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까무잡잡하고 체구가 작은 존 마웅(John Maung)은 지난달 미얀마에서 아시아 청년지도자 양성프로그램인 ‘이동학교’를 열었을 때 지역 코디네이터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한 10년 전쯤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청년 프로그램을 열었을 때 참가자로 처음 만나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사이니 그 인연이 깊다면 깊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총명하다거나 평신도로서 의지가 남달라 ‘후일을 도모해 보자’는 마음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낮 프로그램이 끝나고 취침시간이면 ‘상습적으로’ 몰래 소주를 사다가 패거리를 만들어 밤새 먹고 마셨다. 점입가경이라고, 다음 날 낮 프로그램에는 (지금 그의 부인이 된) 로사와 나란히 코를 골면서 졸아 주위를 난처하게 했던 못 말리는 ‘꼴통’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두 해를 빼고는 거의 10년 동안 해마다 우리신학연구소에서 해마다 열어 온 아시아 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하거나 그게 어려우면 미얀마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NGO 활동가들을 보내기도 하는 등 매우 열심이었다.

행사 장소가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옮기면서 개최되어도 존은 계속 참가했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 프로그램에 참가해 왔을 뿐만 아니라 한 필리핀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따 신학박사가 되었다. 또 로사와 결혼해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 둘을 둔 아버지가 되었고, 그 와중에 미씨오를 비롯한 유럽 나라들에서 기금을 받아 척박한 땅 미얀마에 ‘평신도 선교교육원’(LAMIN)을 세워서 평신도들을 양성하고 있는 미얀마 교회 평신도 지도자로 부상했다. 서당 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비록 시간은 세 배쯤 더 걸렸지만 평신도의 손으로 평신도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세우고 운영해 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은 10년 전의 ‘꼴통’에서 이제 미얀마 교회에 ‘평신도’라는 글자를 깊게 아로새기는 교회사의 새 장을 열고 있는 평신도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사제 서품 한 달을 남기고 신학교를 떠난) 존 마웅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미얀마 양곤대교구의 찰스 보(Charles Bo) 추기경과의 인연도 어쩌다 스쳐 지나가 버리는 사이는 아니었다. 2009년 아시아 신학자들을 초청해 가난과 분쟁으로 얼룩진 아시아 현실에 대해 어떻게 교회가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마당에 당시 양곤 대교구장이던 찰스 보 추기경을 초대했다. 간단한 ‘격려사’ 정도를 부탁했는데 거의 발표자 수준으로 아시아의 현실을 심도 있게 짚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의 파격은 세션을 마치고 밤에 명동거리로 참가자들과 ‘마실’을 나섰을 때 더욱 고조되었다. 맥주나 가볍게 한 잔씩 하자는 내 제안에 대해 굳이 ‘소주’를 파는 선술집을 고집한 것도 그였고. 그 자리에서 몇 해 전 작고한 인도 예수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Vidyajyoti>의 편집장이던 수사이 아로키아사미 신부와 ‘농담설전’을 벌인 것도 그였다. 살레시오회 출신인 보 추기경은 살레시오회가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옹호하는 한편 그에 반해 예수회가 매우 ‘추상적’인 이론만을 좋아한다고 공격했고, 아로키아사미 신부는 지지 않고 그와 반대되는 사례들을 모아 반격했다. 농담이었으니 좌중은 웃음바다였고 그때 동석한 이들은 공식 프로그램보다 이 ‘야간수업’이 가장 유쾌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 뒤 보 추기경은 양곤 대성당 건립 100주년 기념식에 나를 초대해 참가한 일을 비롯해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만나 온 이력으로 인해 만나면 반가움이 자연스럽게 드는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로 발전했다.

(왼쪽부터) 존 마웅, 황경훈, 찰스 보 추기경, 조셉 윈. 보 추기경 사무실에서. ⓒ황경훈

그러나 지난 2월의 만남은 보 추기경과의 만남 가운데 가장 무겁고 한편으로는 가장 아쉬운 것으로 기억될 듯하다. 지난해 말에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의장으로 선출된 보 추기경에게 나는 아시아 신학자 몇 명과 더불어 그의 선출은 아시아 교회가 쇄신하고 개혁할 ‘하늘이 준 기회’이며 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직언했다. ‘이동학교’ 행사 중에 존 마웅과 함께 보 추기경을 만나서 1시간가량 얘기한 것도 이 문제였다. 보 추기경은 여러 채널을 통해 이미 매우 구체적인 제안들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만큼 무거웠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3월 중순경 FABC 주요임원 인선 결과를 FABC 웹사이트를 통해 접하고는 크게 실망했다. 곧 이은 후속 인사에서도 앞서 제안한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보수적인 성직자들이 주요 직책에 등용된 것을 보면서 쇄신과 개혁을 통한 전진은커녕 더욱 후퇴하리라는 예감에 낙담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FABC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한 사제는 “매우 실망”이라면서 “이제 FABC를 구할 존재는 하느님뿐!”(God only should save FABC now!)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찰스 보 추기경을 “좋은 사람”(good man)이라고 평하면서 아마도 “현 FABC의 현실에 적응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재로 열린 ‘아동 성폭력에 관한 세계 주교대표단 회의’ 결과를 보면서, 또 이번 FABC의 새 임원 인선을 간접 겪으면서 이러한 세계 교회 지도자들의 총체적 지도력 부재를 눈앞에서 확인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평신도로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져든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한 세대를 그렇게 견뎌 왔건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 아래서도 이토록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현실이 좀체로 믿겨지지 않는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자신의 분신인 두 아이와 매일 ‘전쟁’을 치르면서도 오늘도 평신도 청년 양성에 헌신하고 있는 존 마웅의 웃는 얼굴과 찰스 보 추기경의 무거운 표정이 오버랩된다. 성령은 두 표정 사이에 어디쯤에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어떤 계획표를 짜고 계시는 것일까. 오래도록 4월은 충분히 잔인했고 어두웠으니 만개한 봄꽃들이 전하듯 기쁨과 희망의 소식을 전해 달라고 성령에게 요청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이른 일일까.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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