁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범한 인생 줄기 중 한 순간을 떼어내어 드라마로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1981년 ‘부림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부산에서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신군부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이다. 이 사건은 돈을 긁어모으며 승승장구하던 세무 전문 고졸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일대 변신하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열정적인 팬덤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이 사건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한, 극적인 요소들이 다분한 드라마다.

▲ <변호인>, 양우석 감독, 2013년작
영화는 한 개인의 성장드라마이며,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영웅의 출현을 목격하는 영웅물이고, 액션과 리액션이 잘 짜인 긴장감 넘치는 법정 드라마다. 무지렁이 남자아이가 우연히 발레 교습 장면을 목격하고 우아한 예술가로 성장하는 <빌리 엘리어트>, 악과 쓰레기가 창궐하는 고담시에 불현듯 나타나 평화를 선사하고 사라진 <배트맨>,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시스템으로 무장한 부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도덕의 승리를 체험케 하는 <에린 브로코비치> 같은 영화들처럼, 성장담이자 영웅담이며 법정드라마인 이 영화는, 소시민이지만 비범한 잠재력을 가진 어느 한 사람의 시점을 따라간다. 그는 일상의 한가운데 들어찬 악을 응시하고 거기에 도전한다. 상대편끼리 주고받는 반응을 긴밀하게 엮어 서스펜스를 제대로 구현한 법정극과, 소시민 가정에 불어 닥친 비극을 억지스럽지 않고 세련되게 구사한 멜로드라마, 그리고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캐릭터 드라마가 합쳐진, 잘 만들어진 한 편의 텍스트다.

우리 모두가 겪은 비상식적인 역사적 사실이라는 바탕 위에 그려진, 실화를 극화한 영화다 보니 몰입이 커질 수밖에 없는 반면, 관객은 오히려 거리감을 가지고 관찰하려 들 것이다. 결말을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허점이란, 극의 중간에 던져진 단서를 가지고 끊임없이 유추하며, 비밀 안에서 퍼즐을 맞추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 영화는 캐릭터 중심의, 캐릭터에 의한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다. 송강호가 변호사 송우석을 연기하고,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변화가 관객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어야 하는데다, 인간적 매력으로 인해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실제 인물의 그림자가 그 캐릭터를 뒤덮고 있다.

영화사적 걸작이라고 말할 순 없다. 시나리오를 겸한 감독의 연출력은 신인으로서는 훌륭하다. 교과서다운 플롯 전개와 함께 영화적 시청각 형식 구성은 무난하다. 입소문과 찬사에 비해 심심하다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캐릭터 영화의 훌륭한 표본이고, 송강호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이다. 너무도 거대한 실존 캐릭터를 대중적인 극적 드라마로 구현하는데 성공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이 영화는 지금 2013년 한국 영화 시장 환경을 영리하게 포착한 모범적인 예로 언급될 것이다.

대선 후 1년. 2013년 12월 18일 개봉, 개봉 6일 만에 200만 명 관객을 돌파했다. 이 분위기로 쭉 간다면 각종 화려한 기록을 세운다는 것은 보장된 일이다. 대기업 배급사가 아닌 회사의 배급 라인을 탄, 또 하나의 흥행성공신화는 이미 약속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찬사와 함께, 영화를 둘러싼 온갖 저급한 이야기들로 피곤하다. 영화가 선을 보이기도 전에 포털사이트에 가한 별점 테러, “급전이 필요한가”라는 기사를 써서 주연배우를 면박 준 유력 일간지, 티켓 구매 논란까지.

하지만 영화흥행전선에 이상은 없어 보인다. 영화라는 상품은 시장에서 대중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다. 동원하거나 방해하거나 간에 다 쓸데없는 일이다. 선전해대고 동원한다고 좋지도 않은 상품을 제 돈 내고 구입하지 않을 것이며, 좋다고 소문이 났는데 못 구해서 그냥 포기하고 마는 소비자도 별로 없다.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자의 왕성한 구매 욕구를 말릴 것은 더 좋은 대체재가 나왔을 때뿐이다.

<변호인>이라는 이 제품은 잘 만들어졌고, 지금 현재 소비자의 요구를 잘 반영한 상품이고, 사용자가 써보니 좋아서 입소문을 내어 또 다른 소비자를 불러 모으고……. 그런 선순환의 좋은 제품이라는 것이다.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시장에 웰메이드 드라마가 선을 보일 때 불러일으키는 성공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들 모두 부질없다.

모두가 안녕들 하지 못한 시대에, 이 한 편의 영화 텍스트보다 영화 외부를 둘러싼 대한민국 드라마가 궁금하긴 하다. 부러우면 당신들도 한번 만들어보든가.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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