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박홍기
며칠 전, 몸이 좋지 않아 하루 종일 잠만 잔 날이 있었다. 몸이 안 좋은 기미를 보인 지는 꽤 되었지만 마땅히 쉴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푹 쉬는 일을 미뤄오던 참이었다. 몸살이 나기 직전에 다행히 주말이 찾아왔고, 할 일은 많았지만 일단 잠을 자자, 하고는 잠들었다. 거의 20시간 가까이 잠만 잤고, 나머지 4시간은 중간에 깨어나 밥을 차려먹는 데 썼다. 그러니까 먹고 자는 일만 하면서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몸은 훨씬 괜찮아졌다. 그런데 다음날,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오늘도 쉬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아직 완벽히 회복되지 않아서 머리도 아프고 피로했지만, 어제 종일 잠을 자느라 못한 일을 얼른 해야 할 것 같고, 읽다 만 책도 어서 읽고 글도 부지런히 써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그런 마음들을 버리고 몸을 충분히 회복해야 한다며 나를 설득하고 ‘쉬어도 된다’라고 스스로 세뇌시켜야 했다.

“쉬어도 된다”라는 말. 요즘에는 참 듣기 힘든 말이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힘들 때, 친구나 부모님으로부터 종종 듣게 될 뿐이다. 그게 아니면 의사로부터 ‘쉬어야 한다’라는 의무의 형태로 ‘진단’받고는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으며, 따르지 않는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 말을 따르지 못한다. 어디서도 ‘쉼’에 대해 마음껏 용인해주고 격려해주지 않는다.

교실이나 직장에서 듣게 되는 말은 언제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들이다. 이런 말들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도 우리의 인생은 헛되이 보내기에는 너무 소중하다거나, 노력 없이는 얻는 게 없다거나 하는 것이었겠지만, 지금 이 시대에 저 말들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폭력으로 둔갑한다. 일상에 어떠한 틈도 허용하지 않고,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우회로를 차단하는, 그리하여 경쟁과 성장에 매몰된 질주만이 남게 만든다.

그 가운데서 거의 모든 이들이 지쳐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며,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잘못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나약해서, 자기가 게을러서, 자기가 무식해서. 그리고 빨리 더 강해지고 부지런해지고 많은 정보를 가지려고 애쓴다. (이 틈새를 노려 탄생한 것이 ‘힐링’이다. 그러나 힐링은 사실상 ‘쉼’과는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구조에 적응하도록, 그래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지칠 뿐이고 더 아플 뿐이다. 황정은의 소설 <오뚝이와 지빠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떡하지.
뭘.
아무리 물장구를 크게 쳐서 파문을 만들어도, 그것은 내가 열심히 팔과 다리를 저을 때뿐이잖아. 뭔가, 물살을 엄청 저었다는 느낌은 있는데, 언제까지고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팔과 다리를 멈춰버리면 곧장 가라앉기 시작해서, 일단 가라앉은 뒤로는 파문도 없이 그저 엄청난 양의 물만 있을 뿐이라면.”

이런 말을 남기고 주인공은 서서히 작아져 하나의 오뚝이로 변해간다.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 오뚝이가 되는 것이다. 열심히 발버둥을 쳤는데 결과물을 내지 못했을 때 밀려드는 자괴감과 무력감. 혹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그것들이 우리에게 육박해오고, 우리의 일상을 집어삼킨다. 자기를 지켜낼 힘을 기를 새도 없이, 자기를 돌볼 새도 없이 진행되는 세계의 흐름에 우리는 또 떠밀려 간다.

최근 내 주변의 사람들이 병을 하나씩 갖고 살고, 우울이나 분노에 짓눌리며 지내는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성질병과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병을 앓고서야 ‘쉬는 나’, ‘일을 잘 못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었다. 거듭 잠에 빠져들면서, ‘아픈 것에 대해, 아파서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당당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자책하지 말고, 나라도 나를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언젠가 ‘서로를 잘 돌보아야 한다’고 했던 친구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본다. 우리 삶이 건강하고 따뜻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로 서로를 잘 돌보아야 한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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