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몬드 투투와 평화12월 마지막을 며칠 앞두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90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로 고단하고 힘든 한 해를 보내는 막바지에 더 힘이 빠지는 듯하다. 웃는 모습을 보면 괜히 따라 웃게 된다는 이 ‘작은 거인’이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요즘에야 흔한 일이 되었지만, 구순의 나이에 큰 고통 없이 가셨으니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천수’를 누렸다고 호들갑을 떨 만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인권운동과 평화의 사도로 한평생을 살았고, 여전히 그 목
수도회 출신 교구장과 노사제의 고언최근 서울대교구장이 임명되었고 이어 착좌식도 끝났다. 코로나 감염병의 위세 아래서도 착좌식에는 상당수 성직자들이 대면으로 직접 참가하고 대부분의 신도는 온라인 중계로 새 교구장 탄생을 지켜보았다. 새로 임명된 교구장은 6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과 같은 수도회 및 교회쇄신 전통이 빛나는 가르멜회 소속 수도자라는 사실이 두드러져 보인다. 더욱이 한국 천주교회사상 첫 수도회 출신 서울대교구장이라는 점도 이번 신임 교구장 착좌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가난과 시
‘포스트 팬데믹과 가톨릭 시민’지난주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와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가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의 제목이다. ‘포스트 팬데믹’이 코로나 이후를 내다보며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면, ‘가톨릭 시민’은 그에 대한 일정한 답으로 제시된 것으로 봐도 좋겠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는 이 칼럼을 통해 서너 번 집중적으로 조명해 볼 생각이라 여기서는 기조 강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기꺼이 강연을 맡아준 아일랜드의 디아무드 오무크 신부는 ‘변화하는 시대의 성숙한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교회 전통과 라틴어 미사 제한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Traditionis Custodes)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라틴어 미사 거행을 크게 제한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 전례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관심이 없어서인지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아서인지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차원에서조차 이 자의교서에 관한 공식 논평도, 이 문헌의 한국어 번역문도 없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라틴어 미사가 종종 다양성이 아니라 혼란과 분열만을 불러왔기에 이를 제한하는 이 자의교서는 환영할 만한 일로 보인다.
‘공동합의성 강좌’와 하느님 백성교회 비평가들은 이번 ‘공동합의성’을 주제로 한 세 번의 시노드(2021.10-2023.10)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장 크고 의미심장한 제도교회의 움직임으로 보기도 한다. 잘 알려진 대로 기존 시노드와는 두 가지 점에서 대별된다. 하나는 교구, 나라별 또는 대륙별 시노드를 세계 주교 시노드 전에 따로 하도록 사전 두 단계를 두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노드 주체에 있어서도 주교뿐 아니라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전체 하느님 백성의 참여를 북돋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몇몇
복잡성과 불확정성으로 보는 하느님 백성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교과서에서 ‘만유인력’이라고 배웠다. 이를 법칙으로 만든 뉴턴 이후 인류는 300여 년 동안 서구 문명의 영향 아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수학적 인과론에 지배를 받아 왔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거쳐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나 일리야 프리고진의 ‘진화의 우연성’에 이르는 현대 과학의 성취는, ‘이성으로 간파되는 그러한 명증한 세계는 없다’며 근대 서구의 기계론적 과학을 뿌리에서 흔들어 버렸다. 한국에는 1990년대 초반 김재희 선생이 "신과학
평등의 교회상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안지난 칼럼에서는 식민지를 겪은 나라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신앙과 역사, 또 그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신축교안’을 매개로 제도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라는 ‘인간’, 특히 평신도의 정체성과 관련해 생각해 보았다. 평신도 신원의식 가운데 '교회헌장'의 “교회 안에서 모든 이가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통된 품위와 활동에서는 참으로 모두 평등하다”(32항)는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것의 바탕이 됨을 직무가 아니라 ‘세례
역사와 신앙의 변증법, 그리고 평신도벌써 열흘 가까이 확진자가 1400여 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점차 주위에서 백신 접종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고, 그래서인지 마음가짐이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좀 해이해진 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감염자가 속출할 줄이야.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런 식으로 주기가 되풀이된다면 코로나 역병은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 같고, 따라서 그만큼 교회도 장기화 하는 비대면 상황에 더욱 촘촘하고 적극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처해야 할 듯하다. 여러
주교회의 사무총장에 여성 평신도!지난 6월 초 독일 뮌헨 대교구장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이 과거 수십 년에 걸친 성직자의 성폭행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편지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고 이를 공개했다. 그 사실 자체로 놀랄 만한 일이려니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교황의 결정도 세계 교회를 출렁이게 할 큰 소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으로 자문 역할을 해온 ‘9인 추기경단’에 속할 뿐 아니라, 2014년 교황청 산하에 ‘교황청 아동보호 위원회’(Pontifical Commission
공의회, 평신도, 그리고 공동합의성지난 5월 중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동합의성’을 주제로 하는 세계주교 시노드를 1년 뒤로 늦추는 대신, 2022년 10월부터 각국 교구 시노드, 대륙별 시노드, 세계주교시노드의 절차를 마련해 명실공히 ‘아래로부터의 시노드’라는 큰 그림을 다시 제시했다. 10여 년에 걸친 프란치스코 교황직의 종합이자 ‘교회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해 온 크고 작은 변화의 총결산이 될 전망이다. 그 가운데서도 교구 단위 및 나라별 시노드를 제안한 데서 보이듯 ‘하느님 백성’, 특히 평신도를 의사결정에 어떻게 참여하
