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2년 동안 글을 연재해왔지만 내 글이 실리는 코너의 이름을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석 달간 한국을 떠나 쓴 여행기를 제외하고는 ‘청춘일기’ 쯤으로 분류되었고, 나는 그것을 ‘2010년대를 서울,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으로서 느끼는 바를 내 삶을 기반으로 길어 올려 쓰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렇게 글을 써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감일이 임박할 때까지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결국 마감을 넘겨버렸다. 끔찍한 참사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참담함 외에 어떤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또 태연히 찾아오는 하루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것에 대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가 이 비극 가운데서 생활은 가능한지, 생활글은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들에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글이든 직장에서의 일이든 밥을 먹든 일이든, 모두가 이전과 같은 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과 충격적이고 어이없는 소식들에 슬픔과 분노를 오가며 그 진폭 때문에 괴로운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들의 태도와 진척이 없는 구조작업은 여전해서 그런 심리적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조차 힘들고, 미래를 기획하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사회,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는 사회,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다만 이제야 우리는 그 참극을 ‘목격’한 것이었다.

▲ 지난 주말 다녀온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공사 자재를 나르는 헬기에 저항하고자 세운 막대들이 보인다. ⓒ여경

지난 주말, 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밀양에 다녀왔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내려가는 길의 마음은 무거웠다. 2주 전 철거가 예정되었던 농성장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월호 사건 때문에 철거 일정이 미루어진 상태였다. 공권력이 비판을 받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또 철거를 강행하면 비난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공권력 사용을 자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지연시키고, 새로운 비극이 다른 비극을 몰아내고 망각하게 하는 비극의 연쇄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당일에는 당장 위험하고 절박한 대치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경찰의 감시는 여전했다.

함께 밀양을 찾은 이들은 서울로 출발하기 전 한국전력 건물 앞에서 간단히 소감을 나누고 밀양을 지지하는 발언들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한전 앞에 내렸을 때, 그곳에는 우리보다 20배는 많아 보이는 경찰들이 한국전력 건물을 수호하고 서 있었다. 어떻게 알고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였으며, 어디에 있던 경찰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였단 말인가. 청와대로 가겠다는 말에 출동한 경찰 병력을 보고 ‘이 인원이면 우리 애들을 살렸다’고 피해자 가족이 절규한 것이 떠올랐다. 그것이 공권력의 실체였다.

스스로도 파렴치한 짓임을 알면서도 할머니들에게 갖은 폭력을 행사하고, 철거를 진행하고, 밀양 투쟁에 힘을 실으러 찾은 청년들을 불법시위자들로 몰고……. 그러고도 그들이 당당한 것은, 그리하여 그것이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은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으며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밀어버리고 잘 묻으면 다들 포기하고, 조금만 지나면 그것은 잊힐 것이라는 생각. 은폐와 망각은 그들이 가장 잘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였을지 몰랐다. 그러나 이번이 지금까지의 많은 사건들과 또 다른 점은 많은 국민이 분노 속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은폐와 망각을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목격과 기록과 진술일 것이다. 한옥순 할머니는 “너그들이 와도 우리 살릴 수 없다. 그러니까 눈 똑바로 뜨고 봐라. 경찰들이, 이 나라가 어떻게 우리를 끌어내서 죽이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경찰이 밀고 들어오면 불을 지르고 죽어버릴 거라고 하시며,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에 무덤을 파놓아 두셨다. 내가 죽거든 내 시체를 가지고 계속 투쟁을 하라는 유서를 2년 전에 쓰셨다고 했다. 그리고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똑똑히 보라.”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돈과 권력에 눈을 씐 자들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똑똑히 보았다. 그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했는지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제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그렇게 계속해서 지켜보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맨눈으로, 인간다운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 많은 목숨을 잃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닫는 데서 멈추기에는 너무 많은 목숨이다. 목격자로서, 진술자로서 우리는 여기 서서 보고, 말하고, 기억해야 한다. 푸념을 넘어 행동해야 하고, 애도를 넘어 움직여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 뒤에는 행동과 변화가 뒤따라야 진정한 사과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똑똑히 보자. 그리고 단단히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자. 그렇게 했을 때야, 우리 생활이 다시 생활로 돌아올 것이다. 더 이상 무력한 사과를 건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