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최근 세월호 사건을 겪은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참 난감했다. 첫째로, 서로를 향한 격려와 다짐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무책임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각자가 있는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이 파국을 헤쳐 나가보자’라는 것으로 읽히지만, 또 어떤 때에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그 자리를 잘 지키자’ 정도로 읽히기도 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엔 결국 변하는 것이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체념적인 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제자리’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엄청난 노력이 들 테고, 내부에는 치열한 움직임이 있겠지만, 변화로의 운동성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말임은 사실이다.

그런데 세월호가 가라앉고 많은 목숨을 떠나보낸 후,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로든 흔들렸고,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자리’, ‘제자리’라는 말은 어찌 보면 이미 무너지거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지칭이 아닐까? 제자리가 우리가 알고 믿어온 그 자리가 맞을까? 그게 우리의 자리(제-자리)가 맞을까? 그러니 ‘각자의 자리’에 대한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은 또 다른 난감함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각자의 자리’라는 말 앞에서 생겨난 ‘나의 자리’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직은 학교에 몸을 담고 있지만,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이 다음 나는 어떤 자리를 택해야 하느냐의 물음이 가장 큰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와중에 사회의 온갖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 약자들이 처절하게 울부짖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뭘까, 혹은 내가 잘할 수 있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천히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소망에 대해서도 다시 반성해 보면서, 글을 쓰고 사는 것으로 충분할지, 쓴다면 무슨 글을 써야 하는지, 그럴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 적극적 움직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고민들이 이어졌다. 만연한 폭력에 대항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폭력을 만들어내지 않는 삶은 무얼까.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삶의 윤리란,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들이.

ⓒ여경

그러나 고민을 계속 해보아도 답은 너무 요원하고, 되레 마주치게 되는 것은 절망감이었다. 필요한 삶과 윤리가 무엇인지 내가 알게 되었더라도, 나는 그것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총체적인 불가능성. 그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처절하게 확인한 것이었다. 어떤 개인적인 욕망도 소망도 실현 불가능하고 가장 기본적인 일상조차 모두 좌절되는 세계, 그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이라고.

그러니 제자리를 찾는 일도, 있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는 일도 모두 불가능해진 무기력의 상태가 나를 계속해서 지배한다. 모든 희망이 다 가라앉은 것만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어디서 희망을 길어 올려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가만히 있지 말자”라고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나는 거의 참여를 못하고 있다. 그 죄책감과 의무감에 몸과 마음이 또 무겁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에게 의무로 다가오고 내 앞에 쌓여간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느린 사람이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다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질문만 계속 던지고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닌 것. 의무와 욕망 사이 어딘가에 있을 그 일을, 나의 자리를 찾는 질문이다. 그것이 내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대한 대답으로 내놓는 질문이다.

이제 나는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이 또한 언제나 그렇듯이 느리게 진행될 테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방관자’인 것 같은 기분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속도를 무시하고 책임감에 서툰 움직임을 하기보다, 그래서 자칫 넘어지거나 무너지기보다, 천천히 질문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나아가려 한다.

최근 스스로를 위로하며 되뇌는 문장을 또 한 번 써본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와 동시에 누군가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전 손택이 “뒤로 물러선 채 사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인용한 말이다. 느리게, 그러나 자책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꾸준하게, 폭력이 없는 삶을 상상하고 꾸려가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잘 생각하고 잘 찾아갈 수 있었으면, 그대들과 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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