(편집 : 장기풍)“사순절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프란치스코 교종, 2월17일 재의 수요일 미사 강론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7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한 재의 수요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순절 기간을 성부, 성자, 성령을 향한 회심의 여정으로 지낼 것을 촉구했다. 강론 내용.오늘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은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께 돌아가는 여정을 통해 형제자매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깊게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순절은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과 우리 존재 전체에 호소하시면서 우리를 그분께로 초대하시는 기
(편집 : 장기풍)“편견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과 상처를 함께 나누시오“프란치스코 교종, 2월14일 연중 제6주일 삼종기도 가르침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14일 연중 제6주일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이날 복음(마르 1,40-45)에 기록된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치유하신 사화를 인용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어 모든 장벽을 허물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셨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교종은 우리도 타인에 대한 편견과 그들의 고통에 관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다른 사람들과 상처를 함께 나누고 그
(편집 : 장기풍)“병자를 돌보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교종, 2월7일 연중 제5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프란치스코 교종은 2월7일 방역 당국의 코로나 거리두기 완화에 따라 이날 연중 제5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을 오랜만에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신자 수백 명이 거리를 두고 모인 가운데 실시했다. 교종은 세계에 중계된 가르침에서 이날 복음(마르 1,29-39)에 기록된 갖가지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고쳐 주신 예수님의 치유 사화를 인용해 병자들을 차별 없이 돌보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예수님의 베드
까무잡잡하고 체구가 작은 존 마웅(John Maung)은 지난달 미얀마에서 아시아 청년지도자 양성프로그램인 ‘이동학교’를 열었을 때 지역 코디네이터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한 10년 전쯤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청년 프로그램을 열었을 때 참가자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사이니 그 인연이 깊다면 깊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총명하다거나 평신도로서 의지가 남달라 ‘후일을 도모해 보자’는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낮 프로그램이 끝나고 취침시간이면 ‘상습적으로’ 몰래 소주를 사다가 패거리를 만들어 밤새 먹고 마셨다. 점입
‘규제 샌드박스’라. 우리 정권의 고위층에서 작명했다니 어처구니없다. 명확하고 예쁜 우리말을 찾지 못하겠다면 한자 말을 쓰든가. 세종대왕께 송구스럽게 영어에서 명칭을 동원하다니. 고관대작답지 않게 가볍지만, 명칭이 아니라 내용이 큰 문제다. 촛불 덕분에 탄생한 정권의 정신줄이 점점 이상해진다. 무슨 까닭이 있는지, 애초 약속한 궤도를 크게 이탈하고 있다. 그것도 거침없이.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지 않은 생명공학 분야까지.1998년 "리메이킹 에덴"이란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프린스턴대학 생명과학자인 저자 리 실버는 머지않아 맞춤형
본당은 많은 신자에게 개인적 평안과 위로, 또 그것을 넘어 따듯한 형제자매애를 느끼게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더욱 강조되었지만 본당은 그 전부터 이미 ‘친교의 공동체’였고, 이제 신자수가 줄어들고 노령화되어 감에도 열심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그러하다. 물론 ‘그렇게 체험한 이들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붙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가 알려진 것만큼 ‘완전한 공동소유’를 실현한 것도 아니고 한 3년쯤 지속되다가 초기 정신이 퇴색해 간 그런 공동체였다고 하더라도, 공동체를 강조하는 가톨릭 전통에서 ‘나눔과 친교’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제 어미의 빼어난 미모를 탐한 양반의 욕심 때문에 아비와 어미의 비참한 최후를 목격하고 구사일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미군 장교가 되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유진 초이’는 연인인 ‘애신 아씨’에게 묻는다. ‘당신이 목숨 걸고 싸우는 그 나라에서는 누가 사는가요. 천민이, 나같은 노비가, 백정이 살 수 있는가요?’ 당연히 양반인 줄 알았던 유진 초이의 물음에 애신 아씨는 대답을 못하고 결국 그와의 이별을 택한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독립을 이루려던 바로 그 나라
뜨거운 불가마 한증막 안에 있기라도 하듯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이 계속되던 지난 8월 중순, 미국의 신학자, 평신도지도자, 교육자 3000여 명은 미국 교회의 모든 주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사퇴서를 내라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Heidi Schlumpf, “Theologians, lay leaders call for mass resignations of US bishops”, National Catholic Reporter, Aug.17,2018.) 몇 달 앞서 칠레 교회의 모든 주교들이 사제 성추문과 이를 알고도 은폐
“스님이 너무 힘드시니 한 2-3분 정도 짧게 인사만 드리고 나오는 게 좋겠습니다.” 지난주 조계종 적폐청산과 개혁을 위해 장기간 단식을 하고 있는 설조 스님을 개신교, 불교, 천주교 인사들이 연대 방문했을 때 불교 측에서 나온 제안이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88살이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나이인데 그토록 오래 단식을 해 오고 있으니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터였다. 이제 단식 35일을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단식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목숨을 건 필사의 단식’이다. 무엇이 스님을 이렇게 목숨을
‘평신도 희년’을 지낸다고 하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은 듯싶더니 벌써 반년이나 흘러가 버렸다. 희년은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회당에서 감동적으로 읊은 이사야서의 ‘모든 이들의 해방’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2000년 대희년을 지냈던 한국 천주교회가 평신도 희년을 맞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당시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경갑룡 주교는 ‘한국 교회가 너무 외형적인 발전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복음 정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주교와 사제가 신원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